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신한·KB·하나·우리·농협 등 5대 금융그룹은 최근 지주 회장, 은행장과 주요 계열사 CEO에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포진시키며 불꽃 튀는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들은 글로벌과 디지털을 중심으로 '금융 혁신'에 가속도를 붙이며 치열한 승부를 펼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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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의 글로벌 경쟁, 디지털 경쟁은 지금까지와는 확연하게 다른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 금융의 '글로벌 3.0' 시대, '디지털 3.0'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의 글로벌 진출은 해외 지점을 두고 한국 기업과 교민 상대 영업으로 문을 연 '글로벌 1.0' 시대, 현지 법인 설립과 지점 확대로 네트워크를 넓힌 '글로벌 2.0' 시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지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한 맞춤형 영업으로 수익을 거두는 '글로벌 3.0'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해외로 나아간 한국 금융이 현지화 전략으로 이제 막 열매를 맺기 시작한 셈이다.

한국 금융의 디지털화(化)는 '빛의 속도'로 진행돼 왔다. ATM과 텔레뱅킹으로 시작한 '디지털 1.0' 시대, 인터넷 뱅킹이 확산된 '디지털 2.0'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모바일·빅데이터·핀테크 기반의 '디지털 3.0' 시대로 도약하고 있다. 금융과 기술의 융합 단계로 금융그룹들이 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의 혁신 전략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과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을 두 기둥으로 삼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디지털이 주도하는 사회 변화에 맞는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 외부와 적극 협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한금융은 핀테크 기업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신한 퓨처스 랩'을 도입했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핀테크 기업 창업자와 예비 창업자를 발굴, 기술·법률·특허·해외진출 등과 관련한 전문가 멘토링을 제공한다. 신한금융은 퓨처스 랩 프로그램에 참여한 핀테크 기업들과 12건의 공동사업 모델을 개발했고 58억원을 투자했다.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도입을 위한 사업도 퓨처스 랩 참여 업체와 진행 중이다. 비즈니스 동반자인 핀테크 기업들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발전시켜 '금융 생태계'를 넓혀나가는 것이다.

글로벌화(globalization)와 현지화(localization)의 합성어인 글로컬라이제이션의 대표적 사례는 베트남 진출이다. 은행뿐 아니라 카드·금융투자·생명이 동시 진출, 현지인 고객 비중을 84%로 높이고 연간 400억원대 당기순이익을 올렸다.

KB금융그룹은 윤종규 회장이 2월에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미얀마 등 동남아 4개국을 직접 방문하며 글로벌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캄보디아에서는 작년 9월 글로벌 디지털 뱅크 '리브 KB 캄보디아' 출범에 이어 수도 프놈펜 내 3개 지점망을 구축해 온·오프라인 영업을 동시에 확장하고 있다. 라오스에선 한상(韓商) 기업 코라오(KOLAO)와 합작으로 리스회사 'KB 코라오 리싱'을 출범시켰다. 베트남에선 하노이 사무소의 지점 전환을 포함한 은행 진출 확대, 카드·증권의 신규 진출이 추진되고 있다. 미얀마 주택건설개발은행과 양해각서 체결로 현지 진출을 위한 발판도 마련했다.

KB금융의 디지털화는 핀테크를 중심으로 진화하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start-up·창업 초기 기업) 지원을 위한 'KB 이노베이션 허브'를 가동, 20개 업체를 육성 중이다.

회계법인·특허법인·외국 대사관·국내 대기업 등이 참여한 'KB 오아시스 멘토단'의 지원과 KB금융 계열사의 투자로 핀테크 업체들을 뒷받침한다. 윤 회장은 3월 초 미국 실리콘밸리를 방문, 현지 핀테크 업계와도 긴밀하게 접촉할 예정이다. 윤 회장은 신년사에서 "디지털 혁신으로 미래 금융을 선도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하나금융그룹의 글로벌 혁신은 그동안 확보한 해외 24개국 151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내실 있는 실속 다지기'를 지향하고 있다. '2025년까지 글로벌 비중 40% 달성'이 목표다. 이에 따라 국가별 특성에 따라 수익성 높은 분야를 발굴, 현지 맞춤형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미얀마 농민과 영세 수공업자를 대상으로 50만원 미만 소액 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하나 마이크로 파이낸스', 중국 국제자본 유한공사와 하나대투증권의 공동 사업을 통한 리스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은행뿐 아니라 비(非)은행 계열사의 해외 진출을 통해 글로벌화를 다각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금융은 디지털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GO처럼 하나금융 계열사 영업점이나 쿠폰 제휴 매장 근처에서 '하나머니GO'를 실행하면, 하나 머니나 쿠폰이 자동 발급되는 증강현실(AR) 서비스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통합 멤버십으로 개발한 '하나 멤버스'는 출시 8개월 만에 500만 회원을 확보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나은행이 설립한 핀테크 스타트업 멘토링 센터 '1Q 랩'에선 인공지능, 지능형 로봇, 로보어드바이저, P2P 대출, 간편 결제 관련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민영화를 마무리한 데 이어 이광구 행장이 연임하면서 종합금융그룹으로 재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안에 금융지주 전환을 통해 글로벌·디지털 경쟁력의 기반을 강화할 계획이다. 금융지주가 되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올라가고 자금 조달 비용이 낮아진다. 계열사 출자에 대한 제약이 줄어들고 계열사 간 정보 교류가 확대되는 장점도 있다.

우리은행은 세계 25개국에 252개 네트워크를 구축,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해외 영업망을 확보하고 있다. 이 가운데 192개 점포가 동남아에 집중돼 있다. 이광구 행장은 "252개 네트워크를 500개로 늘리겠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다. 그는 "5000만 대한민국 국민 고객을 기반으로 6억 동남아 고객을 확보하겠다"고 동남아 공략 목표를 밝혔다. 우리은행은 이를 위해 '글로벌 위비 플랫폼'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해외 진출 국가에서 모바일을 활용해 대출·해외송금·페이·통장 등 서비스를 폭넓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NH농협금융은 '디지털', '글로벌'과 함께 '은퇴금융'을 3대 신(新)성장동력으로 추진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를 모(母)회사로 하는 특성을 살려 올해부터 아시아 농업 국가들을 상대로 금융과 유통을 접목한 글로벌 진출 비즈니스 모델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 농축산물 수출과 연계해 금융이 실물을 이끄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농협금융의 글로벌 진출은 중국 공소그룹과 합작을 통한 융자리스 지분 투자, 베트남 하노이 지점 개설, 인도 뉴델리 사무소 개설, 미얀마 소액대출회사 설립 등을 이뤄냈다.

농협금융은 올해 조직 개편을 통해 지주에 디지털금융단, 은행에 디지털뱅킹본부와 빅데이터전략단을 각각 신설하며 디지털 금융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출시 5개월 만에 50만 고객을 돌파한 '올원 뱅크'에 하나로마트 간편 결제 기능 도입, 농촌 여행 서비스 등을 추가하고 베트남 등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은퇴를 준비하는 고객들을 위한 은퇴 설계 상담 창구를 현재 202곳에서 859곳으로 확대하고, 은퇴 설계 5종 특화 상품 판매에도 주력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