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중인 푸드트럭 모습.

경기도 남양주 출신 A(30)씨는 ‘청년 창업가’를 꿈꾸며 작년 6월 친구와 함께 약 3500만원 주고 트럭을 샀다. 핫도그를 팔 수 있는 푸드트럭으로 구조를 변경해 서울 시내의 대학교나 도심 지역에서 판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고정 사업장을 얻기 위해 서울시에 영업 제안서를 넣었지만, 번번이 다른 푸드트럭 사업자에 밀려 장사를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고민 끝에 A씨는 우선 서울시의 한 지역 축제에 일주일만 참여하기로 했다. 축제 방문객이 많아 사업이 번창하는 듯 했다. 주말 2~3일 동안 하루 150만원씩 벌어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축제가 끝난 뒤부터 A씨의 푸드트럭은 또다시 멈춰섰다. 영업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트럭을 무작정 몰아 번화가에서 장사를 하려고 했지만, 불법인터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장 생계가 급해진 A씨는 방방곡곡의 지방자치단체 행사를 찾아다니며 핫도그를 판매했다. 지역을 돌아다니는 사이 고정 영업장을 얻기 위해 서울시 등에 사업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다음 기회에’였다. A씨는 사업을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나도록 한 지역에 정착할 수 없었다.

여름이 끝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지역 행사에서도 푸드트럭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은 뚝 끊어졌다. 주말에 비가 오는 등 날씨가 좋지 않은 날도 많아지면서 여러차례 장사를 망치기도 했다. 행사에 들어가면서 낸 입점료와 수입의 10~20%를 차지하는 수수료를 내고 나면 순수익이 나지 않는 날도 빈번했다. 사업에 어려움을 느끼던 A씨는 결국 작년 10월 푸드트럭 폐업 신고를 하고 푸드트럭 장사를 접었다.

A씨는 “인산인해를 이룰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간 지역 행사에 사람들이 없어 텅 빈 상태일 때 가장 허무했다”며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 하염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나 자신의 모습이 너무 처량한 것 같아 푸드트럭 브랜드를 만들고자 했던 꿈을 접었다”라고 말했다. A씨는 겨울이 지나고 장사를 다시 시작할까 고민하다 주변 푸드트럭 상인들이 겨우내 잇달아 장사를 접는 모습을 보고 올해 2월 푸드트럭을 중고차 시장에 팔았다. 그는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푸드트럭을 하느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겠다”며 전라북도 군산으로 내려가 현재 부동산 중개업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정부가 ‘손톱 밑 가시’라며 규제 개혁의 상징으로 내걸었던 푸드트럭 사업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푸드트럭 2000대 이상 창업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전국에서 실제로 영업 중인 푸드트럭은 316대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푸드트럭 영업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너무 적고, 그나마 영업이 허가된 구역도 상권이랑은 거리가 멀어 푸드트럭 정책이 ‘유명무실’하다고 하소연한다. 손님이 몰리는 지자체 행사에 참여해 수익을 올리려 해도 입점료와 수수료가 높아 적자 운영을 하는 푸드트럭이 대다수다.

푸드트럭 사업자들은 사유지에서도 푸드트럭을 영업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주류 판매를 허용하는 등 실질적인 푸드트럭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는 ‘상권 침해 방지’를 이유로 내세우며 “더 많은 규제를 풀어줄 경우 다른 업종과 비교해 차별적인 지원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 2월 말 전국 푸드트럭 316대에 불과…”4대 중 1대만 영업”

푸드트럭은 2014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푸드트럭 관련 규제를 ‘손톱 밑 가시’로 언급한 뒤 같은 해 8월 합법화됐다. 정부는 전국 유원지 등에서만 푸드트럭을 허가해줘도 6000명이 창업하고, 부가가치만 약 400억원이 창출될 것이라는 게 정부 기대였다. 정부는 또 푸드트럭 개조 사업이 활성화돼 새로운 창업 분야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푸드트럭이 합법화된 지 3년이 다 되어가지만, 성적은 초라하다.

22일 행정자치부와 식품의약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전국에서 영업 중인 푸드트럭은 총 316대로 집계됐다. 정부는 2014년 8월 푸드트럭 관련 법을 개정하면서 전망한 2000대의 6분의 1 수준인 셈이다.

지역별 편차는 더욱 심하다. 2월 말 기준 서울시에서는 30대, 인천에서 20대, 경기도에서 98대, 경남에서 63대의 푸드트럭이 운영되고 있지만, 대전이나 세종은 각각 1대, 충북은 3대만 영업하고 있다.

지난 2월 말 기준 전국 지역별 푸드트럭 운영 현황.

창업했던 푸드트럭들은 연달아 문을 닫는 실정이다. 2014년 8월 자동차 관리법을 개정해 푸드트럭 개조가 허용된 이후 전국에서 1409대의 푸드트럭이 개조됐다. 그러나 4대 중 1대만이 현재 영업을 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지난 10~12월까지 119대가 폐업하면서 서울시 전체 푸드트럭 중 54.5%가 영업을 그만두고 멈춰섰다. 서울시에서 첫 번째로 영업 허가를 내준 푸드트럭은 올해 2월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매물로 올라오기도 했다. 서울시가 올해 1000대까지 푸드트럭을 늘리겠다고 밝힌 것과 거리가 먼 현실이다.

◆ “사유지 영업·주류 판매 허가해야”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규제 개혁을 외쳤지만, 푸드트럭 산업 활성화를 가로막는 ‘진짜 규제’는 그대로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의견을 모은다.

먼저 한정된 구역에서만 영업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푸드트럭 운영에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푸드트럭은 현행법상 도시공원과 관광지 등에서만 영업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통해서 영업장소를 추가로 지정할 수 있다. 작년 7월부터 영업 신고를 한 지역 안에서는 이동할 수 있도록 허가해줬지만, 지자체가 지정해놓은 영업장소가 처음부터 장사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푸드트럭 운영자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서도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푸드트럭 운영 사업체 칠링키친의 함현근 대표는 “푸드트럭 영업이 허가된 곳은 대부분이 도시의 공원, 하천과 같이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곳이라 장사가 안되는 ‘변두리’에 불과하다”며 “실제로 장사가 잘될 수 있는 곳은 사유지인 경우가 많은데, 사유지를 푸드트럭 사업자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준다면 푸드트럭들의 경쟁력은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푸드트럭에서 주류 판매가 제한되고 있다는 점도 푸드트럭 성장을 막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푸드트럭은 ‘일반음식점’이 아닌 ‘휴게음식점’으로 구분돼 주류를 판매할 수 없다. 그러나 푸드트럭에서 파는 음식들은 술안주인 경우가 많다. 함 대표는 “음식과 함께 주류를 판매하면 수익에도 시너지가 날 것”이라며 “다양한 음식 메뉴를 개발하고 판매하도록 장려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 지자체 행사에만 의존...그나마도 높은 입점료·수수료에 ‘발목’

푸드트럭 사업자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주택지나 도심지역, 행사장을 전전하며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영업 신고를 하지 않은 지역에서 장사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푸드트럭 사업자 대부분은 그나마 수입이 나는 지자체 행사에만 의존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오는 24일부터 10월 29일까지 여의도 한강공원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청계천, 반포한강공원 등에서 밤도깨비 야시장을 열 예정이다. 특히 여의도와 반포한강공원에는 매년 다양한 종류의 푸드트럭들이 모인다. 그러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한 경쟁률은 3대 1에 달한다. 올해 약 300개의 푸드트럭이 밤도깨비 야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사업 신청을 했고, 이들 중 132개만 선정됐다. 3대 중 2대의 푸드트럭은 한철 장사를 할 기회마저 얻지 못하는 셈이다.

서울시에서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이모(27)씨는 “밤도깨비 야시장처럼 큰 규모의 지자체 행사에 참여할 경우 안정된 수입을 올릴 수 있지만, 떨어질 경우 1년 내내 전국의 사설 행사를 찾아다니는 하루살이 신세가 된다”고 말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지자체 행사나 사설 행사에 참여하려고 해도 입점료나 수수료가 부담이다. 일반적으로 푸드트럭이 지자체나 사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의 입점료를 내거나, 매출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내야 한다. 행사 규모마다 다르지만, 입점료는 평균 10만원 안팎이고, 수수료는 하루 매출액의 10~20% 수준이다. 서울시 밤도깨비 야시장의 경우 하루 평균 15~20만원의 입점료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음악 페스티벌 등 사설 행사에서는 하루 300만원 이상의 입점료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푸드트럭은 보통 매출액의 30%를 재료비로 사용하고, 기름값이나 유지 비용으로 10%를 사용한다. 아르바이트를 고용할 경우 하루 매출액의 10~20% 인건비로 나간다. 약 20%의 입점 수수료까지 더해질 경우 순수익은 전체 매출의 20%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푸드트럭의 하루 평균 매출은 50~150만원 선. 하루 약 10~30만원의 수입밖에 올리지 못하는 셈이다. 더구나 행사장을 주로 하는 푸드트럭의 영업은 금요일~일요일까지 주말에만 이뤄지기 때문에 한 달에 100만원도 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푸드트럭을 구매하고 차량을 개조하는 데만 2000~3000만원이 들어간다. 이런 적은 매출로는 초기 투자 비용을 회수하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린다.

◆ 정부 “주변 상권 충돌 우려”…유지·관리 정책도 필요해

정부는 지난달 22일 내수활성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푸드트럭 영업장소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지자체 조례 개정을 통해 기존 상권과 마찰 없이 푸드트럭의 영업장소를 발굴하고 제공하는 상생모델을 확산할 것"이라고 했다. 3월 현재 171개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정부는 주변 점포 상인과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규제를 풀어줬다는 입장이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이동 제한 규정을 풀어주면서 푸드트럭 영업을 막던 규제는 모두 풀어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푸드트럭도 하나의 소상공인으로 보고 있어 다른 업종 상인들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며 “영업장소 규정을 다 없앨 경우 특정 업종에만 특혜를 주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푸드트럭이 인접한 상권과 같은 음식을 팔지 않도록 하고 있다.

푸드트럭 사업자들은 “같은 상가에 같은 종류의 음식을 파는 경우도 있는데 푸드트럭에만 유독 가혹하다”는 반응이다. 한 푸드트럭 사업자는 “푸드트럭은 기본적으로 영업 신고제인데 기존 상권과 충돌을 막는다는 이유로 ‘허가제’에 가깝게 운영되고 있다”며 “기존 상권 상인들이나 푸드트럭 사업자가 모두 같은 소상공인이라면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도록 조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드트럭 유지·관리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칠배 창업디자인연구소 대표는 “푸드트럭은 일반 음식점처럼 지속해서 홍보 활동을 하고 소비자 기호에 맞게 메뉴를 개발하는 등 사후 관리가 중요한 사업”이라며 “푸드트럭이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창업 정책뿐만 아니라 운영 및 관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