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5100억원대의 내실 있는 중견기업 S사(社)는 국회 계류 중인 상법(商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까 봐 속앓이하고 있다. 개정안 통과 시 경영권 상실 리스크(위험)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2~3년 내 외국인 주주들에게 경영권을 뺏길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회사 최대 주주의 지분율은 45% 안팎으로 외국인 투자자(20%)보다 월등히 높다. 하지만 개정안의 주요 내용인 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외국인 투자자가 마음만 먹으면 2019년 3월 주총까지 차례로 사외이사(감사위원) 3명과 사내이사 1명을 가져가 7명의 이사진 중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경제의 허리인 중견기업들이 상법 개정 공포에 휩싸였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중견기업들이 해외 투기 자본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추진한 상법 개정이 실제로는 중견기업을 옥죄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본지가 26일 상장사협의회·코스닥협회와 함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경영권 위협에 노출되는 상장(上場) 중견기업을 파악한 결과 총 188개인 것으로 확인됐다. 인터넷·게임·전자제품 제조·의약품·의류·항공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대표 중견기업들이 모두 포함됐다. 이번 개정안이 타깃으로 삼은 대기업 상장 계열사(247개)에 맞먹는 숫자다.

이번 조사는 상법 개정안의 대상이 되는 상장 기업(1765개) 가운데 사외이사 3명 이상의 감사위원회를 둔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했다. 상장사협의회 측은 "이들 중견기업의 상당수는 외국 투기자본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2~3년 내 경영권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김범수 의장 측이 총 36.2%의 지분을 갖고 있는 카카오는 현재 상법으로는 외국 투기자본이 아무리 공격해도 끄떡없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황은 다르다. 개정안은 사외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 선임 때 단일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한다. 헤지펀드 4곳이 연합해 장내에서 2.5%씩 사 모았다가 주총 때 등장하면 바로 이사(감사위원 3명)를 확보할 수 있다. 투기자본은 또 개정안에 포함된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추가로 1~2명의 이사를 가져갈 수 있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여러 명을 선출할 때 각 주주가 특정 후보에게 몰표를 주는 방식이다. 지분율 10% 정도면 이사 1명을 확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카카오 이사회 멤버 8명 중 절반(감사위원 3명 포함)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현행 상법으로는 최대주주에 맞먹는 지분을 보유해야, 경영권 쟁탈전을 벌일 수 있었지만, 이번 개정안은 곳곳에 빈틈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 중견업체의 최고재무책임자는 "해외 투기자본에 똑같은 공격을 받아도 대기업은 실탄(현금)도 많고 옆에서 도와줄 백기사도 있지만 중견기업은 대부분 혼자 싸워야 해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연합회 반원익 부회장은 "중견기업 대표들 사이에 '다른 나라에 없는 법을 우리 정치권이 일부러 찾아내 기업 하는 사람의 의욕을 꺾는다'며 분노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국회에서 법 통과를 막아야 하지만, 정치권에 중견기업 편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감사위원 선임 때 지분이 아무리 많은 대주주도 의결권을 3%로 제한. 감사위원회는 3인 이상의 사외이사로 구성.

☞집중투표제 의무화

두 명 이상 이사를 선임할 때 특정 후보에 의결권을 몰아줄 수 있는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