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 2위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NAVER(035420))와 카카오(035720)가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에 돌입했다. 네이버가 자회사 네이버랩스를 통해 AI 통역 앱, 웹브라우저, 자율주행차 등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카카오도 이에 질세라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을 앞세워 AI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고 ‘카카오브레인’으로 명명했다. 구글의 AI 개발팀 ‘구글브레인(Google Brain)’에서 따온 이름으로 해석된다.

네이버와 카카오 모두 AI 개발을 자회사가 주도하고 있으며 챗봇(채팅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오너의 AI 기술 경영 방식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AI 기술 영역을 특정인에게 일임한 반면,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직접 총대를 메고 나섰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왼쪽),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오른쪽)

◆ 카카오, 챗봇·음성 비서 등 네이버와 비슷한 AI 궤도 따를 듯

네이버 AI 기술 개발의 심장부는 송창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이끌고 있는 네이버랩스다. 네이버랩스는 네이버의 100% 자회사로 지난달 2일 분사했다. 자본금은 1200억원이다.

네이버랩스의 직원은 약 200명에 달하며 이 중 핵심 엔지니어는 8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상당수가 웹브라우저 ‘웨일’ 개발에 관여하고 있으며 통역앱 ‘파파고’ 등 대부분의 서비스를 서너명으로 구성된 팀이 개발하고 있다.

네이버랩스가 탄탄한 조직 체계와 틀을 갖추고 있는 반면, 카카오브레인은 아직 구성 단계에 있다. 초기 자본금이 200억원이며 김 의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김남주 신임 리서치(Research) 리더가 연구 부문을 총괄하기로 했을 뿐, 그 외 직제나 조직 규모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현재 김 의장 등의 인맥을 총동원해 우수 인력 채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일에 싸여있다기보다는 아직 ‘숨길 것’조차 없는 상태다.

카카오브레인의 경우 AI 중에서도 특히 어떤 분야를 집중 개발할지 미지수인 상황이나, 일단 네이버와 마찬가지로 챗봇 개발에 착수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네이버는 현재 포털을 통한 챗봇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네이버쇼핑 입점 업체는 지난해 8월부터 AI 챗봇을 통해 고객 응대를 해왔으며, 최근에는 도미노피자 역시 챗봇을 이용해 피자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지난 2014년부터 메신저 ‘라인(LINE)’에 챗봇을 접목해 운영 중인데, 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챗봇 서비스를 국내에도 도입할지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카카오도 메신저 플랫폼 카카오톡에 챗봇을 접목한다는 계획이다. 카카오는 올 상반기 중 카카오톡의 기업용 계정인 ‘플러스친구’ 서비스를 개편해 출시한다. 당초 출시 예정 시점은 올 1분기였으나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 상반기 중 플러스친구를 통한 상품 주문 및 결제 시스템을 갖춘 뒤, AI 챗봇을 적용해 기업 계정의 고객 응대를 자동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인터넷 업계에서는 두 회사 모두 궁극적으로는 챗봇을 넘어 음성인식 비서를 내놓을 것으로 전망한다. 네이버는 2~3월 중 모바일 앱에 음성 기반의 대화형 봇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며, 카카오 역시 최근 실시한 IR에서 음성인식 기술 개발 계획을 암시했다.

지난 9일 4분기 실적 발표 이후 진행된 컨퍼런스콜에서 임지훈 카카오 대표이사는 “카카오는 음성 인식, 이미지 인식, 자연어 처리 등 AI 기술 개발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며 “카카오브레인의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올 2분기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임 대표가 언급한 AI 기술들은 사실 네이버가 개발해온 기술과 거의 대부분 일치한다. ‘음성 인식’ 기술은 네이버가 지난해 출시한 번역 앱 파파고와 현재 개발 중인 음성 기반 대화형 봇 등에 실제로 적용된 기술이다. ‘이미지 인식’ 기술 역시 파파고에 적용됐으며, ‘자연어 처리’ 기술도 네이버가 챗봇과 AI 브라우저를 만드는데 활용하고 있다. 결국 카카오의 AI 기술 개발 방향은 한발 앞서가고 있는 네이버를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쌍두마차’에 일임한 이해진, 총대 멘 김범수

네이버와 카카오의 AI 기술 개발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두 회사가 기술 개발 컨트롤타워를 운영하는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네이버의 오너인 이 의장은 기술 개발을 송 CTO와 신중현 라인플러스 대표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실상 손을 뗀 상태다. 연구 개발(R&D) 중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리서치(Research)는 송 CTO에게, 기술의 상용화에 가까운 개발(Development)은 신 대표에게 각각 일임한 것이다. 이 의장은 다음달 17일 이사회에 참석해 차기 의장에게 이사회 의장직을 물려준 뒤, 지난해 예고한대로 유럽으로 본거지를 옮겨 스타트업 투자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 의장은 AI 개발의 사령탑으로서 직접 총대를 멨다. R&D를 실제로 책임지는 것은 연구·개발 리더들이 할 일이겠지만, 김 의장이 전면에 나서 연구 개발과 상용화를 총괄한다는 점에서 네이버와 차이가 있다.

김 의장이 R&D를 직접 이끌기로 한 것은 카카오의 AI 개발이 다소 늦은 감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경쟁사인 네이버가 지난해부터 가시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을 동안, 카카오는 적자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O2O(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연계 서비스) 사업과 씨름해왔다. 그러는 와중에 국내 광고 시장에서도 네이버에 밀려 실적 부진을 벗어나지 못했다.

본격적인 AI 기술 개발을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한 만큼, 회사의 오너이자 정신적 지주와 같은 김 의장이 직접 나서 AI 개발을 이끌어나가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게 카카오 안팎의 분석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김 의장의 AI 개발 총괄이 평소 그의 성격을 반영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 의장은 보스 기질이 강한 경영인으로 잘 알려졌다.

카카오의 한 고위 관계자는 “김 의장이 최근 각 사업본부장(부사장)들을 소집해 AI 관련 워크샵을 진행했다”며 “카카오의 AI 기술 개발은 카카오톡, O2O 등 이미 존재하는 사업부들을 아우르며 전사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또 이성적이기보다는 직관적이고 즉흥적인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랜 기간 준비한 끝에 기술 개발 조직을 갖추고 공개한 이 의장과 달리 카카오브레인이라는 조직을 이끌고 깜짝 등장해 업계를 놀래킨 것도 이 같은 성격에서 기인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