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의 공습으로 수년간 어려움을 겪었던 할인점(대형마트)이 지난해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할인점업계 1위 이마트(139480)가 전년대비 8.6% 늘어난 5469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2위 홈플러스가 3100억원가량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흑자로 돌아섰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97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지만 이는 해외사업부(1240억원 손실) 실적이 포함된 수치로, 국내에선 27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전년대비 흑자 전환했다. 3사의 영업이익을 모두 합치면 9000억원에 이른다. 3사 합산 영업이익이 1조원을 가뿐히 넘었던 2012~2013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선방한 실적이라는 평가다.

할인점은 최근 수년간 이커머스 기업들의 공격적인 행보로 위기를 겪었다. 가격경쟁력에서 뒤지다 보니 이마트를 제외하곤 매출이 수년째 내리막길을 걸을 정도였다. 최근 들어서는 오프라인 유통망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신선식품 시장에서도 이커머스 기업의 공격을 받고 있을 정도다.

할인점 3사가 지난해 나란히 양호한 실적을 내놓으면서 할인점에 대한 위기감이 과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커머스 기업들이 불러일으킨 최저가 전쟁으로 할인점 매출이 줄었을 뿐이지, 오프라인 고객망은 건재하다는 얘기다. 일부 증권사에선 올해 ‘할인점의 시대’가 다시 열릴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 홈플러스 작년 3100억 흑자…무모한 최저가 전쟁 지양해 실적 개선

22일 홈플러스 사정에 정통한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지난해 3100억원가량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면서 “비용 절감 노력이 성과를 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이마트가 5000억원 이상의 이익을 냈고 롯데마트 또한 선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할인점 위기론’이 과도한 게 아닌가 싶다”면서 “오히려 과도한 최저가 전쟁으로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이커머스 기업들이 시험대에 올라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유통업계 전문가들은 홈플러스 흑자 전환의 배경으로 비용 절감, 매장 디스플레이 강화, 무모한 최저가 경쟁 지양 등 3가지를 꼽는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4월 본사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강서구 등촌동 신사옥(강서점)으로 이전했다. 본사 이전으로 임대료 부담이 대폭 감소했고 2200여명이었던 인력도 1800여명으로 줄었다. 때마침 쿠팡, 티켓몬스터, 위메프 등이 경쟁적으로 할인점 인력을 채용하며 이탈한 본사 직원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 하나로만 흑자 전환한 것은 아니다. 홈플러스는 글로벌 생활용품업체 P&G 출신의 김상현 대표가 취임한 이후 ‘매장 디스플레이’를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취임 이후 매주 한 번씩 매장을 찾는 김 대표는 방문하는 곳마다 매대에 진열한 제품 수를 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 상품 하나만 눈에 잘 띄게 하면 된다고 본 것이다.

홈플러스 한 관계자는 “김상현 대표 취임 이후 매대 진열 방식에 여러차례 변화를 줬다”면서 “제품을 꽉꽉 채워 진열하는 것보다는 탁 트이게 하는 것이 고객의 쇼핑을 편하게 하고 매출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개점한 홈플러스 파주운정점 전경. 파주운정점은 통로를 타 점포보다 20% 이상 넓혔다. 신도시에 어린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흑자 전환의 또 다른 비결은 무모한 최저가 전쟁을 지양했다는 점이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4월 ‘가격비교 차액보상제’를 폐지했다. 최저가를 찾아 떠날 고객을 내보내더라도 수익은 지켜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할인점업계 1위 이마트의 경우 상품력 강화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다. 이마트는 상품력 강화에 초점을 맞춘 전략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자체브랜드(PB) 상품 노브랜드, 식품 브랜드 피코크 등이 인기를 끌면서 모객 효과가 일어나고 있고, 이로 인해 매출도 꾸준히 증가하는 상황이다. 전자기기 전문점 일렉트로마트, 창고형 매장 트레이더스, 노브랜드 전문점 등도 매출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

◆ 할인점 괴롭혔던 ‘이커머스’가 시험대 올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도입된 2012년을 기점으로 홈플러스, 롯데마트의 매출은 감소세로 돌아섰다. 때마침 쿠팡, 위메프 등 소셜커머스, 11번가 등 오픈마켓이 ‘최저가 전쟁’에 나서면서 이들 할인점 매출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이로 인해 할인점 사업 모델에 대한 우려감이 컸지만, 3사 모두 비용 통제 및 상품력 강화 전략을 내세워 이커머스업체발(發) 공세를 극복해 나가는 상황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수십개나 되는 이커머스와 가격 경쟁을 벌여선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면서 “할인점만의 ‘마이 웨이’를 걸은 것이 흑자 전환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3사 중 체력이 월등한 이마트 정도만이 온라인에서도 혈투를 지속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리어 최근 들어서는 최저가 전쟁을 일으켰던 이커머스 기업들이 고전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이베이(G마켓·옥션)를 제외한 주요 이커머스 4개사(쿠팡·티켓몬스터·위메프·11번가)는 총 1조원의 손실을 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기업은 서둘러 추가 투자를 받아야 할 정도로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소셜커머스 성장률이 지난해 하반기 들어 0%에 가까울 정도로 떨어지는 등 역마진(팔수록 손실)에 기반을 둔 사업 구조가 종식되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면서 “기존 유통업체가 다시 주목받을 시점”이라고 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이커머스가 유통채널의 대세로 자리잡을 것이라는데 이견은 없지만 자금력이 떨어지는 곳이 손을 드는 등 머지않아 이커머스업계가 재편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