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CEO에서 최장수 CEO로

“경기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법이지. 괜찮은 친구들이 올해도 채용시장에 나올텐데 놓치면 장기적으로는 그게 더 큰 손해야.”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전세계 경기가 휘청이던 2008년 11월, 한국투자증권 내부에서 신입사원 공채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가 열렸다. 그해 한국투자증권은 리먼 사태의 여파로 순이익이 적자로 돌아서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회사 일각에서 비용부담을 우려하자 당시 취임 2년차이던 유상호(57) 사장이 입을 열었다. 유 사장은 “길게 보고 가자”며 공채를 강행했다. 그는 대학가 채용설명회에도 직접 나가 취업준비생들을 만나고 상담사를 자처했다. 이후 유 사장은 매년 빠짐없이 채용설명회에 참석하고 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유 사장을 잘 아는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그의 인재경영 철학이 지주의 신뢰를 쌓고 사내 입지를 공고히 다지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투자증권은 23일 오전 주주총회를 열고 유 사장에 대한 재선임안을 통과시켰다. 10번째 연임 성공이다. 유 사장은 “10년 연속 재신임을 받은 건 임직원 모두 힘을 합쳐 회사가 성장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매진해 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 사장은 지난 2007년 3월 47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한국투자증권 사장에 취임해 최연소 CEO(최고경영자) 기록을 쓴 바 있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이 유 사장을 전문경영인으로 데려오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한 사실은 업계에 잘 알려진 일화다.

국내 증권업계에서 11년째 한 회사 수장을 맡게 된 유 사장은 최연소에 이어 최장수 CEO 타이틀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 한국투자증권 직원들 사이에선 “직업이 CEO”라는 말이 돌기도 한다.

경북 안동 출신인 유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일은행에 입행했다가 1년 6개월만에 그만 두고 미국 오하이오대 경영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 돌아와 대우증권에서 본격적인 증권사 생활을 시작했다.

유 사장은 1992년부터 7년간 대우증권 런던법인에서 일했다. 이때 증권맨으로서 꽃을 피웠다. 당시 한국에서 하루 동안 거래되는 주식의 5%가 유 사장 손을 거치는 일이 있을 정도로 국제 시장을 종횡무진했다. 런던 금융가에선 “한국 주식을 사려면 제임스(유 사장의 영어 이름)에게 가보라”는 말이 돌았다.

이후 유 사장은 대우증권 런던법인 부사장을 거쳐 메리츠증권, 동원증권으로 둥지를 옮겼다. 2005년 동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통합됐고, 유 사장은 2년 뒤 CEO 자리에 올랐다.

취임 후 환경이 순탄했던 건 아니다. CEO가 된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2011~2013년에는 국내 증권업계에 심각한 거래 빙하기가 들이닥쳤다. 이 와중에도 유 사장이 이끄는 한국투자증권은 순이익 상위를 줄곧 지켰다. 유 사장 취임 첫해 63조3000억원이던 고객예탁자산은 지난해 154조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올해 유 사장은 예년에 비해 부담감이 늘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의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몸집을 불렸다. 대규모 투자의 기회를 얻었지만, 그만큼 실패에 따르는 위험 부담도 커진 상황이다.

유 사장은 올해 초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권투에 비유하자면 경량급 경기와 헤비급 경기가 완전히 다른 것처럼 (초대형 IB 원년인 2017년은) 이전과는 체급이 달라지는 해가 될 것”이라며 “대형 거래를 중개하고, 또 다른 거래로 빠르게 옮겨가면서 수익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