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관련 중국의 보복이 본격화하면서 국내 증시가 출렁이고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롯데그룹이 경북 성주골프장을 주한 미군의 사드 부지로 제공하겠다고 결정한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부터 중국 매출 비중이 높거나 중국인 관광객 유커(遊客) 의존도가 큰 기업 주가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금융 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화장품, 면세점·레저, 엔터테인먼트, 여행 등 매출 중 중국인 비중이 높은 4대 분야에서 지난달 27일 시가총액(시총)과 지난 3일 시총을 비교했을 때 3거래일 만에 시총 8조원 이상이 증발했다. 지난해 7월 정부가 사드 배치를 발표했을 때(3거래일간 시총 3877억원 감소)보다 20배 이상 타격이 크다.

그러나 한국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 전체로 충격이 퍼질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우선 주력 수출 기업들이 건재하다. 중국도 한국산 부품 등으로 완제품을 만들어 해외 수출을 하고 있어 섣불리 한국 제품 수입 차단이라는 강수(强手)를 두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6일 사드 보복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외국인 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300억원 이상을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하며 '바이(buy) 코리아'에 나섰다. 코스피지수는 2080선을 회복했고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 주가는 200만4000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화장품·면세점 등은 직격탄

전문가들은 중국의 사드 관련 보복 여파로 화장품·호텔·카지노·면세점·여행 분야 기업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는 사드 배치가 결정된 작년 7월 91만7000명에서 지난 1월 56만5000명까지 줄었다. 중국 당국이 지난 2일부터 한국 관광 상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지시한 만큼 유커 숫자는 더 급격하게 감소할 전망이다. 이런 점 때문에 중국인 매출 비중이 높은 화장품 회사인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지난달 28일부터 3일까지 3영업일 만에 18% 하락해 약 3조2000억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유커를 상대로 면세점·호텔 사업을 하는 호텔신라 주가도 이 기간 16% 하락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새 성장 동력으로 꼽혔던 화장품·면세점 등 분야가 집중 충격을 받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과거 유사 사례를 봤을 때 사드 보복의 충격이 약 1년 안팎 지속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특히 한·미 국방 당국이 올해 5~7월 사드 배치를 완료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상반기 내내 중국의 제재가 심해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주영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이 생긴 2012년 9월 중국이 일본 관광 상품 판매 금지를 내렸는데 그 후 관광객 수가 평년 수준을 회복하는 데 약 11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한국 주력 산업은 큰 영향 안 받아"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국의 사드 보복이 증시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초대형 악재는 안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중 수출품의 90% 이상이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원료나 부품인 중간재·자본재다. 중국 정부가 한국 제품 수입을 막는 수준까지 보복의 강도를 높이면 중국 내 완제품 제조 기업이나 수출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보복의 강도와 범위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또 국내 경제를 떠받치는 주력 산업인 IT·반도체·화학 등에는 사드 제재의 불똥이 아직은 튀지 않고 있다. 홍춘욱 키움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중간재를 주로 수출하는 대만이나 일본도 중국이 무역 제재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중국이 한국산 중간재나 자본재 비중까지 급격하게 줄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경기가 계속 좋아지고 있어 수출 기업들은 이익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앞으로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는 형태의 경제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는 점은 불안 요소다. 또 미국 기준 금리 인상과 대통령 탄핵 정국과 조기 대선 등 국내 정치 불안도 고조되고 있어,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때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