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은 지난달 '희망퇴직'을 통해 직원 2800명을 내보냈다. 시중은행 최대 규모인 직원(2만명) 전체의 15%에 가까운 인원이다. 이 숫자만 놓고 보면 '몸집'을 확 줄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전체 은행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항아리형 인력구조'는 그대로다. 이런 문제는 국민은행뿐 아니라 전 은행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거액의 보너스를 제공하는 희망퇴직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지만, '고비용·저효율'의 인력구조는 그대로인 희망퇴직의 '딜레마(dilemma)'는 왜 생기는 걸까.

은행권 희망퇴직 35%가 최하위직

이번에 국민은행은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최대 36개월 치 기본급을 퇴직금으로 줬다. 1인당 평균 2억8800만원씩이다.

한 번에 목돈을 쥐여주며 많은 직원을 내보내 장기적으로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면, 희망퇴직은 연봉이 높은 중간 관리자 이상에 집중돼야 한다. 하지만 국민은행 희망퇴직은 정반대로 진행됐다. 희망 퇴직자 2800명의 35%가 넘는 1000여 명이 최하위 직급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은 계약직 창구 직원으로 있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들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들로부터 '희망퇴직 대상에 넣어달라'는 요청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연봉은 약 4000만원 수준으로 은행 내에선 가장 낮지만, 우리나라 근로자 평균 연봉(3281만원)보다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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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억대 연봉자들인 과장·차장, 팀장·부지점장, 부장·지점장 등 3개 관리자 직급에선 각각 500~600명씩만 희망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들 직급은 숫자도 많고 연봉도 높아 사람 몸에 비유하면 '불뚝 나온 배'에 해당하는 데 희망 퇴직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며 "허리 사이즈가 조금 줄기는 했지만 '복부 비만'은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은행원 2명 중 1명은 '관리자급'

국민은행뿐 아니라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희망퇴직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왔지만 고비용·저효율의 근원으로 지적되는 항아리형 인력 구조는 여전하다. 임원을 제외한 일반 직원 가운데 과장 이상 중간 관리자가 절반이 넘는다. '머리(관리자)'가 '몸(행원)'보다 큰 셈이다. 관리자 상당수는 억대 연봉자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차장이 되고 나면 연봉 1억원이 된다"고 했다. 작년 은행원 32.9%가 1억원 이상 연봉을 받았다.

이 때문에 은행의 영업비용인 판매·관리비용에서 인건비인 급여·퇴직급여·복리후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이른다. 고비용 구조 탓에 은행들의 생산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임종룡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국내 금융업은 제조업에 비해 임금은 1.4배이면서 생산성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을 보면, 금융업 임금이 제조업의 1.6배이지만 생산성은 1.7배로 상대적으로 높다"고 그는 말했다.

'한몫 챙기는 수단'으로 전락한 희망퇴직

거액의 보너스를 제공하는 희망퇴직은 주주(株主) 이익을 해치는 측면이 있다. 국민은행이 이번에 지불한 희망 퇴직금(8000억원)은 작년 한 해 당기순이익(9640억원)과 거의 맞먹는다.

국민은행 지주회사인 KB금융은 작년에 약 5000억원을 주주에게 배당했다. 희망 퇴직금으로 국민은행 직원들에게 나눠준 돈이 배당 총액의 1.6배가 넘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KB금융의 최대 주주가 국민연금(지분 9.85%)인데 희망 퇴직금이 적었다면 주주 배당이 커져 국민에게 이익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관계자는 “배당 총액이 지난 3년간 계속 증가했고 이번 희망퇴직으로 향후 비용 절감이 예상돼 최근 주가가 크게 올랐다”고 해명했다.

비정규직 창구 직원으로 일하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은행원들이 희망퇴직을 한몫 잡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도덕적 해이’의 소지가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계약직이라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없애주고 결혼·출산·육아에 따른 경력단절을 줄여주기 위해 정규직 전환을 해준 건데 희망퇴직으로 나가버리면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창구직원이 부족해 새로 사람을 뽑고 이들이 다시 희망퇴직을 택하면 악순환만 계속될 것”이라고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희망퇴직이 돈만 많이 들고 효과는 적다는 비판을 받는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항아리형 인력구조를 방치할 수는 없지 않으냐. 희망퇴직이라도 해서 ‘뱃살’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