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100만명 돌파, 가계부채 사상 최대 폭 증가 등 각종 악재로 '소비 절벽'이 가시화되고 있다. 고용 악화, 소득·소비 감소의 악순환이 발생하면서 1분기 경제성장률이 곤두박질칠 것으로 예상되자, 23일 정부가 부랴부랴 '내수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정책 공식 발표에 앞서 지난 21일 사전 브리핑에 나선 기획재정부 이찬우 차관보의 표정은 비장했다. 이 차관보는 "이대로 가면 1분기 성장률이 0%대 중반에도 못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소비 진작을 위해 일본 제도를 벤치마킹해 직장인들이 한 달에 한 번 일찍 퇴근하도록 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날'을 도입하기로 했다. 월~목요일 30분씩 더 일하는 대신 금요일엔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제도다. 가족과의 쇼핑, 외식 등을 즐기도록 유도하면서 소비를 촉진하겠다는 취지다.

또 소비 진작책으로 전통시장·대중교통 사용액의 소득 공제율을 기존 30%에서 40%로 올리고, 경차 유류세 환급 한도를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골프장의 세금 부담을 낮춰주는 골프산업 육성책도 4월에 발표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서민층 민생 대책의 일환으로 전세자금 대출 한도(현재 1억2000만원)와 월세 대출 한도(월 30만원)도 각각 1억3000만원, 월 40만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정부가 비상 태세에 돌입한 것은 내수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작년 9월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올해 농업 생산액이 약 38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돼 자영업자와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졌다. 하지만 정부 대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차갑다. 내수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청사진 없이 과거 대책을 재탕하거나 일본식 정책을 어설프게 흉내 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다음 달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내놓을 '가족과 함께하는 날'은 기업의 참여율이 저조하면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고, 실행된다 해도 실제 소비 증대 효과를 발휘할지도 미지수다. 월~목요일 초과 근무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는 지적도 있다.

관광열차 할인은 휴가철마다 나오던 이벤트이고, 소상공인 저리 융자를 위해 조성하는 전용자금(800억원)은 청탁금지법 피해 규모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수 진작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이번 정부 대책은 대부분 단기 대책뿐"이라며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 소비 심리를 북돋우는 종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