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 오를 때 국내 가격 '로켓 인상' 폭리"
'연봉 50% 돈잔치' 눈총… 사회 공헌은 쥐꼬리

지난해 국내 정유사들은 국제유가가 오를 때 기름값을 더 많이 올리는 수법으로 최대 실적을 거뒀다.

2015년 이후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지만 국내 석유 제품 가격의 인하 폭이 작아 소비자들이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 유가와 국내 휘발유 및 경유 가격의 추이를 비교한 결과, 국내 휘발유 가격의 비합리적인 구조로 소비자 혜택은 오히려 감소했다. 반면 정유사들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최대 기본급의 1000%에 달하는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SK이노베이션은 이미 설 연휴 직전 성과급으로 연봉의 50%가량을 지급했다. 팀장급은 많게는 3500만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임단협이 마무리된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각각 기본급의 700%와 기본급의 1100%(전년 미지급 200% 포함)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정유사들은 지난해에도 기본급의 최대 800% 수준의 성과급을 줬다. 올해까지 2년 연속 ‘대규모 성과급 잔치’를 벌인 것이다.

정유사의 성과급 지급이 눈총받는 것은 최대 이익이 결국 일반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불만에서다. 또 국내외 경기 침체로 서민 경제는 팍팍한데 정유 업계는 고액 성과급으로 사회 양극화를 초래한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 4사의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0% 가까이 늘어난 8조원이 넘는다. 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매출 39조5205억원, 영업이익 3조2286억원을 올렸다. 저유가로 제품 가격이 하락하면서 매출은 전년보다 18%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63%나 늘었다. 2011년 기록한 영업이익 최대치(2조9595억원)를 뛰어넘었다.

에쓰오일도 지난해 1조692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년 대비 107% 늘어났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각각 사상 최대인 2조1404억원과 965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업계에선 △정제시설 고도화로 고부가가치 휘발유와 윤활유 생산·판매가 늘어나는 등 정제 마진(제품 가격 - 원유 가격 및 운영비)이 양호했고 △지속적인 국제 유가 상승으로 재고 원유에 따른 이익이 좋아졌으며 △적극적 수출 시장 개척이 이뤄졌다는 점을 수익 개선 요인으로 들고 있다. 대한석유협회도 “지난해 정유 4사가 수출한 석유 제품은 4억5524만배럴(227억달러)을 기록해 전체 원유 수입액(402억달러)의 56%를 석유 제품 수출로 회수했다”고 설명했다.

◆ 2년 연속 성과급 잔치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난해 정유사의 영업이익 중 절반은 가만히 앉아서 번 것과 마찬가지였다. 수출 증가 등이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정유사들이 휘발유·경유 가격과 물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한 것이 최대 실적을 거둔 요인으로 꼽힌다. 국제 유가가 오를 때는 휘발유 및 경유 가격을 바로 올리면서도 국제 유가 하락 시엔 석유 제품 가격을 천천히 내려 이익을 챙겼다는 얘기다.

이는 국제 유가와 국내 석유 제품 가격 추이를 살펴보면 바로 드러난다. 국제 유가는 2014년 10월 대비 2017년 1월 38.1% 하락했으나 국내 휘발유 가격은 같은 기간 16.8% 떨어지는 데 그쳤다. 국제 유가와 국내 휘발유 및 경유 가격 차이로 인한 이익을 정유사가 독식한 셈이다.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이 지난해 1년간 주 단위로 분석한 것을 보면, 국제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413원 오를 때 국내 정유 회사는 520원을 올렸다. 반대로 국제 휘발유 가격이 322원 내릴 때 정유사는 398원 내렸다. 정유사들이 국제 가격이 오를 때 국내 도매 가격을 더 많이 올려서 이익 폭을 늘린 것이다.

지난해 국내 한 달 평균 휘발유 소비량은 약 10억1437ℓ다. 국제 유가가 오르거나 내릴 때 정유 4사가 이를 국내 유가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리터당 10원씩만 늦게 올리거나 늦게 낮추면 월 100억원 넘게 벌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정유사들은 ‘재고평가이익’도 거둘 수 있다. 재고평가이익이란 정유사가 싸게 사들인 원유를 정제해 만든 휘발유·경유 등을 그 이후에 오른 원유 시세에 맞게 비싼 가격으로 내다 파는 것을 의미한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4분기에 거둔 재고평가이익만 2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양훈(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인천대 교수는 “지난해 국제 유가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면서 원유를 싸게 구입한 정유사들이 석유 제품을 한두달 뒤 비싸게 팔아 수익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손 교수는 “국제 유가가 오를 땐 국내 석유 제품 가격은 ‘로켓’처럼 오르고, 국제 유가가 떨어질 땐 국내 제품 가격은 ‘깃털’처럼 떨어지는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석유 제품 가격 결정 요인에서 가장 큰 특징은 정유 4사의 과점체제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중소 정유사가 많은 일본은 국내 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반면, 우리나라는 국제 현물 시장인 싱가포르 시장 가격이 영향을 많이 끼친다.


정유업계에서는 휘발유 등 국내 제품 가격이 국제 가격 수준(싱가포르 국제 가격)에 맞춰져 있어서 사실상 폭리를 취할 수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전반적으로 오르고, 제품 수요가 늘면서 정제마진이 늘어난 데다 석유화학·윤활유 등 비정유사업으로 영역을 넓힌 것도 실적이 늘어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정유 업계는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이 석유화학, 윤활유 등 비정유 부문의 성장에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하지만, 전체 실적은 본업인 정유 사업의 성과에 좌우됐다. 에쓰오일이 비정유 부문에서 절반 이상의 이익을 거뒀지만 나머지 3사는 정유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60% 이상이었다.

지난해 사상 최고 기록을 달성한 석유 제품 수출도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지난해에는 국제 유가가 전반적으로 상승 기조를 이루면서 원유 수입액보다 석유 제품 수출액이 많았다. 하지만 이는 국제 유가의 움직임에 따라 언제든 역전될 수 있다. 정유사들은 "우리도 수출 기업"이라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매년 석유 제품 수출액이 원유 수입액을 넘어서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 불투명한 가격구조 가장 큰 문제

국제유가 폭락에도 불구하고 휘발유, 경유 등 국내 석유제품의 가격 하락폭이 제한적인 또 다른 원인은 불투명한 가격결정구조 때문이다.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석유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정유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정유사는 국제가격을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한다고 하지만 국내 석유제품의 가격결정 방식은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생산·공급자이면서 판매망까지 장악하고 있는 정유사가 국제유가에 비해 기름값을 불합리하게 책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유사는 원유에서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을 뽑아 여기에 생산과 유통비용과 마진을 더해 공장도가격을 발표한다. 그러나 외부로 발표하는 공장도가격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발표된 공장도가격과 실제로 정유사가 대리점·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기름값, 즉 현물가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 현물가격은 발표된 공장도가격보다 일반적으로 싸게 책정된다. 할인 폭은 석유 대리점과 주유소의 매출액이나 신용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기름을 많이 팔고 신용도가 높은 곳일수록 할인 폭이 커 기름을 더 싸게 공급받는다. 대리점이나 주유소는 싸게 기름을 사서 마진을 붙여 최종소비자에게 파는 것이다.

국제유가가 내려가도 소비자들이 가격인하 효과를 빨리 느낄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중가격(공장도가격과 현물가격의 차이) 때문이다. 주유소 사장인 김씨는 "국제유가가 급락하더라도 정유사는 손해 볼 게 없다"며 "겉으론 공장도가격을 내리면서 실제로는 대리점과 주유소의 현물가격을 올리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리점이나 주유소 현물가격의 할인 폭을 줄이면 대리점이나 주유소 등은 기존 가격 그대로 기름을 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과점체제를 통해 가격결정력을 가진 정유사는 이익을 보전하면서 판매망을 손쉽게 확보하고 유지한다. 우리나라 석유제품 유통 구조는 특정 정유사에서 시작해 그 정유사의 계열 대리점 그리고 그 정유사 상표를 부착한 계열 주유소로 이어지는 수직계열 체제로 돼 있다. 겉으로는 유통구조·경로가 '원유정제 생산자·원매자(정유사 및 석유제품 수입상)-주유소' 등 3단계로 돼 있지만 실제로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은 매우 미약하다.

대리점도 80%가량이 특정 정유사 계열이라서 정유사 선택에 따른 가격 경쟁이 거의 없다. 주유소 역시 알뜰주유소가 있지만 4대 정유사 상표를 부착한 주유소가 90%에 달한다. 여러 단계에서 정유사 간 가격 경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손쉬운 물량·가격 조정이 가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정유사들은 공장도가격과 현물가격에 차이가 나는 것은 재고물량 처리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자제품 가격이 양판점이나 할인점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 정유사와 주유소 간의 할인율 조정 등은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당사자가 문제 삼지 않으면 정부가 불공정 계약 등에 대해 문제 삼기 어렵다.

그동안 정부는 국제유가 하락 시 적정한 기름값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지만 땜질식 처방에 그쳤다. 지난 2011년 당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석유 가격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기름값을 잡는답시고 정유사를 압박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실현가능성이 없는 대책을 내놓으며 정유사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 정유업계, “높은 유류세 비중 가격하락 제한”

국내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유류세의 비중이 높다는 점도 가격하락 폭이 제한적인 요인이다. 휘발유와 경유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교통세),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교통세와 이에 연동되는 교육세, 주행세는 휘발유 국제시세와 관계없이 일정하게 부과된다. 이 세금은 2009년 이후 리터당 745.89원으로 변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내려가면 유류세 비중이 더 커지는 반면 국제유가가 오르면 관세 징수액이 오르고, 판매가격에 연동되는 부가가치세 역시 인상돼 소비자가 부담하는 유류세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