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랜만에 국내 중견 해운사들이 잇따라 선박 발주에 나섰다는 낭보가 전해졌습니다. 최악의 시기를 거친 한국 해운업계가 조금씩 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정작 해운사들의 선박 발주에도 국내 조선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신세입니다. 중국 조선소들의 가격 경쟁력이 압도적이다 보니 국내 해운사들조차 중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겁니다. 국내 조선 업계에서는 "배 한 척이 아쉬운 판인데 애국심에 호소할 수도 없고…"라며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19일 조선·해운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국내 한 중견 해운사는 최근 중국 양쯔장조선에 6만3000DWT(선박 자체의 무게를 제외한 순수한 화물을 적재할 수 있는 t수)급 화물선 5척을 주문했습니다. 업계에서는 한 척당 가격을 2930만달러(약 331억원) 정도로 추정합니다. 비슷한 규모의 선박이 국내 조선소에선 3000만달러 중후반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싼 가격입니다. 다른 중견 해운사도 중국 조선소에 케이프사이즈(10만DWT)급 벌크선 4척 발주를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국내 해운사 입장에서는 가격이 20%가량 싼 중국 조선소를 외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문제는 중국 조선소의 가격 경쟁력에는 인건비 외에도 중국 정부의 지원이 단단히 한몫을 한다는 겁니다. 중국은 조선소에 선박 건조 대금의 90%까지 대출해주는 금융 지원을 정부 주도로 해줍니다. 반면 중국과 경쟁하는 우리 중견 조선소들은 대부분 채권단 관리를 받다 보니 금융 지원은커녕 엄격한 수주 가이드라인 때문에 저가 수주는 아예 꿈도 못 꿉니다. 이러니 중국과 가격 경쟁 자체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애국심으로 장사할 수 없는 노릇이니 가격이 더 높은 한국 조선소에 발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에 중견 조선소 관계자는 "지금 같은 혹한의 업황 속에서는 조선소로서는 저가 수주라도 해 일단 최소한의 시설, 인력을 유지하는 게 급선무"라며 "우리 중소 중견사들이 문 닫으면 결국 중국 업체들이 환호성을 지를 것이 뻔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고용유지 지원금 같은 예산을 선박 건조 비용에 보전해 주는 등의 '링거 처방'이라도 고민해 달라"고 읍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