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과 판매를 겸하는 ‘에너지프로슈머’를 통해 에너지신산업을 확대한다던 정부의 계획이 멈춰섰다. 관련법이 개정돼야 하는데 국회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1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3월 ‘이웃간 전력거래’ 에너지프로슈머 실증사업을 시작했다. 프로슈머란 프로듀서(producer·생산자)와 컨슈머(consumer·소비자)의 합성어로 에너지 생산과 소비를 함께 한다는 의미다. 프로슈머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직접 쓰고, 남는 전력을 이웃에 판매한다. 생산자와 소비자는 모두 전기요금을 줄일 수 있다.

◆ 멈춰선 에너지프로슈머 사업

산업부는 지난해 3월 주택 18채가 있는 수원시 솔대 전원마을 등을 에너지프로슈머 실증마을로 선정했다. 솔대마을 18채의 주택 중 11채는 태양광 패널을 통해 일부 전기를 만들어 쓰고 있다. 11개 가구 중 정부의 전력 프로슈머 실증사업에 참여한 가구는 4개 가구다. 2개 가구는 전력 프로슈머고, 2개 가구는 전력 컨슈머다.

전력 프로슈머는 태양광을 전기로 바꿔 자체적으로 소비하고 남는 용량을 전력 컨슈머에게 판매한다. 이를 통해 4개 가구는 모두 전기요금 절감 효과를 누린다. 한전 추산에 따르면 프로슈머는 연간 약 36만원, 컨슈머는 약 14만4000원에 달하는 전기료를 줄일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환경 보호에도 기여함은 물론이다.

산업부 제공

이어 정부는 지난해 5월 학교와 빌딩 옥상을 활용한 대형 에너지프로슈머 시범사업도 시작했다. 서울 동작구 상현초등학교는 91킬로와트(kW) 수준의 태양광 발전설비를 통해 생산한 전력 중 사용하고 남은 분량을 인근 중앙하이츠빌 아파트 544세대에 판매한다. 또 A빌딩에 설치된 태양광에서 생산한 전기도 주변 전력 사용량이 많은 3가구에 판매한다.

그러나 이후 에너지프로슈머 사업은 사실상 멈춰섰다. 당초 정부의 안은 ▲1단계 프로슈머와 이웃간의 거래 ▲2단계 대형 프로슈머(학교)와 대형 소비자(아파트)간의 거래에 이어 ▲3단계 프로슈머 일반사업자의 발전 및 판매 겸업 허용까지 진행할 예정이었다.

3단계는 사업자가 태양광 발전을 이용해 생산한 전력을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기업형 프로슈머’다. 산업부 관계자는 “3단계는 1, 2단계와 콘셉트는 같지만, 범위가 훨씬 넓다”고 설명했다.

사업이 멈춰선 이유로는 아직은 이웃간 거래라서 거리에 제약이 있다는 점과 동일 기종 변압기를 사용해야만 하는 등 물리적인 제약이 있다는 점 등이 꼽힌다. 아울러 올해부터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완화됨에 따라 도입 유인이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실증사업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복수의 산업부 관계자들은 “전력 발전과 판매를 겸업할 수 없도록 규정된 현행 전기사업법이 국회에서 개정되지 못하고 있어 프로슈머사업 확대를 막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수원시 솔대마을에 설치된 태양광패널 가로등.

◆ “발전과 판매 겸업 허용해야 프로슈머 확산”

앞서 정부는 지난해 6월 국회 상임위원회에 에너지프로슈머 등 에너지신산업 제도 개선을 담은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지난해 11월이 돼서야 법안소위에서 논의됐지만, 일부 야당 의원들이 “전력시장을 민영화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반대하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산업부는 한국전력공사가 공기업인 상황에서 법개정이 민영화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개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이어 지난주 열린 법안소위에서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부 전체로는 80여개, 에너지관련으로는 40여개 법안이 국회 법안소위 통과만 기다리고 있다”며 “한시가 급한 에너지신산업 발전이 발목을 잡힌 셈”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력시장은 한국전력공사가 독점하고 있다. 한전 자회사인 발전5사 등이 운영하는 발전소 등에서 생산된 전기를 한전이 구입하고 이를 다시 공장과 가정 등으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태양광과 풍력 등 신산업을 통해 생산한 전력도 일단 한전에 팔고 한전이 이를 되팔아야만 한다. 한전이 송배전시설을 설치하기 어려운 도서지역(섬)에서 발전기를 설치해 자체적으로 전력을 담당하는 경우 등 극히 일부 예외만 인정된다.

전기사업법 개정을 통해 에너지프로슈머의 발전판매 겸업이 허용되면 신재생에너지 사업자의 수요가 많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전력 시장 진입 장벽이 확 낮아짐으로써 다양한 민간 사업자가 등장할 수 있다는 것. 실제 지난해 6월 정부는 한전이 독점한 전력 판매시장을 민간에 개방해 다양한 전력 사업모델을 창출하겠다고 밝혔었지만, 이도 유야무야됐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사업법 개정부터 이뤄져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로 전기의 60%를 공급하는 덴마크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7%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소비자가 한전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자로부터 전기를 구매할 수 있게 법을 고치면 소비자 선택권이 확대돼 효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병선 국회 산자위 수석전문위원은 “최근 법안소위에서는 시간이 없어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논의하지 못했다”며 “3월중 법안소위에서 다시 논의해 보겠다”고 밝혔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기사업법 개정은 반드시 에너지신산업 확대 차원에서 바라봐야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