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많은 플래시 메모리의 그러한 작은 장치에 들어본 적이 없다.'(인공지능)

'나는 그렇게 작은 휴대폰에 그렇게 큰 용량의 플래시 메모리가 가능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지.'(인간 번역사)

네이버의 인공지능 번역기 '파파고'와 인간 전문 번역사가 'I had never heard of so much flash memory in such a small device'라는 영어 문장을 번역한 결과이다. 누가 봐도 인간 번역사의 문장이 훨씬 매끄러웠다. 21일 서울 세종대에서 열린 인간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번역 대결이 인간의 압승으로 끝났다. 인공지능은 오래전 체스·퀴즈에서 인간 챔피언을 꺾은 데 이어 바둑과 포커에서도 인간을 눌렀지만 아직 인간의 언어와 감성을 이해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압승으로 끝난 번역 대결

국제통역번역협회와 세종대학교 공동 주최로 열린 이번 대결은 인공지능 번역기가 얼마나 인간의 수준에 근접했는지 가늠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인간 대표로는 전문 번역사 4명이 나섰고 인공지능 번역기는 네이버 파파고, 구글 번역기, 번역업체 시스트란의 번역기 등 세 가지 제품의 상용 버전을 사용했다. 대결은 모두 4문항으로 진행됐다. 한영 번역은 소설 '어머니와 딸'과 신문 칼럼 일부를 제시했고, 영한 번역은 스티브 잡스에 대한 칼럼과 미국 폭스뉴스 기사가 출제됐다. 출제와 심사를 맡은 곽중철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단 한 번도 번역되지 않은 글만을 골랐다"고 말했다. 번역사들에게는 5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주최 측은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인간에게 유리한 조건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21일 인간과 인공지능(AI) 간 첫 번역 대결이 벌어진 서울 세종대학교 광개토관에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이날 대결에 참여한 전문 번역사 4명은 구글·네이버·시스트란이 개발한 인공지능에 승리했다.

심사 결과 번역사와 인공지능의 격차는 상당히 컸다. 한영 번역에서 번역사들이 30점 만점에 평균 24점을 받은 것과 달리 인공지능은 8~13점을 받았고, 영한 번역에서도 번역사들은 평균 25점이었지만 인공지능은 9~15점이 고작이었다. 곽중철 교수는 "인공지능은 80~90%의 문장이 어법에 맞지 않았고 고유명사와 일반명사도 잘 분간하지 못했다"면서 "어순 재구성을 하지 않고 단어 순대로 나열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다만 숫자와 정형화된 문장이 많은 경제 기사 번역에서는 마치 사람이 번역한 것처럼 완벽한 문장을 일부 내놓기도 했다. 인공지능 번역기 사이에도 수준 차가 있었다. 구글 번역기의 정확도가 네이버와 시스트란보다 높았다.

일상생활에 도움이 현실적 목표

인공지능 번역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기술이다. 지난해 구글과 네이버가 선보인 인공신경망 방식 번역기가 과거보다 월등히 개선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김영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그룹장은 "과거에는 사람이 일일이 규칙을 입력하고 단어와 문장을 일대일로 맞췄다"면서 "하지만 인공신경망 번역은 간단한 규칙만 주면 스스로 문장과 단어를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미래학자들은 인공지능에 밀려 사라질 직업 1순위로 통번역사를 꼽아왔다. 인공지능 기업인 솔트룩스의 신석환 부사장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확인됐다"면서 "글과 말에는 감정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를 인공지능이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할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파파고를 개발한 김준석 네이버 리더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통번역기의 도움을 받는 정도가 현실적인 목표"라며 "단시일 내에 사람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