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삼성전자가 1000만원 이상의 후원금을 외부 기관에 지원하려면 반드시 내부 심의를 거쳐야 한다. 10억원 이상의 지출은 사외이사가 과반수를 차지하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고 그 내용은 외부에 공시한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으로 이어진 최순실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다. 삼성전자는 24일 본사인 수원 삼성디지털시티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대외 후원금과 관련한 투명성 강화 방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사회 결정에 따라 법무·재무·인사·커뮤니케이션 부서 팀장이 참여하는 심의 회의를 신설해 매주 회의를 갖는다. 이 회의에서 1000만원 이상의 모든 후원 요청에 대해 심의하게 된다. 심의 대상은 기부·후원·협찬금과 사회봉사활동, 산학 지원, 그룹 재단을 통한 기부금 등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모든 후원금 집행 결과는 분기에 한 번씩 경영진과 이사회 산하 감사위원회에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기부금에 한해 자기 자본의 0.5%(약 6800억원) 이상인 경우에만 이사회가 결정했고, 500억원 이상은 이사회 산하 경영위원회에서 맡아왔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정부 요청에 따라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낸 것이 특검 수사로 이어졌다"며 "앞으로는 기부금 지출을 투명하게 관리해 불필요한 오해를 차단하겠다"고 했다.

최순실 사태 수사 상황을 지켜보며 투명 경영을 주문해온 해외 투자자들의 입김도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해외 투자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는 IR팀에서 강하게 문제 제기를 했고, 내부적으로도 (이번 사태 이후) 통제 장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재계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앞서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도 22일, 23일 이사회를 각각 열고 10억원 이상 후원금에 대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마다 최순실 사태 후폭풍을 겪으면서 기부·후원금을 투명하게 운용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며 "삼성과 SK가 물꼬를 튼 만큼 주요 대기업마다 외부 후원금을 결정할 때 의사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남기기 위한 제도 도입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