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우리나라는 112만톤이 넘는 커피생콩을 수입하였다고 한다. 금액으로는 34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금액이다. 이렇게 많은 양의 커피 생콩이 수입되고 있음에도 그 동안 우리나라의 경우 커피 생콩에 대한 잔류농약기준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느슨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농약검출로 수입이 금지되면 곧바로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들어온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전망이다. 과거에는 잔류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는 농약에 대해서는 CODEX(국제식품규격위원회)기준 또는 유사농산물의 최저기준을 적용해 왔다.

이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국내의 잔류농약 최초 정밀검사 59항목 중 50개 항목에 대한 잔류농약기준이 설정되어 있지 않아서 잔류농약기준이 없는 50개 항목에 대하여 상당 부분 '유사농산물의 최저기준”을 따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식약처는 2016년 12월 31일부터 ‘포지티브 리스트 시스템(Positive List System, PLS)’을 시행하여 농산물에 대한 농약잔류허용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PLS는 농약의 잔류허용기준이 설정되지 않은 경우 불검출 수준(0.01ppm 이하)으로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잔류기준이 없는 농약에 대해서는 '불검출 원칙'을 고수하는 미국의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제도나 사실상 불검출 기준과 동일한 0.01ppm 기준을 일률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일본의 PLS제도와 사실상 같은 제도다.

식약처는 우선 수입의존도가 높은 견과종실류(땅콩 등의 견과류, 참깨, 해바라기씨와 같은 유지 종실류, 커피원두, 카카오원두와 같은 음료 및 감미종실류를 말함)와 열대과일류(바나나, 파인애플, 키위, 망고, 아보카도, 구아바, 망고스틴 등의 과일류)에 대하여 식품공전에 농약 잔류허용기준을 정하고, 기준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에는 0.01ppm 이하 기준(불검출 수준)을 적용하는 PLS를 우선 도입하여 작년 12월 31일부터 시행했다.

이와 같이 우선 시행되는 농산물 이외의 나머지 농산물 전체에 대해서는 오는 2018년 12월 31일부터 전면 시행된다고 한다.

새로운 PLS가 시행되기 전과 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프리시미돈과 펜프로파스린이라는 농약의 커피 생콩 잔류허용기준을 살펴보면 극명하게 알 수 있다.

프리시미돈은 체내에 축적되면 남성의 경우 정자 수 감소와 이상 정자가 발생할 위험이 생기며, 여성은 자궁 내막증 또는 자궁암에 걸릴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맹독성 농약이다.

그런데 종래에는 커피원두에 대하여 프리미시돈의 잔류허용기준이 없어 유사농산물인 해바라기씨의 허용기준인 2.0ppm을 적용하여 관리해 왔다.

과실류의 나방, 진딧물, 응애 등의 방재에 쓰이는 합성살충제인 벤프로파스린 역시 커피 생두의 경우, 별도의 잔류허용기준이 없어 기준이 설정되어 있는 유사농산물인 면실(목화씨) 기준치 1.0ppm이 적용되어 왔다.

미국의 제로 톨러런스 제도에 따르면 이 두 농약성분은 당연히 “불검출”이어야 하고, 일본의 PLS 제도에 따라서도 사실상 불검출을 의미하는 0.01ppm이어야 한다. 하지만 종전의 제도는 사실상 일본의 기준보다 200배와 100배나 높은 기준치에 해당된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잔류농약 검출로 수입이 금지된 커피 생콩이 한국에서는 버젓이 수입되어 유통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PLS가 시행되면서 이 두 농약은 잔류기준이 0.01ppm으로 설정되어 사실상 검출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강화된 것이다.

커피 생콩에 살충제와 제초제, 살균제와 화학비료 등의 농약 사용이 급증하게 된 것은 커피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전통적인 그늘재배 방식을 버리고 브라질의 파젠다(fazenda)와 같은 대규모 커피 농장에서 실시하는 기계화된 농법을 사용함에 기인한 바가 크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의 하나인 콜롬비아의 경우 전체 커피 생산량의 68%가 기계화 경작 방식에 의해 생산되며 연간 40만톤에 이르는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에는 콜롬비아에서 생산된 커피 생두 1파운드당 반 파운드 꼴의 화학비료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기계화된 대규모 커피농장에서 커피를 수확할 때 기계에서 수평으로 길게 뻗어 나온 막대들을 사용하여 커피 관목을 두드려 커피 열매를 틀어내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처럼 기계화된 대규모 커피 플랜테이션 재배방식 및 수확방식은 커피생콩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정성이 훨씬 떨어지고 이에 따라 자연히 커피의 풍미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커피는 박리다매용으로 시장에 공급되기에 이익을 내려면 더 많은 양을 생산할 수 밖에 없어 또다시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커피재배에 사용되는 DDT, 말라티온, 벤젠헥사클로라이드 등의 화학약품은 발암물질로 의심받거나 분해되지 않고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약물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미국 FDA가 커피 생콩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이와 같은 살충제 성분이 빈번히 추출되었지만, 로스팅 단계를 거친 원두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커피 음료의 경우 다른 농산품 보다 잔류농약으로 인한 직접적인 폐해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인지 식품공전에서는 커피원두(식품공전에서는 커피생콩 또는 생두를 커피원두라고 표현하고 있다)와는 달리 ‘커피원두를 가공한 것이거나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을 가한 볶은 커피(커피원두를 볶은 것 또는 이를 분쇄한 것), 인스턴트커피(볶은 커피의 가용성추출액을 건조한 것), 조제커피, 액상커피’의 경우 납, 주석과 같은 중금속에 관한 기준과 색소 및 세균에 대한 기준만 설정했고 농약에 대한 기준은 없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나라가 올해 3월 12일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온두라스, 파나마 등 중미지역 5개 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에 가서명했다고 발표했다. 협정에 가서명한 나라들은 빠른 시일 안에 정식서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협정이 정식 서명되면 한국은 이 나라들로부터 커피, 설탕, 열대과일 등을 수입할 때 관세의 장벽을 순차적으로 없애 나가야 한다. 이 나라들은 세계적인 커피 생산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이 나라들과의 FTA가 체결되면 커피 역시 관세가 차츰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어 지난 10년 동안의 커피 수입증가량 보다도 훨씬 많은 커피가 수입되어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앞으로 수입되는 커피의 양이 급증하더라도 작년 말부터 시행되고 있는 잔류농약기준에 관한 PLS 덕분에 커피에 포함되어 있는 잔류농약 유무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커피의 품질은 무시하고 오로지 값싼 커피 생콩만 찾아 수입하게 되면 아무래도 이와 같은 농약허용기준을 벗어난 커피 생콩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았지만 앞으로 그와 같은 문제는 더 이상 발생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PLS를 엄격하게 시행해 국민들의 건강을 지켜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