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박사

2010~2014년 연평균 650억달러(약 75조원)가 넘었던 한국 해외 건설 수주액은 2015년 461억달러, 작년엔 282억달러로 급감했습니다. 해외 플랜트(plant) 수주가 눈에 띄게 감소한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플랜트 사업은 쉽게 설명하면 정유공장이나 발전소처럼 전력·석유·가스·담수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공급하거나 공장을 지어주는 겁니다. 그런데 2014년 중반부터 국제 유가가 떨어지면서 국내 건설사의 '수주 텃밭'이던 중동 산유국들이 플랜트 발주 물량을 급격히 줄였습니다. 비싼 플랜트 지어 석유를 생산해봤자 값이 싸니 지을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죠. 여기에 국내 건설사들이 과거 저가로 수주한 일부 플랜트 현장에서 대규모 손실을 보면서 신규 수주에 소극적으로 나선 것도 해외 수주 감소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청구공사 금액'에 따른 부실 우려가 건설업계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미청구공사란 업체가 공사를 수행했지만, 사업을 발주한 곳에 금액을 청구하지 못한 '미수 채권'입니다. 작년 말 기준 국내 10대 건설사 미청구공사 금액은 11조원이 넘는데 상당 부분이 해외 플랜트 사업과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공사에 몰려 있습니다. 대규모 부실을 낳을 수 있는 미청구공사는 왜 대형 플랜트 사업에서 주로 발생하는 것일까요?

플랜트 공사에서 손실이 잦은 이유는

우선 플랜트가 뭔지, 플랜트 공정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플랜트 건설은 아파트나 도로를 짓는 일반 토목·건축 공사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계·장비 같은 하드웨어와 이를 설치하기 위한 설계 과정 등 소프트웨어와 시공·시운전 등이 복합적으로 연계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플랜트 건설 과정은 설계(Engineering), 조달(Procurement), 시공(Construction)으로 이뤄집니다. 설계는 프로젝트 기획부터 견적·수주·설계 등을 총괄하는 것이고, 조달은 사업에 필요한 각종 자재와 설비의 공급, 물류를 통한 현장 설치 과정이 포함됩니다. 조달이 완료되면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고, 건설이 끝나면 시운전 후 준공합니다. 이런 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업체를 EPC 기업이라고 합니다.

건설사라고 해서 모두 플랜트를 지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대표적인 플랜트 사업인 원전(原電)을 지을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영국·중국·프랑스·일본 등 손에 꼽힙니다. 삼성물산·현대건설·대우건설·GS건설·대림산업 등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바로 EPC 기업입니다.

설계·조달·시공 동시다발로 이뤄져

일반적인 건축·토목 공사와 다른 플랜트 건설의 특징은 뭘까요. 우선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적으로 플랜트 건설은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 이상 시간이 걸립니다. 플랜트는 한 번 지으면 가스·전기 등을 생산하며 20년 이상 운영됩니다. 이 때문에 사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운영·유지 보수 계획을 면밀하게 마련하는 게 중요합니다.

둘째, 설계와 물품 조달, 시공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핵심 공정을 변경하기가 매우 어렵고, 건설 과정에서 설계를 변경할 경우 막대한 추가 비용이 들어갑니다. 설계를 변경해 추가로 공사 비용이 들면 시공사가 이를 부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로젝트 규모가 크면 클수록 막대한 금액이 추가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끝으로 플랜트 하나를 성공적으로 건설하기 위해선 프로젝트와 관련한 이해 관계자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이해 관계자에는 구체적인 요구 조건을 가진 발주처, EPC 공정을 담당하는 기업, 기자재와 물류 등을 공급하는 기업, 법령과 규제를 시행하는 정부·지자체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설계에서부터 시운전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조정하는 긴밀한 협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EPC 기업은 다양한 공정과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종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구조적으로 미청구공사 발생 쉬워

최근 건설사 회계에서 논란이 되는 미청구공사 금액은 대형 플랜트 사업에서 주로 발생합니다. 지난 2013년 일부 건설사가 수천억원 '어닝쇼크'를 기록한 게 해외 플랜트 때문으로 밝혀져 이슈가 됐습니다. 이어 대표적인 수주산업인 조선업에서 대형 업체들이 해양 플랜트로 큰 손실을 떠안은 것이 알려져 미청구공사의 회계 처리가 불투명하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습니다. 미청구공사가 위험 자산으로 분류되는 것은 매출 채권보다 회수 기간이 길고, 떼일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사실 해외 사업 비중이 큰 건설사는 플랜트 사업으로 인한 미청구공사 발생 위험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착공과 동시에 공사 금액의 20%를 지급하고 전체 공정률이 50%에 달하면 공사 금액의 60%를 지급한다. 나머지 20%는 완공 후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명시된 공정률이 되기 전까지 돈을 들여 공사하지만, 돈은 받을 수 없는 거죠. 플랜트 사업은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착공에 앞서 사전 제작하는 기자재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미청구공사가 발생하기 쉬운 구조입니다.

건설업계, 부실 사업장 대거 정리

물론 미청구공사가 모두 부실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건설사들은 "플랜트 기자재 조달 등 정상적인 공사 과정에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미청구공사액을 잠재 부실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가 수주를 해 예정 원가가 지나치게 낮거나 설계 변경이 계속돼 완공 때까지 추가 금액이 계속 투입되는 경우 등에는 미청구공사가 부실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1965년 해외 건설 시장에 처음 진출한 우리나라는 50년이 넘는 기간에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해 지금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유가 하락 등의 악조건과 치열해지는 수주 경쟁 등으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해외 저가 수주로 홍역을 치른 국내 건설사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부실한 해외 사업장을 정리하고, 선별 수주로 내실을 다져왔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특유의 도전정신을 앞세워 해외 플랜트 시장에서 다시 한국 건설의 위상을 드높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