삼성그룹 홈페이지(samsung.co.kr)는 그룹의 태동부터 현재까지의 활동, 경영철학, 계열사 소식을 전하는 창구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매출 400조원의 기업이자 91개국, 600여개 거점을 두고 국가 경제를 이끄는 삼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삼성 깃발 옆에 ‘2017년 4월 3일 서비스가 모두 종료됩니다. 그동안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뉴 삼성 시대에서는 지난달 말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해체를 계기로 ‘삼성그룹 DNA’는 약화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룹 차원에서 진행했던 행사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활동을 차례로 중단한데 이어 1989년부터 시작한 그룹 사내방송(SBC)도 막을 내렸다. 1957년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신입사원 공개채용을 실시해 학력·성별 차별을 없앤 열린 채용으로 화제를 모은 삼성이지만 올 상반기가 그룹 차원에서 실시하는 마지막 공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맨’으로 불리는 50만명의 삼성 임직원은 이건희 회장 시절 신경영의 전도사이자 1등 기업의 자부심이 남달랐다. 하지만 잇따른 구조조정의 피로감과 로열티(충성도) 하락 등으로 국내외 기업으로 이직을 시도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삼성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그룹 차원의 행사를 폐지하면서 ‘삼성맨’이라는 소속감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삼성 서초사옥을 지나가는 직원들 뒷 모습.

◆ 수요사장단 회의·그룹 신입사원 수련회 폐지...비주력 계열사 교육·브랜드관리 어려워질 듯

삼성은 지난달 15일을 마지막으로 ‘수요사장단회의’를 더이상 열지 않기로 했다. 고 이병철 창업주 시절 시작된 이 회의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여 주요 현안을 논의하고, 시너지 방안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었다. 2008년 삼성특검 당시에도 수요사장단회의는 계속 이어졌을 정도로 그룹의 중요 의사결정체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 구속, 미래전략실 해체와 맞물려 오랜 전통은 이제 역사로 남게 됐다. 매년 마지막주 미래전략실장 주재로 용인 인재개발원에서 열렸던 CEO 세미나도 지난해 취소된 데 이어 앞으로도 열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매년 초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렸던 그룹 신년하례식도 이건희 회장 와병 후 열리지 않고 있으며, 그룹 차원에서 신임 임원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했던 만찬도 없어졌다. 뛰어난 업적과 모범적인 임직원을 시상하는 ‘자랑스런 삼성인상’도 지난해부터 열리지 않고 있다. 자랑스런 삼성인상 수상자에게는 1직급 특별 승격과 함께 1억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이건희 회장 시절 1~2년에 한번씩 열렸던 ‘선진제품 비교전시회’도 자취를 감췄다. 이 행사는 2013년 경쟁제품 비교전시회로 이름을 바꾸고 일반인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삼성의 제품을 분해해 비교해 보고 경쟁사 선진제품과의 기술격차를 줄이기 위한 취지에서 기획됐는데, 이건희 회장의 남다른 관심과 위기론을 강조하는 자리로 유명세를 탔다.

삼성은 지난해부터 그룹 차원의 신입사원 하계수련회를 열지 않기로 했다. 1987년부터 이어져온 수련회는 ‘삼성맨’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이자 전통으로 입사 동기와 함께 과제를 해결하면서 그룹 DNA를 배우는 장이었다. 삼성 계열사의 한 직원은 “그룹 신입사원 수련회가 ‘삼성맨’이라는 자부심을 길러준 데다 다른 계열사 동기와도 교류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했다”며 “올 하반기부터 그룹 공채 대신 계열사별 선발로 채용 방식이 바뀌면 비주력 계열사는 사원 교육의 수준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앞으로 그룹 소식을 들을 정보도 차단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올해 상반기를 마지막으로 그룹 공채 대신 계열사별 선발로 채용 방식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출신인 성상현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그룹 차원의 인재관리를 하지 않게 되면 비주력 계열사는 인재수급과 브랜드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성 교수는 “삼성의 자율경영이 ‘삼성맨’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을 약화시키게 될 것”이라며 “그룹 단위의 조직문화를 계열사별로 어떻게 흡수하도록 해 전환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 불안한 삼성보단 한화·롯데가 낫다…취업시장서 입사선호도도 낮아져

삼성은 2014년 말 한화와의 빅딜을 통해 테크윈·탈레스·토탈·종합화학 등 방산·화학 계열사 4곳을 매각했다. 2015년만 해도 한화테크윈(옛 삼성테크윈) 노조는 ‘매각 반대’를 주장하면서 밤샘 시위를 거듭했다. 하지만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한화테크윈·탈레스·토탈·종합화학 직원들의 만족도는 오히려 삼성 시절보다 높아졌다고 한다. 한화토탈은 직원 평균 연봉이 1억400만원(2015년 기준)으로 한화그룹 내에서 최상위권이다.

삼성에서 한화로 소속이 바뀐 한 부장급 직원은 “삼성 시절에는 비주력 계열사라 미래전략실에서 쳐다보지도 않던 회사였는데, 한화로 온 뒤엔 그룹의 관심이 높아진 것을 느낀다”며 “삼성에서 일하는 동기를 보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삼성이 롯데에 화학 계열사를 매각했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롯데그룹 내에서 화학 사업의 비중이 큰 만큼 본인의 실력을 십분발휘한다면 오히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고 한다.

자발적 퇴사와 함께 해외로 이직을 시도하는 사례도 목격되고 있다.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SDI는 지난해 구조조정과 희망퇴직을 실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상당수 엔지니어도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갤럭시노트7’ 리콜·단종 사태를 몰고온 배터리 불량 역시 개발력 약화가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9월에는 스마트폰 반도체 핵심기술을 중국에 유출하려던 삼성전자 전무가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이 임원은 몸값을 올려 해외로 이직을 시도하던 중 기술유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의 직장’으로 불리던 삼성전자를 떠나 창업에 뛰어드는 직원도 점점 늘고 있다.

취업시장에서도 삼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2015년까지 입사선호도 ‘부동의 1위’를 지켰다. 하지만 지난해 2위(잡코리아·사람인 집계)와 4위(인크루트 집계)로 각각 밀렸다. 어수선한 회사 상황과 불안한 고용 안정성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그룹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와 융합이 필요한 시기에 삼성의 강점인 통합 인재관리를 탈피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옛 미래전략실이 가지고 있던 순기능은 계열사에서 이어받아 급변하는 사업환경 변화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