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있는 KFC 매장. 35석 규모 매장 절반에선 30대 직장인들이 치킨·햄버거를 콜라 대신 맥주와 즐기고 있었다. 이곳에서 혼자 치킨과 맥주를 마시던 이모(37)씨는 "직장 동료들과 호프집에 가면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도 길어져 간단히 한잔하고 싶을 땐 이렇게 패스트푸드점을 찾는다"고 말했다.

'혼술족' 겨냥한 '비어 페어링' 증가

'혼술족'(혼자 술 먹는 사람)이 확산되면서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 전문점, 영화관 등을 중심으로 간편식과 함께 맥주를 즐기는 '비어 페어링(beer pairing)' 매장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여의도 매장에 생맥주 기계를 처음 도입했던 KFC는 현재 서울·경기 등 50개 점포에서 맥주를 팔고 있다. 생맥주 한 잔에 치킨 두 조각, 감자튀김으로 구성된 '혼맥 세트' 가격은 7500원. 앞서 맥도날드도 지난해 2월 판교 테크노밸리에 수제 햄버거를 판매하는 '시그니처 버거' 매장에 아시아 맥도날드 점포 중 처음으로 맥주 판매를 시작했다.

서울 KFC 여의도점에서 한 직장인이 치맥(치킨과 맥주) 세트를 주문하고 있다(왼쪽). 커피 전문점 폴바셋도 작년 3월부터 생맥주를 팔기 시작했다.

패스트푸드점이 맥주 판매를 늘리고 있는 이유는 매출이 줄어드는 저녁 시간에 혼술족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비어 페어링' 매장은 지난 2013년 일본의 한 규동(고기 덮밥) 전문점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5000원대로 규동을 맥주 한 잔과 즐길 수 있는 메뉴를 내놓은 것이다. 이후 일본의 30~40대 직장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비어 페어링'이 일본 월간지 닛케이 트렌디가 선정한 '2015 히트 상품'에 뽑히기도 했다. 한국 맥도날드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초저녁 퇴근을 하며 부담 없는 가격에 가볍게 한잔하려는 직장인들이 주고객층"이라고 했다.

낮시간에 손님이 집중되는 커피 전문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해 3월 맥주 판매를 시작한 커피 전문점 폴바셋은 현재 전체 매장 73곳 중 38곳에서 '삿포로' 생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생맥주 한 잔(320mL) 가격은 5000원이다. 폴바셋 관계자는 "저녁 시간 잠이 안 오는 카페인 음료 이외의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맥주를 도입하게 됐다"며 "맥주를 팔지 않던 시기와 비교해 매출이 10% 정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한 커피 전문점 관계자는 "주력 메뉴의 판매가 줄어드는 저녁 시간대 이후 고객을 확보하려는 생존 전략의 일환"이라며 "실제 시장 포화로 적자를 보는 커피 전문점이 늘고 있어 맥주를 함께 파는 커피 전문점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영화관 CGV도 관객 1인당 2캔까지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CGV 관계자는 "전체 영화 관람객의 14% 정도가 혼자 영화를 보러 오는데 이 '혼영족'이 맥주 주소비층"이라며 "맥주 판매량은 작년 동기 대비 15% 늘었다"고 했다. 전문 도시락업체 한솥도시락도 지난해부터 생맥주를 정식 메뉴에 포함시켜 팔고 있다.

맥주 판매 위해선 '일반음식점'으로 업종 전환해야

패스트푸드점, 커피 전문점 등이 맥주를 팔기 위해서는 매장을 '일반음식점'으로 등록하면 된다. 기존 '휴게음식점'으로 등록돼 있던 패스트푸드점의 경우 업종 전환을 신청하면 술을 팔 수 있다. 술을 판매하는 매장에선 미성년자를 고용할 수 없다. 일각에선 청소년 소비층이 두터운데, 미성년자 손님이 술을 마시는 성년 손님과 뒤섞이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KFC 관계자는 "실수로라도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하게 되면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게 되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하고 있다"며 "판매하는 직원들은 다 성인이고, 주문을 할 때와 맥주를 받을 때 신분증을 철저히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