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공사 현장. 레미콘과 대형 크레인이 굉음을 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축구장 24개 넓이에 이르는 17만㎡(약 5만2000평) 부지 곳곳에 대형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LG전자가 입주할 8~9층짜리 연구동 4개 건물은 내장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단지의 핵심인 공동실험센터도 유리창을 씌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경기도 평택에서도 삼성이 15조원 이상을 투자한 첨단 반도체 공장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 서울 북서쪽 끝자락과 수도권 남부 일대에 초대형 R&D(연구개발) 단지와 생산 공장이 들어서면서,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띠는 것은 물론 해당 지역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논밭이 첨단 R&D센터로 변신

LG그룹은 사이언스파크 건립에 모두 4조원을 쏟아붓고 있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우수한 연구 인력 확보를 위해 젊은 층이 선호하는 서울에 누구나 일하고 싶어 하는 연구소를 차리겠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올해 4분기 LG전자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16개 연구동에 LG화학·LG디스플레이 등 LG그룹 9개 계열사 연구 인력 2만2000명이 차례로 입주하게 된다.

민윤기 LG사이언스파크 건설추진팀장은 "그룹 내 전체 연구 인력이 3만5000명 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당장 출시할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 인력을 제외한 모든 연구 역량을 LG사이언스파크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파주·대전·구미 등에 흩어져 있는 LG 연구원들의 대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LG사이언스파크 주변으로는 코오롱·귀뚜라미·희성그룹 연구소도 차례로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 곳곳에서 연구소들이 솟아 나오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서울 변두리에… - 서울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단지 공사 현장. 올 4분기 LG전자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LG그룹 9개 계열사 연구원 2만2000명이 입주할 예정이다.

마곡동에서 20년째 살고 있는 치과의사 김성훈(55)씨는 "사이언스파크가 자리 잡은 마곡지구는 과거 700년간 논밭이었던 곳"이라며 "LG사이언스파크 덕분에 미분양이 넘쳐나던 강서구의 위상이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마곡을 변두리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시선도 변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연구 인력이 몰려든다는 기대감에 부동산 가격이 몇 억씩 오르고 건물 신축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연구위원은 "마곡은 서울에서 대규모 산업·연구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라며 "기업이 서울이라는 입지를 기반으로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지역 사회를 부흥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지난달 마곡지구에 'M밸리'라는 브랜드를 붙이고 이 지역을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평택의 부흥 이끈 삼성 반도체 공장

경기도 평택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16일 찾은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 단지 건설 현장에서는 점심시간을 맞아 1만8000명의 건설 근로자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들은 출입구 앞에 늘어선 수십 대의 버스에 올라타고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오가는 식당버스로 인해 식사 시간 때마다 교통 체증이 벌어질 정도였다. 공사장 인근에도 근로자들을 상대로 한 노점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라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김유진(45)씨는 "하루에 60만~70만원 이상은 꾸준하게 판매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허벌판이었던 공장 부지 인근에는 오피스텔과 식당가·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다.

수도권 끝자락에… - 올 상반기 가동을 앞두고 내부 시설 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평택 삼성 반도체 공장. 3차원 낸드 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는 이 공장 건설에는 15조6000억원이 투입됐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은 올해 5~6월 중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평택시가 논밭을 개간해 추진하는 고덕국제신도시 한쪽에 자리 잡은 289만㎡(약 87만5000평) 부지에 우뚝 선 3차원 낸드 플래시 메모리 공장은 생산 설비를 설치하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었다. 공장 높이만 80m로, 아파트 25층 높이에 이른다. 공장 가동을 위한 부대 건물만 23동(棟)이다. 공장이 가동되면 3000명의 근로자가 평택 공장에서 근무하게 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4시간 근무하는 반도체 공장의 특성상 근로자 대부분이 평택 지역에 거주할 것”이라면서 “1500곳에 이르는 반도체 협력업체 중 25곳이 이미 평택에 입주했고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시 관계자는 “삼성전자 공장이 가동되면 수만 명 이상의 고용 유발 효과가 생기면서 평택이 수도권 남부의 첨단산업 메카로 떠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평택시의 삼성 반도체 타운 구상에 돌발 변수가 생겼다. 삼성전자는 당초 평택 반도체 단지를 계획하면서 최대 4개 라인을 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과 미래전략실 해체 등으로 인해 리스트가 큰 대규모 투자를 추가로 진행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현재 짓고 있는 생산라인 한 곳에만 15조6000억원이 투입됐다”면서 “내부적으로 이 생산라인이 한국에서 삼성이 진행하는 마지막 대규모 투자가 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