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위해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펀드 조성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AI 기술이 스마트폰, 가전,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에서서 시장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선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경영진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21일 삼성전자 미국법인 관계자는 “지난달 회의에서 인공지능 기업에 대한 M&A, 지분 투자 예산을 최대 10억 달러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며 “현재 10억 달러의 자금 운용을 위해 전문가들이 펀드 구조를 짜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펀드를 조성하기 전이라도 AI 투자에 적극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면서 “우선 1억 달러의 예산을 책정해 AI 기업 인수에 쓸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인공지능 비서 서비스가 음성을 인식하고 있는 모습을 가정한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

최근 1년 간 삼성전자는 10여건에 달하는 M&A를 성사시키며 왕성한 식욕을 자랑했다. 전장(電裝)업체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2000억원)에 인수하며 한국 M&A 사상 최대 몸값을 지불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전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여러 인수합병에도 불구하고 경영진 사이에서는 AI에 대한 본질적인 투자가 적다는 지적이 나왔다”면서 “음성인식, 데이터 처리 등 AI를 구현하는 기술에 대한 투자는 많았지만, AI를 이용한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자체 평가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가 AI 투자에 적극적인 데는 2005년 안드로이드 인수 제의 거절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경영진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앤디 루빈으로부터 회사를 인수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고 이후 10년 이상 소프트웨어 주도권은 구글한테 넘어갔다.

삼성전자는 AI 분야 투자를 위해서 전략도 바꿨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투자할 기업을 직접 찾아 창업자 혹은 멤버들의 지분을 샀다. 앞으로 삼성전자는 벤처캐피탈이 보유한 지분도 취득하겠다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유망한 AI 기업의 경우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벤처캐피탈이 보유한 지분을 재매입하는 것이 원하는 회사를 빠르게 M&A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미국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가 주관하는 인공지능 서밋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인공지능 관련 스타트업과 인공지능 기업에 주로 투자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들이 참가했다. 스타트업 데모도 있었고 벤처캐피탈들은 투자한 AI 기업 포토폴리오를 공개했다.

이밖에 삼성전자가 인공지능 음악검색 기술을 보유한 사운드하운드에 투자했으며, 인공지능 스타트업 X.AI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 중인 AI 플랫폼에 사운드하운드 기술을 탑재할 예정이다. X.AI는 사용자를 대신해 이메일을 보내고 미팅 일정을 조율하는 AI 개인비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스마트폰, TV, 백색가전, 사물인터넷(IoT)을 모두 포용·통합하는 AI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SW 원천기술 확보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고 결과가 빠르게 도출될 수 있도록 일정 목표를 잡고 M&A와 지분투자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최근 삼성전자의 오너인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으로 M&A 투자 속도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 미국법인 관계자는 “한국의 심각한 분위기가 미국 현지에도 전달된 것은 사실”이라며 “현재 투자 관련 상당 부분이 홀딩된 상황으로 한국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