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정보기술)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17'은 인공 지능(AI) 열풍에 휩싸였다. 미국 포드, 중국 하이얼·화웨이, 독일 폴크스바겐, 우리나라 LG전자 등 700개가 넘는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이 앞다퉈 인공지능 알렉사(Alexa)를 탑재해 신개념의 제품을 선보였다. 미국 아마존의 인공지능 알렉사는 고객과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는 기술이다. 전시회에는 고객과 대화하는 냉장고·스마트폰·자동차들로 넘쳐났다.

인간과 대화하는 음성 인식 기술, 인간 못지않은 판단력을 갖춘 인공지능 등 신기술이 세계 산업계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IBM 왓슨 체험룸에서 다리오 길 과학기술부문 총괄부사장이 막대기 모양의 컨트롤러로 인공지능 왓슨을 시연하고 있다. 이곳은 왓슨의 두뇌를 재현한 공간으로, 막대기를 움직이면 화면에 인공지능이 수많은 데이터를 계산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국내에서는 올 초 미국 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 쇼크가 의료계를 강타했다. 길병원이 두 달간 왓슨에게 암 환자 85명의 처방을 물어본 것이다. 왓슨은 10분 만에 수천개의 환자 유전자 특성과 수십만개의 논문을 분석해 처방을 내린다. 암환자들은 의료진과 왓슨의 처방이 엇갈릴 때 대부분 왓슨의 처방을 선택했다. 인공지능이 인간 의사를 넘어선 것이다.

세상의 틀을 뒤엎을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전 세계 기술 기업(Tech Company)들이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산업에 빅데이터,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같은 첨단 IT(정보기술)를 융합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서비스와 상품을 쏟아내는 것을 말한다. 전성철 IGM세계경영연구원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은 한마디로 100개의 레고 조각으로 놀던 아이가 1억개의 레고 조각으로 놀게 된다는 의미"라고 했다. 스마트폰, 자동차 등 지난 100년간 우리 삶을 뒤흔든 발명품들이 100개의 레고로 만들어졌다면, 앞으로는 1억개의 레고로 신제품을 개발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국내 대표 테크 기업들, 혁신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자리 도전

삼성전자·LG전자·네이버·KT·SK텔레콤 등 우리나라 대표 하이테크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한 발 앞선 구글·애플·아마존 등 미국 테크 기업들의 뒤를 바짝 쫓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다음 달 선보일 스마트폰 갤럭시S8에 음성인식 인공지능 '빅스비'를 탑재한다. 고객이 말하는 내용을 인식해 바로 처리해주는 기술이다. 애플 '시리'와 구글 '구글 어시스턴트'에 맞대응하는 것이다. 삼성은 여기에 경쟁사에는 없는 기술을 내놓을 계획이다. 스마트폰에 글자와 사물을 인식하는 눈[目]을 추가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물이나 글씨를 촬영하면 빅스비가 이런 정보를 확인해 쇼핑 정보를 제공하거나 번역을 해주는 방식이다. 인공지능은 듣고 말하는 데서 보는 단계로 진화하는 중이다.

LG전자의 '시그니처 냉장고'는 가전 분야의 혁신 제품이다. 이 제품에는 온도·습도는 물론이고 노크, 동작 감지, 거리 측정, 문 여닫기 등 다양한 인간의 행동을 읽는 센서 20여 개가 들어간다. 예컨대 냉장고 안의 식품이 상할 때 발생하는 미량의 가스를 측정해 고객에게 알려주는 식이다. 이 회사는 지난 2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17'에서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전략 스마트폰 G6를 선보이기도 했다.

네이버는 조만간 대화형 인공지능 엔진 '아미카'를 선보일 계획이다. 사용자의 음성 명령을 인식해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다. 가정용 로봇인 'M1'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자율주행자동차 관련 기술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카메라·레이더 등으로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정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장애물을 피하며 달리는 기술이다.

통신을 넘어 인공지능·커넥티드카·차세대 금융… 신개념의 통신 세상 열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 3사는 전화(電話)라는 틀을 깨는 변화에 나서고 있다. 통신 3사는 5G(5세대 이동통신)라는 통신 인프라를 앞세워 인공지능·커넥티드카·금융 등 3개 영역의 혁신을 주도한다는 전략이다. 5G는 현재 이동통신 기술인 LTE보다 40배나 빠르게 데이터를 전달하는 기술이다. 앞으로 전화기뿐만 아니라 자동차·세탁기·냉장고·침대·자동판매기 등 모든 기기를 통신망(網)에 연결하는 초연결 사회를 노리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 스피커 누구(NUGU)를 출시했다. SK텔레콤은 커넥티드카 분야에서는 독일 자동차회사 BMW와 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국내에서 세계 최초 '5G 커넥티트카' 시범 운행 시연회를 열기도 했다. 하나금융그룹과는 핀테크 전문회사 핀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2019년까지 신기술 분야에 5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KT는 지난 1월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 TV 셋톱박스 '기가(GiGA) 지니'를 선보였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손잡았다. KT는 올해 교통사고 발생때 차량 위치 정보를 구조기관에 보내주는 서비스를 벤츠에 제공할 계획이다. 또 조만간 온라인으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인터넷 전문 기업 K뱅크를 출범한다. LG유플러스는 작년 말 AI서비스사업부를 신설한 데 이어 연내 인공지능 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공학부 교수는 "국내 기술 기업들이 인공지능 같은 분야에서 최고 테크 기업으로 거듭나야 우리나라 전체 산업 경쟁력도 한두 단계 이상 껑충 뛰어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 커넥티드카(Connected Car)

인터넷과 연결된 인공지능(AI) 자동차. 자동차와 IT를 결합해 자동차를 일종의 달리는 컴퓨터로 만드는 기술이다. 자동차·집·사무실을 연결, 자동차에서 일상 업무를 볼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완벽한 자율 주행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

☞ 5세대(5G) 이동통신

현재 사용하고 있는 4세대 이동통신 LTE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가 40~100배가량 빠른 차세대 이동통신. 1GB 용량의 영화 한 편을 내려받는 데 0.1초면 된다. 5G 시대가 열리면 초고화질(UHD) 콘텐츠보다 수백 배 이상 데이터양이 많은 3D(입체) 영상을 활용한 홀로그램 통화, 가상현실(VR) 서비스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