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대전기술연구소의 바이오부탄올 파일럿 플랜트에선 거대한 오르간을 떠올리게 하는 파이프들이 그물처럼 엉킨 설비가 눈에 들어왔다. 정유회사 공장에서 숨이 턱 막히는 기름 냄새를 각오했는데, 뜻밖에 메주 쑤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구수한 냄새의 정체는 화학 원료인 바이오부탄올이다. 바이오부탄올은 일상생활에서 밀접하게 쓰이는 잉크, 본드나 페인트 등에 쓰이는 점착제나 반도체 세정제, 식품 등의 원료로 쓰인다.

GS칼텍스 대전기술연구소 연구원들이 바이오부탄올 생산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GS칼텍스의 바이오부탄올은 특별하다. 세계 3대 바이오부탄올 회사들이 옥수수와 같은 식용 바이오매스(에너지원이 되는 생물체)를 쓸 때, 폐목재를 활용한 비식용 바이오매스를 선택했다. 생산의 출발점인 원료 투입구에는 폐목재를 잘게 갈은 톱밥이 포대로 쌓여있었다. 톱밥을 투입한 다음 산(酸)과 섞어 바이오당(糖)을 만들고, 이를 고성능 박테리아 균주(菌株)가 먹고 배설하는 공정을 거쳐 나오는 게 바이오부탄올이다.

GS칼텍스의 바이오부탄올 생산 과정에서 버려지는 것은 없다. 바이오당을 뽑아낼 때 생기는 찌꺼기인 '리그닌'은 바이오알콜과 바이오플라스틱 등의 원료로 쓰인다. 또 각종 폐수는 증발·농축한 후 끈적한 슬러리(액상)로 만들어 비료로 활용한다. 강산을 이용하는 선진국 바이오부탄올 생산업체들보다 온실가스 절감 효과는 두배 이상이며, 폐목재를 사용함으로써 수급에 따라 가격 변동이 심한 식량보다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하다. GS칼텍스는 약 500억원을 투자해 이르면 올해 말까지 전남 여수에 바이오부탄올 시범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GS칼텍스의 바이오부탄올 생산 방식은 기술 장벽이 높아 다른 업체들이 섣불리 따라하지 못한다는 장점도 있다. GS칼텍스는 정유화학 사업에서 얻은 증류 공정 노하우와 이종 산업인 식품 및 미생물 분야의 기술을 결합해 2012년 비식용 바이오부탄올 생산에 성공했다. 식용 바이오매스 기반 바이오부탄올 플랜트는 70시간의 숙성시간을 거쳐야 바이오매스를 발효할 수 있는데 반해, GS칼텍스가 특허를 낸 '연속 발효' 기술은 이를 1시간으로 대폭 줄였다. 신용안 GS칼텍스 기술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익숙한 기존 기술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GS칼텍스의 바이오부탄올 사업은 '4차산업혁명'에 대한 GS그룹의 청사진 중 하나다. 이종산업과의 융합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낸 시도였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지난 2월 신임임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국내외적으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날마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이는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융합과 경쟁을 초래해 모든 업종에 위기 요인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가 미칠 영향에 철저히 대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 전문 사업 지주회사인 GS에너지는 과거 신평택발전, 동두천드림파워 지분인수, 자회사 GS파워 안양 열병합발전소 개체사업으로 LNG(천연가스) 발전사업을 확장했다. GS리테일은 인터넷은행 사업자로 선정된 K뱅크에 참여하고, 인터컨티넨탈호텔을 보유한 파르나스를 인수해 핀테크와 호텔업에 진출했다. GS홈쇼핑은 디지털·모바일 시장으로 사업 역량을 빠르게 옮기고 있다. 민간발전회사인 GS EPS는 충남 당진에 운영 중인 1503메가와트(MW) 규모의 LNG복합 화력발전소 3기와 2.4MW 연료전지발전소 1기에 이어 추가로 105MW 용량의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2015년 9월에 준공했다. GS EPS는 신재생에너지 사업 노하우와 기술력을 축적해 해외 발전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종합발전회사인 GS E&R은 구미와 안산에 집단에너지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포천 장자산업단지 내 친환경 집단에너지시설도 설립한다. 회사가 강원도 동해시에 건설중인 1190MW급 석탄화력발전소가 올해부터 운영되면, GS EPS, GS파워 등과 더불어 GS그룹 전체적으로 약 5000MW 수준의 발전용량을 갖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