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어서 오세요)."
"사왓디 카(สวัสดีค่ะ·환영합니다)."

명동 거리를 가득 채웠던 중국어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금세 일본어와 태국어가 차지했다.

22일 오후 3시, 중국 정부가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 결정을 이유로 한국 단체여행 상품 판매 금지령을 내린 지 3주일 만에 찾은 ‘중국인 쇼핑특구’ 명동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游客·유커)을 잃은 상처를 조금씩 치유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들기 전인 수년 전에 쉽게 접했던 일본어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고, 말레이시아나 태국 등 동남아 관광객도 다수 눈에 띄었다.

중국어 입간판들은 3주 만에 상당수 자취를 감췄다. 한 명동 음식점 주인은 “식당 입구에 붙어있던 ‘중국 최대 핀테크업체 알리페이와 중국 최대 신용카드사 유니언페이(Union Pay·银联) 결제를 환영한다’는 스티커를 떼어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반중(反中) 감정이 높아지고 있어 중국인 관광객을 잡으려다 내국인 고객마저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여행 가이드가 말레이시아 단체 관광객들을 인솔하고 있다.

명동 상권이 일본, 동남아 관광객에 집중하는 분위기로 흘러가면서 그 불똥은 중국인 개별 여행객(散客·싼커)과 한국에 체류하는 중국인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조선족 커뮤니티에는 “일자리를 잃었다”는 하소연이 자주 올라온다. 중국으로 떠나는 한국인 여행객 또한 대폭 줄어 중국 내 여행업계 일각에서도 ‘고통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서울 경희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중국인 양샤오난(24)씨는 “2년간 한국에 있었는데 지금처럼 중국어 능통자에 대한 대우가 안 좋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며 “통·번역 문의나 과외 수요가 항상 있었는데, 요즘은 하던 일마저 그만둬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명동 화장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조선족 김향화(23)씨는 “당분간 쉬라는 얘기를 들어 지금은 어머니를 도와 빌딩 청소를 하고 있다”면서 “어서 빨리 원래의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 동남아·내국인 여행객 증가…사드 보복에 적응해가는 명동

부산에 사는 김철명(67)씨는 최근 아내와 함께 서울로 여행을 왔다. 무역회사에 다녔던 김씨는 서울을 자주 찾았지만 경상도 토박이인 아내가 서울 여행을 가고싶다고 여러차례 말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사드 배치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지금이 서울 여행 적기라고 생각했다”면서 “아무래도 지금 가면 상인들이 환영해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환대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5월 황금연휴 때 제주도 여행을 계획 중인 김설영(35)씨도 “지금 제주도에 가면 중국인 인파가 덜 하지 않을까 싶어 이참에 제주도에 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과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관광객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한 중소형 인바운드(외국인 관광객을 국내로 유치하는 것) 여행사 관계자는 “3월 들어 일본과 동남아에서 온 여행객이 대략 30% 정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무래도 ‘지금 한국에 오면 그나마 중국인에 덜 치일 것’이라고 생각한 여행객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주 태국어, 인도네시아어가 가능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현지 커뮤니티 등에서 모객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중국 정부가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를 이유로 한국 단체여행 상품 판매 금지령을 내린지 3주일이 지난 22일 오후 명동 거리.

정부도 동남아 여행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제주도를 방문하기 위해 인천과 김해공항에서 환승하는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필리핀 단체 관광객에게 비자 없이 5일 동안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도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 또 올해 하반기에 예정된 동남아 단체관광객에 대한 전자비자 발급 시기를 오는 5월로 앞당겼다.

◆ 중국어 관광 가이드 등 중국인들에 불똥…‘공자 아카데미’는 강좌 개설도 못해

명동 상권이 내국인, 일본인, 동남아인을 맞아들이는 사이 국내에 체류하는 중국인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1월 말 기준 국내 체류 중국인은 102만2637명으로 전체 외국인의 절반 이상(50.8%)을 차지한다. 이중 63만여명은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한국계 중국인이다. 대부분 식당 등에서 돈을 벌어 중국에 송금하며 생계를 꾸린다.

조선족이 상당수인 중국어 관광 가이드(관광 통역 안내사)들도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에 따르면 전체 중국어 가이드 8000명 가운데 40%가량인 3000명이 중국의 한국 여행 제한 조치 이후 잠정 실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족들은 사드와 관련한 말이 나오면 가능한 말을 삼가는 추세다. 자칫 한국인 고용주나 한국인 손님에게 반감을 사 일자리를 잃으면, 불확실한 경제 상황 등을 이유로 비자 연장을 거부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들어 조선족 커뮤니티 ‘모이자’에는 ‘원래 홀을 담당했는데, 한국 손님들 보기가 무서워 주방으로 옮겨달라고 했다’, ‘일하는 사람들끼리 TV를 보면서 사드 보복 뉴스가 나오면 먼저 자리를 피한다’, ‘한국행 비자가 다시 안 나올 것 같아 중국에 못 들어가겠다’는 식의 불편함을 토로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서울 속 작은 중국’이라고 불리는 영등포구 대림동 거리에 중국어로 적힌 간판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조선족을 제외한 나머지 40여만명의 한국 체류 중국인 역시 사드 보복 강도가 세질수록 심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교육부가 중국어의 해외 전파를 위해 직접 운영하는 ‘공자아카데미’는 법무부가 중국인 강사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하면서 가르칠 사람을 못 구해 강의를 열지 못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중국인 밀집지역 영등포구 대림동에는 한국인들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이문동에 사는 중국인 리펭(驪朋·23)씨는 “뉴스에 매일 나오는 중국 ‘반한시위’ 보도를 보고 한국인들도 자극을 받아서 우리에게 반중감정을 드러내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한국에 온 유학생들은 나중에 중국이나 한국에서 관련된 일을 하려고 하는데, 관련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 커지는 반중감정…한국인도 중국여행 안간다

사드 보복을 강행하면서 중국이 입는 피해 역시 상당하다. 중국을 찾는 한국인 발걸음은 이미 뚝 끊겼다. 모두투어는 “이달 2일부터 10일 사이 일주일 만에 내국인 약 2000여명이 중국 여행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중국으로 가장 많은 단체 여행객을 보내는 하나투어도 이달 들어 중국행 개별·단체 여행 예약 수가 전년대비 절반 이상 줄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이달 15일부터 5월 14일 사이 중국행 항공권 예약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포인트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 옌타이(煙臺) 지역 전문 여행사 ‘클럽코인’ 관계자는 “매월 평균 120명씩 몰리던 예약자 수가 3월 들어 반으로 줄었다”며 “이번 달 예정된 중국 방문 행사들이 전부 취소되는 등 완전 전멸 상태”라고 말했다.

중국 여행업계의 반응은 엄살이 아니다. 이미 한국인은 중국 관광 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15년 중국을 찾은 한국인은 444만4400명으로, 전체 외국인 방문객 중 가장 큰 비중(17%)을 차지했다. 2위 일본인(249만7700명)의 2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여행업계 한 관계자는 “장자제(張家界), 구이린(桂林), 톈진(天津) 등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즐겨 찾는 중국 내 관광지의 지금 분위기는 중국인이 빠진 한국 명동과 다를 바가 없다”며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을 상대로 생계를 이어가던 조선족 가이드들은 어떻게든 일자리를 유지하려고 일당을 낮춰 부르며 제살 깎기를 하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국내 여행객들의 중국행 기피 현상은 당분간 더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중대사관 영사부는 최근 반한(反韓) 행동이 사그라지지 않자 중국 체류 중인 한국인들에게 ‘재외국민 신변안전 긴급 공지’를 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던 충청남도 내 20개 초·중·고교는 계획을 취소하거나, 행선지를 중국이 아닌 곳으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