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가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만든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는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불사(不死)의 용사가 된 지크프리트가 나온다. 세계 곳곳에는 지크프리트 얘기처럼 용이 가진 엄청난 치유 능력을 묘사한 신화들이 넘쳐난다.

과학자들이 신화에서처럼 용의 피에서 사람을 구할 치료제를 찾았다. 미국 조지 메이슨대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프로테옴 연구 저널' 최신호에 코모도왕도마뱀(Komodo dragon)의 피에서 48종의 항생 물질을 찾았다고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코모도섬 등에 사는 코모도왕도마뱀은 몸길이 3m, 몸무게 70㎏으로 지구에서 가장 큰 파충류다. 물소나 사슴 같은 큰 동물을 잡아먹는다. 용의 후예로 손색이 없는 위용이다 .

연구진은 코모도왕도마뱀의 사냥 습성에서 항생제 개발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도마뱀은 한 입에 먹이를 삼키지 못하면 일단 뒤로 물러난다. 괜히 힘을 빼지 않아도 도마뱀의 침에 있는 독(毒)과 병원균들이 결국 먹잇감을 쓰러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모도왕도마뱀은 다른 동료가 물어도 멀쩡하다.

연구진은 도마뱀의 몸 안에 치명적인 병원균을 이겨내도록 하는 항생 물질이 있다고 추정했다.

지구에서 가장 큰 파충류인 코모도왕도마뱀. 혈액에서 수퍼박테리아를 퇴치할 항생물질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필라델피아의 한 동물원에서 코모도왕도마뱀의 피를 얻어 분석했다. 그 결과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48종의 항세균 펩타이드(단백질 조각)를 찾았다. 이것을 포도상구균(스타필로코쿠스 아우레우스)과 녹농균(슈도모나스 아에루기노사)에 시험했다. 이 세균들은 항생제가 듣지 않는 수퍼박테리아들을 낳은 일종의 조상이다. 실험 결과 48종 중 8종이 치료 효과를 보였다. 7종은 두 세균 모두 성장을 억제했으며 1종은 녹농균에만 효과를 보였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매년 70만명이 항생제가 듣지 않는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돼 죽는다. 지난달 말 세계보건기구(WHO)는 인체에 치명적인 수퍼박테리아 12종을 발표했다. 과연 마지막 용의 피에서 찾은 천연 항생제가 신화에서처럼 인류를 죽음에서 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