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카페와 독창적인 인테리어를 한 이색 맛집들이 줄지어 늘어선 서울 종로구 삼청동길.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와 가족 나들이를 겸한 주말 외식 장소로, 또 주중에는 새로운 회식 문화를 추구하는 젊은 직장인들의 발길이 북적이던 삼청동 상권이 특유의 개성을 잃으면서 시들어가고 있다.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임차인들은 하나둘 삼청동을 떠났고, 활기를 잃기 시작한 상권을 찾는 이들도 줄었다.

지난 14일 오후 찾아간 삼청동 일대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기 넘치던 분위기가 사라졌다. 삼청동 파출소와 총리 공관이 있는 약 800m 길이의 삼청동 카페골목에는 ‘임대문의’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나붙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임차인이 없어 비워진 매장이 현재 삼청동 카페골목에 5곳이나 된다. 임대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임차인이 떠나 새로운 임차인을 찾고 있는 가게도 15곳이나 됐다.

서울 삼청동 카페골목에 있는 매장 곳곳에 임대 문의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삼청동 카페골목 중심거리 이면도로에 있는 66㎡짜리 1층 매장의 경우 벌써 2년 넘게 비어 있다. 보증금 1억원에 월세 500만원으로 중심 상권 쪽보다 임대료가 낮은 편이지만, 유동인구가 적은 탓에 임대 문의도 거의 없다고 인근 공인 중개사무소 관계자들이 귀띔했다.

상권은 풀이 죽었지만 삼청동 일대 보증금과 월세는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른다. 삼청동 중심 거리는 전용면적 33㎡ 기준으로 보증금 1억원에 월세 400만원을 웃돈다. 삼청동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매장이 대거 생겨나던 2012~2013년 당시보다 임대료가 2배 이상 올랐다. 당시 입지 조건과 면적이 비슷했던 매장 월세는 150만~200만원 수준이었다.

상권 침체가 반영된 탓에 권리금은 거의 사라졌다. 삼청동 일대 권리금은 2014~2015년 2억~3억원까지 치솟았지만, 지금은 새로 들어올 임차인을 찾기 힘들어지면서 권리금을 받지 못하고 매장을 정리하는 상인들이 대부분이다.

임대료를 내려서라도 새 임차인을 찾을 법도 하지만, 임대료를 내리는 건물주는 별로 없다. 가게를 비워둘지언정 임대료 인하에는 인색하다.

삼청동에 있는 단골부동산 관계자는 “삼청동을 찾던 방문객이 2~3년 전부터 서서히 줄어들다가 작년 말부터는 중국 관광객까지 줄면서 유동인구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며 “임대료를 내려서라도 임차인을 채우기보다 임차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건물주들이 많아 상권이 점점 더 가라앉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삼청동 카페거리에 있는 한옥 형태의 상점들이 독특한 상권 매력을 뽐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치적 이슈까지 삼청동 상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작년 말부터 매주 토요일 열린 광화문 일대 시위가 매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경찰병력이 청와대와 인접한 삼청동으로의 진입로를 막으면서 유입인구가 많게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게 인근 자영업자들의 전언이다. 여기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급감한 것도 악재다.

삼청동 상권 자체가 경쟁력을 잃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청동은 2000년대 후반 개인이 창업한 레스토랑과 신진 디자이너들의 옷가게와 구두매장, 작은 공방을 겸한 액세서리 가게들이 인기를 끌면서 뜬 상권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관광객이 선호하는 한국 화장품, 프랜차이즈 음식점, 커피숍 위주로 바뀌면서 삼청동 고유의 매력이 사라졌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개성 있는 상점들이 사라지면서 삼청동 상권이 정체성을 잃었다”며 “상권이 살아나려면 건물주가 합리적인 임대료를 책정해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개성 있는 가게들이 다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