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암보다 더 부담이 되는 질병이 있다. 넘어져서 다치는 낙상(落傷)이다. 지난해 발표된 한국인 질병 부담 순위에서 낙상은 7위에 올랐고 간암과 위암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나이가 들면 근육과 뼈가 약해져 낙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오래가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인구의 3분의 1이 매년 한 번 이상 낙상을 겪는다. 과학자들이 노인들을 낙상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나섰다. 게임기와 스마트폰에 들어간 IT(정보통신) 기술에서부터 지진 감시와 기상 예보에 쓰는 센서까지 총동원됐다.

게임기 센서로 落傷 3주 전 예측

미국 미주리대 마조리 스쿠빅 교수 연구진은 최근 보스턴에서 열린 미국과학진흥협회(AAAS) 연례 모임에서 "센서로 노인의 발걸음을 분석해 3주 전에 낙상 사고를 예측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동작 인식 게임기 키네틱에 쓰인 센서를 집안에 설치해 노인의 발걸음을 분석했다. 이 센서는 적외선으로 인체의 윤곽을 파악한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노인 전용 거주지에 사는 85세 이상 23명을 대상으로 장기간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걷는 속도가 초당 5.1㎝ 줄어들면 3주 내 낙상 사고를 당할 확률이 86%로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속(步速)에 변화가 없으면 낙상 확률이 19.5%에 그쳤다. 걸음걸이가 둔해지면 낙상을 당할 위험이 4배로 커지는 것이다. 보폭(步幅)이 7.5㎝ 줄면 역시 낙상 확률이 51%로 커졌다.

한 번 낙상을 겪고 나면 사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운동 부족으로 균형 감각이 더 무뎌지고 근육, 뼈도 약해져 다시 낙상을 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낙상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미주리대 연구진은 이상 행동을 감지하는 적외선 센서를 설치한 가정에서는 평균 4.3년 동안 남의 도움 없이 자신의 집에서 살았지만 그렇지 않은 가정은 1.8년에 그쳤다고 밝혔다. 낙상 예방 기술 덕분에 2.5년을 더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독일 퓨처셰이프(FutureShape)사는 스마트폰의 터치스크린 기술을 낙상 경보에 도입했다. 터치스크린에 손가락을 대면 그 부분의 전기신호가 달라져 정보를 입력할 수 있다. 퓨처셰이프 연구진은 방바닥에 2㎜ 두께의 전기용량 감지 센서를 격자 형태로 깔았다. 사람이 바닥에 넘어지면 스마트폰에 손을 대듯 그 부분만 전기신호가 달라진다. 이 회사는 프랑스의 노인 요양시설에 이 장치를 설치해 4개월 동안 28번의 낙상 사고를 감지해 재빨리 후속 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재해 감시·기상 예보 기술도 한몫

노르웨이공대 SINTEF 연구소는 지난해 기압 센서로 낙상 사고를 감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전에도 발목이나 손목 등에 차는 낙상 감지 센서가 있었다. 갑자기 넘어지면 가속도가 달라지는 것을 감지하는 원리다. 하지만 힘이 빠져 스르르 주저앉거나 벽에 기대 넘어지면 가속도 변화가 크지 않아 감지를 하지 못한다. 노르웨이 연구진은 노인이 몸에 장착한 기압 센서와 벽에 설치한 기압 센서의 측정치가 달라지는 것으로 낙상을 감지하도록 했다. 기압 센서는 1㎝ 높이의 변화까지 측정할 수 있어 가속도 센서보다 훨씬 민감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미국 카네기멜런대 노해영 교수와 페이 장 교수는 지진 감시에 쓰는 진동 센서를 이용했다. 노인이 집 안을 돌아다니면 바닥이나 벽이 미세하게 진동한다. 연구진은 센서로 이런 진동을 감지해 노인의 걸음걸이 패턴을 알아냈다. 만약 이 패턴에 이상이 생기면 낙상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노인과 주변 사람들에게 동시에 경보를 보낸다.

국내에서도 낙상을 예측하는 연구가 시작됐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로봇연구단 김도익 박사 연구진은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과 빅데이터(대용량 정보분석) 기술을 융합해 낙상을 예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김 박사는 "노인들에게 센서가 달린 밴드를 손목이나 발목에 차도록 하면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집안 곳곳의 물건에 IoT 센서를 장착하면 밴드 없이도 노인의 행동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IoT 센서가 감지한 정보를 빅데이터 기술로 분석해 물건 사용 패턴이 평소와 다르면 낙상 사고 가능성이 있다고 경보를 내리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