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스마트폰 신제품 G6를 출시하면서 '카툭튀'를 해결했다고 자랑했다. 카툭튀는 '카메라가 툭 튀어나왔다'는 뜻의 조어(造語)로, 아이폰7처럼 후방카메라가 스마트폰 본체 위로 돌출한 모습을 말한다. LG전자는 카메라에 들어가는 부품 수십만개를 일일이 분해하며 연구한 끝에 각 부품의 두께를 10% 이상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이 자연에서 카툭튀를 좀 더 효과적으로 없앨 수단을 찾았다. 바로 곤충의 눈을 모방한 카메라이다. 기존 카메라처럼 하나의 렌즈를 쓰지 않고 미세 렌즈를 조합해 두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곤충처럼 미세한 변화를 빨리 포착할 수 있어 자율주행차, 드론(무인비행체) 등 움직이는 기기에도 고해상도 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짝 찾는 수컷의 눈을 스마트폰에 응용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8일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가 곤충(부채벌레)의 눈에서 영감을 받아 초박막 스마트폰 카메라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프라운호퍼 연구진이 개발한 스마트폰 카메라는 두께가 2㎜에 불과하다. 시제품의 해상도는 100만 화소((畵素). 연구진은 최신 스마트폰처럼 1000만 화소 이상으로 해상도를 높여도 카메라 두께는 3.5㎜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최신 스마트폰의 두께가 7㎜대인 것을 감안하면 카툭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는 부채벌레 수컷(왼쪽)의 눈을 모방한 카메라를 개발했다. 낱눈 역할을 하는 135개의 미세 렌즈로 구성됐다(가운데). 이 카메라는 1000만 화소 이상의 고해상도 영상을 구현하면서도 두께가 3.5㎜에 불과해 갈수록 얇아지는 스마트폰에 적합할 것으로 기대된다(오른쪽).

카메라가 혹독한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은 렌즈를 바꾼 덕분이다. 기존 카메라는 사람의 눈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렌즈로 들어온 빛이 광센서가 있는 뒤쪽에 초점을 맺는 원리이다. 초점거리가 정해져 있어 카메라 두께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곤충의 눈은 수많은 낱눈이 모여 하나의 겹눈을 이룬 형태다. 낱눈마다 작은 렌즈가 있고 바로 아래에 빛을 감지하는 세포가 있다. 이를 카메라에 적용하면 초점거리가 사실상 사라져 두께를 크게 줄일 수 있다.

문제는 해상도이다. 렌즈가 작아지면 빛을 적게 받아들여 영상이 흐릿해진다. 프라운호퍼 연구진은 벌의 몸에 알을 낳는 부채벌레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몸길이 4㎜에 불과한 이 곤충의 수컷은 어른으로 몇 시간밖에 살지 못한다. 수컷은 그 짧은 시간에 암컷을 찾아내기 위해 다른 곤충보다 낱눈들의 수는 줄이고 빛을 많이 받아들이도록 낱눈의 크기를 키웠다. 각각의 낱눈들이 정해진 각도에서 선명한 영상을 얻으면 뇌에서 이 영상들이 겹치는 부분을 이어 전체 영상을 파악한다. 프라운호퍼 연구진은 이를 모방해 카메라의 미세 렌즈 숫자를 곤충보다 훨씬 적은 135개로 줄이고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보는 영역을 조금씩 겹치게 했다. 연구진은 반도체 제조 공정을 응용해 대량 생산 공정도 개발했다.

천적 피하는 기술은 드론에 응용

곤충의 눈을 모방한 카메라는 2013년 미국 일리노이대의 송영민 박사(현 광주과학기술원 교수)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처음 발표했다. 당시 송 박사는 지름 0.8㎜의 미세 렌즈 180개가 지름 1.5㎝의 돔 구조에 배열된 카메라를 만들었다. 미세 렌즈 바로 아래에는 각각 빛을 영상으로 바꾸는 이미지 센서를 달아 실제 촬영까지 성공했다. 이후 새우, 농게의 눈을 모방한 카메라들이 잇따라 개발됐다.

2013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송영민 박사(현 광주과기원 교수)가 세계 최초로 곤충의 겹눈을 모방한 카메라를 네이처에 발표했다(왼쪽). 곤충의 겹눈처럼 돔 구조에 낱눈 역할을 하는 미세 렌즈 180개가 달렸다. 송 교수는 최근 곤충의 눈을 모방한 카메라를 드론에 달아 위험물을 회피하도록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오른쪽).

송영민 교수는 "겹눈을 모방한 카메라는 초소형 드론이 공중에서 위험물을 회피하는 데 최적이다"며 "사람 눈은 근육으로 수정체 두께를 조절하느라 에너지를 많이 쓰지만 곤충의 눈은 그런 부담이 없어 에너지도 덜 든다"고 말했다 사람의 눈은 흐릿한 부분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곤충은 각각의 낱눈으로 온 빛을 모두 감지한다. 덕분에 아무리 미세한 변화라도 금방 알아챈다. 파리가 사람의 손을 쉽게 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송 교수와 경쟁 중인 스위스 로잔연방공대 연구진은 지난해 15g 무게의 겹눈 카메라 두 개를 초소형 드론의 앞뒤에 달아 360도 시야를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겹눈 카메라는 자율주행차나 로봇이 위험물을 회피하는 데에도 이용할 수 있다.

의료나 산업용으로도 전망이 밝다. 스위스 과학자들은 지난해 지름 10㎜의 돔 구조물에 미세 카메라 렌즈 24개를 단 내시경을 발표했다. 카메라 사이사이에는 빛을 내는 광섬유를 넣었다. 이런 겹눈 내시경은 기존 내시경보다 시야가 넓어 예상치 못한 상처 부위도 놓치지 않는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은 혈액 검사에도 쓸 수 있고, 산업에서는 고속 인쇄 중에 잘못된 곳을 찾아내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