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가 신설 반도체 회사의 경영권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버리고 지분 투자사의 경영 참여를 허용하기로 하면서 SK하이닉스, 웨스턴디지털, 홍하이정밀공업 등 잠재적 지분 매입자와의 추가 투자 논의를 시작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도시바는 현재 SK하이닉스(000660), 웨스턴디지털, 홍하이그룹과 중국계 투자사 등 10여 곳의 지분 인수 후보군을 대상으로 추가 투자와 관련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최대 3조원대의 지분 투자 의사를 밝힌 SK하이닉스의 경우, 3조 이상의 투자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에서의 대규모 원전 사업 손실로 어려움에 빠진 도시바는 자구책으로 반도체 부문을 분사해 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의 지분을 매각해 자금을 수혈받는 방법을 강구 중이다. 도시바는 당초 신설 법인의 지분을 20% 가량만 매각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최근 지분 50% 수준까지 매각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도시바가 신설 반도체 법인의 지분 투자에 관해 SK하이닉스, 웨스턴디지털 등과 협상하고 있다.

◆ 도시바의 입장이 달라진 이유는

도시바가 경영 참여에 관해 전향적인 태도를 갑작스레 취한 건 크게 두 가지 이유로 풀이된다. 우선 반도체 회사의 지분 20%를 매각하는 것으로는 원전사업에서의 손실액인 7126억엔(한화 7조원)의 절반 수준인 3000억엔 수준의 자금밖에 건질 수 없다. 또 도시바 신설 반도체 법인의 지분 투자를 밝힌 기업들도 협상 과정에서 '지분 인수 조건이 불공평하다'는 불만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SK하이닉스의 경우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반도체 지분 인수 결정이 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경고하면서 내부에서 인수 득실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SK하이닉스에 정통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지분 인수를 결정한 건 회사의 낸드플래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목적이지 자선활동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기존에 도시바가 내건 조건으로는 3조원대에 달하는 천문학적 투자에 비해 얻는 것이 많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 현지 매체들도 애초에 도시바가 설정한 지분 매각 조건 자체가 '매력이 없다'는 분석을 꾸준히 제기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경영권이나 기술 제휴 등을 보장하는 조건 없이 해외 기업들이 도시바의 지분을 취득할 이유가 없다"며 "20% 수준의 매각만 제한적으로 단행해 경영권을 지키겠다는 건 안일한 판단"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 현재 유력한 매각 시나리오는?

도시바가 반도체 회사의 지분을 50% 이상 매각할 경우 SK하이닉스, 웨스턴디지털 등 해외 회사들이 지분을 나눠서 갖는 방식의 분할 매각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가 20~25%, 웨스턴디지털이 20~25% 수준의 보유해 도시바와 함께 경영에 참여하고 공동 기술 개발 등의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한 것으로 현지 매체는 분석하고 있다.

이 경우 경영권 프리미엄이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지분 인수와 동시에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인수 금액이 일정 부분 상향된다. 기존에 SK하이닉스가 목표로 한 20% 인수에 3조원보다 더 큰 금액이 들 수도 있다는 얘기다. 도시바가 SK하이닉스에 20% 이상의 지분 매각을 단행할 경우 인수 금액은 2~3배로 뛸 수도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에게 낸드플래시 사업은 오랜 컴플렉스 중 하나였고 그만큼 이번 기회에 3D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SK하이닉스보다 앞서 있는 도시바와 협력해 단숨에 탑클래스에 진입하겠다는 의지도 강하다"며 "다만 최종 결정권자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최고경영진이 이 사안을 얼마나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고, 얼마나 공격적으로 투자할 의사가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