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그룹의 컨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이 겉으로 보기에는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 삼성 측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끝나는 시기에 맞춰 3월 중 미래전략실을 해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데 부담을 지고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차장(사장) 등 미전실 1·2인자도 사퇴를 표명했다.

미전실 해체의 의미는 작을 수도, 클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가칭 삼성지주회사와 삼성사업회사로 쪼개질 경우 삼성지주회사가 미전실 기능을 그대로 이어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경우 미전실 해체는 ‘올드 멤버(old member)’의 교체라는 비교적 작은 의미로 끝난다.

미전실은 1959년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비서실에서 시작해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왔다. 미전실이 어떤 식으로든 부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60여개 계열사에 종업원만 30만명에 달하는 삼성 그룹이 컨트롤 타워 없이 경영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미전실 해체가 삼성의 ‘올드 노멀(old normal·오래된 규범)’이 바뀌는 계기가 될 지 지켜보고 있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삼성의 규범이 바뀐다면, 장기적으로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다. 이 경우 미전실 해체의 의미는 크다.

‘관리의 삼성’은 신속하고 일사불란하게 경영 계획을 실행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각종 리스크(위험 요소)를 한 치의 오류도 없이 관리한다는 의미도 있다. 정치권력이 삼성 사업이나 경영권 승계에 위협을 가하지 않도록 최순실 같은 인물까지 관리해 두는 게 삼성이 추구해 온 무결점 관리의 적확한 사례다.

‘삼성 장학생’을 자처하며 무조건 삼성 감싸기로 최고 경영진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는 기자와 검찰, 그리고 ‘삼성 저격수’를 자처하며 삼성 일이라면 무조건 공격부터하고 보는 시민 단체와 국회의원은 ‘관리의 삼성’의 오랜 세월이 낳은 ‘샴쌍둥이’다.

미전실 해체는 삼성을 둘러싼 병폐를 해결할 ‘만능열쇠’나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비서실·구조조정본부·미전실을 정신적으로 지탱해온 근간인 ‘관리의 삼성’을 대체할 ‘뉴 노멀(new normal)’의 정립이 진짜 문제를 해결할 열쇠다.

뉴 노멀이 만들어지면, 삼성이 복잡한 계열사 관리를 이유로 그룹 컨트롤 타워 기능을 부활시키더라도 이를 정경유착의 고리로 지목하거나 불투명한 경영의 상징으로 비판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건희 회장이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하고 삼성을 초일류 기업을 만드는 데는 약 20년이 걸렸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GE를 굴뚝 기업에서 일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탈바꿈 시키는 데는 15여년도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의 뉴 노멀을 만드는 작업은 이보다 더 지난한 작업이 될 것이다. 어쩌면 그의 평생 사업이 될 것이다. 삼성 스스로 체질 변화하는 것도 어려운 데,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도 상호작용하며 동반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뉴 노멀을 만들 생각이 있는 지, 이를 위해 1년짜리 달력이 아닌 30년짜리 달력을 놓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탈퇴’ ‘10억원 이상 이사회 결의’ ‘미전실 해체’ 등의 수(手)를 두고 있는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