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사모펀드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 펀드 수탁고가 사상 최대치인 462조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펀드시장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자산운용사들의 수심은 깊어지고 있다. 운용사의 안정적인 수익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공모펀드가 날이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운용사들은 개인투자자 중심의 공모펀드에서 수익률과 상관없이 일정 보수를 받고 있다.

공모펀드의 인기가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지 않자 운용사들은 생존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이다. 특히 국내 주식시장에 주로 머물렀던 시야를 해외로 돌려 글로벌 자산 투자에 집중하는 운용사가 크게 늘고 있다.

펀드평가사 KG제로인의 황윤아 연구원은 “최근 운용사들이 국내 주식·채권 등 전통적인 투자 대상에서 벗어나 해외의 새로운 투자 대상을 적극 찾아나서고 있다”며 “금리·물가·바이오 기업 등 수익률을 측정하는 상품의 컨셉도 다양해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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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그라든 공모펀드…“운용보수 수익 타격”

금융위원회가 이달 7일 발표한 ‘2016년도 펀드시장 동향과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펀드 수탁고는 2015년보다 48조8000억원(11.8%) 증가한 462조4000억원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자산운용사 수는 77.4% 늘어나 총 165개사로 집계됐다.

국내 펀드시장의 외적 성장을 이끈 건 기관투자자 중심의 사모펀드다. 지난해 말 기준 사모펀드 수탁고는 2015년보다 50조4000억원(25.2%) 증가한 250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사모펀드의 높아진 인기를 증명하듯 전문사모운용사도 지난해 91개나 신규 설립됐다.

하지만 공모펀드 수탁고는 같은 기간 1조6000억원 감소한 212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주식형 펀드 규모가 크게 위축된 것이 공모펀드 추락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주식형 펀드 수탁고는 7조7000억원(10.2%) 감소한 67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그간 공모펀드는 대다수 운용사의 캐시카우(현금 창출원) 역할을 해왔다. 한 국내 운용사 관계자는 “회사나 상품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체로 공모펀드의 운용보수가 사모펀드나 투자일임보다 높은 편”이라며 “공모펀드가 위축되면 운용사 입장에선 속앓이를 더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공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성과보수 시스템 도입을 추진 중이지만, 정작 자산운용업계에서는 이 방안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판매사들이 별도의 전산시스템을 구축해 투자자들의 개별 수익률을 매번 계산하고 운용사에 적절한 성과보수를 챙겨줄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조홍래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는 지난달 25일 자본시장연구원이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성과보수형 공모펀드 도입이 자산운용업계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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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자산 투자로 돌파구 마련”

운용사들은 투자자에게 다양한 상품 라인업과 견조한 수익률을 선보여 공모펀드의 투자 매력도를 끌어올리는 ‘근본 처방’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자산운용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수년째 박스권에 머물러 있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자산에 분산 투자하는 운용사가 증가하는 추세다.

KG제로인에 따르면 2017년 들어 새로 설정된 펀드 33개 가운데 국내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는 2월 16일 기준 13개다. 이중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는 3개에 불과하다. 반면 글로벌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는 전체의 65%에 해당하는 20개로 집계됐다.

색다른 컨셉의 펀드가 예전보다 많아진 점도 눈에 띈다. 예를 들어 멀티에셋자산운용이 이달 7일 설정한 ‘멀티에셋 글로벌 바이오헬스케어 전환사채 증권자투자신탁[채권]’ 펀드는 글로벌 바이오·헬스케어 기업들이 발행하는 전환사채(CB)에 주로 투자하는 상품이다. 전환사채는 주가 상승시 주식으로 전환해 이익을 거둘 수 있고, 주가가 떨어질 때는 채권으로 그대로 유지해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정창곤 멀티에셋자산운용 상품전략팀 팀장은 “헬스케어 분야는 성장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변동성이 커 개인이 투자하기에 부담스러운 면이 존재했다”며 “바이오 섹터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는 이에게 적합한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또 지난달 16일 설정된 키움투자자산운용의 ‘키움 글로벌 금리와 물가연동[채권-재간접]’ 펀드는 변동금리 대출채권인 시니어론과 물가연동국채 등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금리 상승기에 이자 수익도 증가하는 구조라는 점은 기존 뱅크론 펀드와 유사하지만, 정부가 발행하는 물가연동국채에도 투자해 상품의 안정성을 강화했다는 점이 다르다.

글로벌 투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인 매니저를 아예 국내로 영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은 지난해 11월 BNP파리바의 글로벌 자산배분 전담 조직 ‘MAS(Multi Asset Solution)’의 엠마누엘 벨가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를 자사 멀티자산솔루션본부 부본부장으로 데려왔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관계자는 “현재 벨가드 매니저는 자사가 기존에 출시한 자산배분 관련 펀드들을 검토하면서 MAS의 글로벌 운용 노하우를 접목할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