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정모씨는 요즘 매출이 줄어 울상이다. 작년 가을부터 월 매출이 10% 정도 빠졌다. 정씨는 "워낙 경기가 나빠 주부들이 1만원대 롤케이크 사는 것도 주저한다"며 "빵은 (김영란법 선물 한도인) 5만원을 넘지 않으니까 김영란법 영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전반적으로 소비 심리가 무너져서 그런지 예전만큼 빵이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연초부터 내수(內需)가 꽁꽁 얼어붙어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9년 만에 국내 소비가 처음으로 3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2일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국내 소비를 뜻하는 소매판매 증가율(전월 대비)은 작년 11월과 12월에 ―0.3%, ―0.5% 순서로 뒷걸음질치더니 올해 1월에는 ―2.2%로 주저앉았다.

9년 만에 처음으로 석 달 연속 소비 감소

정초부터 소비 절벽이 가팔라진 이유는 가계 소득 증가세가 주춤한 데다, 경기 전망마저 불투명해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작년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 근로소득의 증가율은 0%였다. 소득이 늘지 않으니 씀씀이가 줄어들기 마련이다. 작년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처분 가능한 소득 대비 쓴 금액 비율)은 71.1%로 역대 최저치였다.

계층 간에 소득 격차가 벌어지는 것도 소비 위축을 부른다. 작년 하위 20% 가계의 소득(월 145만원)은 5.6% 줄고, 상위 20%는 소득(835만원)이 2.1% 늘었다. 수입이 감소한 저소득층은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고, 여윳돈이 있는 고소득층은 남의 시선을 피해 해외에 나가 돈을 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구조적으로 국내에서 '소비 공동화' 현상이 빚어진다는 얘기다. 외국에 나가 쓴 돈은 국내 소비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게다가 올해 1월에는 설 명절 효과도 희미했다. 경기 침체 속에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의 영향으로 명절 선물 판매가 저조하면서 소비가 가라앉는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작년 1월과 비교해 올해 1월에는 비싼 물건이 많은 백화점 매출이 2.5% 감소했고, 저렴한 물건을 파는 대형 할인점 매출은 8.3% 늘었다.

조금만 비싸도 지갑 닫는다

가격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은 값이 조금만 올라도 지갑을 닫고 있다. 1월 승용차 판매는 전월보다 13% 급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연말 자동차 할인 이벤트가 연초에 끝나서 실질적인 구매 가격이 오르자 신차 구입을 주저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선물세트 가격이 청탁금지법에서 정한 선물 상한액(5만원)을 대부분 뛰어넘는 화장품 소비도 4.3% 줄어들었다.

수입이 적은 젊은 층 위주로 소비 감소와 관련한 신조어가 유행한다. '인간 사료(값싼 대용량 먹을거리)', '냉장고 파먹기(냉장고 속 식재료를 다 먹을 때까지 장을 보지 않기)' 같은 말이 등장했다.

2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가격을 중시하는 트렌드를 대변하는 키워드인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언급한 SNS 메시지가 2014년 25만여건에서 작년 89만여건으로 2년 사이 3배 넘게 증가했다.

수출 증가 효과 보려면 반년은 걸려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면 올해 성장률에도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GDP를 구성하는 요소 중 소비가 절반을 차지한다. 소비 절벽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내건 올해 성장률 2.6%를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은 올해 1분기 성장률이 잘해야 0%대 중반에 그칠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는 최근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는 수출이 내수를 견인해주면 소비 절벽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걸고 있다. 2월 수출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은 20.2%로 1월(11.2%)에 이어 두 달 연속 두 자릿수 증가율을 나타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고 유가(油價)가 올라 수출액이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수출이 늘었다고 해서 내수를 확산시키는 효과를 보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수출 증가→고용 확대→가계 소득 증가→소비 촉진'의 흐름이 나타나려면 적어도 6개월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상반기에는 수출 증가가 내수에 반영되기 어려운 데다, 하반기에는 미국 주도의 보호무역주의가 기세를 올리면서 수출마저도 꺾일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가 불확실한 대외 여건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가계 소득을 꾸준히 올릴 수 있는 대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