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은 UN이 세계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해 지정한 ‘여성의 날’이다. 1908년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오늘날 여성의 활약상은 정치,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글로벌 산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GM, IBM, HP 등이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했다. 하지만 유독 우리 대기업만큼은 ‘유리천장(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깨기가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기업경영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 중 2017년 임원인사를 실시한 18개 그룹에서 전체 임원 승진자 대비 여성 비중은 2.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직원 중 여성 비중이 24%에 달하지만 여성 임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이은형 국민대 교수(경영학)는 “국내 대기업에서 여성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지만, 고위직으로 가면 비율이 현격히 낮아진다”며 “능력 위주의 인사 체계를 정착시키고 다양한 인재를 활용하도록 기업문화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왼쪽에서 세번째)이 2015년 3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여성 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 올해 임원인사 여성 사장·부사장 승진자 없어

국내 30대 그룹 중 2017년 임원인사를 실시한 18개 그룹의 전체 임원 승진자(신규임원 포함)는 1517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여성은 37명(2.4%)이다.

사장·부사장급 승진자 중 여성은 없었으며, 전무급에서는 3명이 여성이었다. 여성 전무 승진자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장녀 장선윤 롯데호텔 전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등 오너가 외 샐러리맨으로는 조미진 현대자동차그룹 전무(인재개발원 부원장)가 유일했다. 남성 임원 승진자 중 20.5%(303명)가 전무급 이상인 것과 대조를 이뤘다.

여성임원 승진자의 91.9%(34명)는 상무급에 집중됐다. 임원 승진자 중 여성 비율로 보면 신세계그룹이 10.2%(5명)로 가장 높았고, CJ(5.7%,4명), 현대백화점(5.0%,2명), 롯데(3.8%,10명) 순이었다. 유통·소비재 기업에서 여성이 강세를 보였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5년 3월 여성임원과의 간담회에서 “여성임원 비율을 30%까지 높이겠다”고 말했다.

현대차(4명), LG(4명), KT(2명), GS(1명), 한화(1명), 대림(1명), 효성(1명)는 여성임원 승진자를 배출했으나 예년에 비해 숫자가 늘어나지는 않았다.

포스코, 현대중공업, LS, 금호아시아나, 대우건설, 한국타이어 등은 2017년 임원인사에서 여성 승진자가 1명도 없었다. 현대중공업은 총 96명의 임원 승진자를 냈지만 여성은 배제했다. 포스코(33명), LS(31명)도 30명 이상의 임원 승진자가 나왔지만 여성은 전무했다.

출처=CEO스코어

◆ 한국, OECD 29개국 중 유리천장 지수 ‘꼴찌’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29개국 중 유리천장 지수 부문에서 29위로 꼴찌를 차지했다. 유리천장 지수는 고위직 여성 비율, 남녀 경제활동 참여 비율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점수가 낮을수록 유리천장이 단단하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국은 25점으로 일본(28.8점), 터키(27.2점)와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내에서 여성임원 비율이 높은 기업이 낮은 기업보다 좋은 실적을 냈다고 지난달 보도했다. 신문은 2015년 9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여성임원 비율이 10% 이상인 기업의 영업이익 증가율이 42%로 전체 상장 기업 평균(34%)보다 높았다고 했다.

여성임원 비중과 실적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성에 신경을 쓰는 기업이 인재 다양성 측면에서 양호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한국의 양성평등 수준은 2016년 144개국 중 116위로 박근혜 대통령 취임 전인 2012년(108위)보다 오히려 후퇴했다고 전했다. 남녀 임금격차가 더 벌어진데다 여성의 사회 진출도 활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은형 국민대 교수는 “국내 대기업이 인적자원개발(HRD) 프로그램을 개선, 여성 직원의 역량 계발에 신경을 써야 한다”면서 “여성이 고위직에 진출할 수 있는 비전과 근로의욕을 심어주는 것이 경쟁력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