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천공항과 싱가포르 창이공항 공동 1위.' 작년 3월, 국제공항협의회(ACI)의 2015년도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ASQ) 결과를 받아든 인천공항공사 경영진은 충격에 빠졌다. 인천공항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단독 1위였다. 연속 단독1위 기록이 깨진 것이다.
개항 17년째를 맞은 인천국제공항이 갈림길에 섰다. 사람이 몰리는 오전, 저녁 시간 대엔 출·입국 수속에 1시간이 넘게 걸리고 수화물 처리 능력도 쏟아지는 물량을 따라가지 못한다. 중국, 싱가포르 등 주변국들은 공항 인프라를 발빠르게 확충하고 서비스를 개선하는 등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인천공항이 점점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인천공항 재도약을 위한 제언을 담는다. [편집자]

두바이·터키, 항공사 힘입어 허브 공항 성장
대한항공·아시아나-외항사 제휴 돌파구 제공 가능

터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국제공항은 터키항공이 2000년대 중반 이후 빠르게 성장한 데 힘입어 글로벌 대표 허브 공항으로 발돋움했다.

지난달 초 휴가를 내고 5박 6일 일정으로 스페인 여행을 떠났던 박영필(가명·34)씨는 처음으로 터키 국적 항공사 터키항공을 이용했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공항을 거쳐 바르셀로나로 갈 수 있는 항공편이 많아 환승시간 등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가격 측면에서도 에미리트 항공이나 카타르항공, 독일 루프트한자보다 저렴한 편이었다. 밤 11시 경에 도착한 아타튀르크공항은 시장통이나 다름 없었다. 인천공항을 비롯해 유럽, 중동 등의 대표 공항보다 편의시설이 부족한 데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꽉 들어차 있었다. 하지만 박 씨는 다음에도 유럽에 갈 때 터키항공을 이용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공항이 좁고 다소 지저분해 보이긴 하지만, 워낙 노선이 편리해 감내할만 하다"면서 “환승수속에 걸리는 시간도 짧았다”고 말했다.

터키항공은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항공사로 꼽힌다. 2005년 30억터키리라(900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2015년 288억터키리라(8조8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탑승객 수는 1410만명에서 6120만명으로 4.3배, 운송 화물량은 14만5000톤에서 72만톤으로 5.0배가 됐다. 최고경영자(CEO)인 테멜 코틸 부회장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항공사였던 터키항공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환승 수요를 노린 공격적인 노선 확장 덕분”이라고 말했다. 유럽과 중동 사이에 위치한 입지 조건을 활용해 다른 국가 여행객들이 편리하게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항공편을 늘린 게 주효했다는 것이다. 코틸 부회장은 “특히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중동 지역에 총 24개 노선을 신규 개설한 뒤, 중동 지역 수요를 공략한 게 도약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터키항공은 미국, 남미, 아시아 등에 장거리 노선을 확충해 유럽과 미주 지역 여행객을 공략할 계획이다. “거점 공항이 있는 이스탄불에서 잡을 수 있는 장거리 노선 여객 수요가 3배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터키항공이 급성장하면서 거점으로 삼고 있는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도 글로벌 허브 공항으로 발돋움했다. 아타튀르크 공항의 글로벌 순위(이용객 수 기준)는 2010년까지만 해도 37위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11위에 올랐다. 국제선 이용객 기준으로는 10위다. 이용객 수는 6130만명(국제선 4190만명·2015년 기준). 터키를 포함한 중·근동(中·近東) 지역은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등 중동 국가들이 항공사와 공항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면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특히 두바이에 거점을 둔 에미리트항공은 UAE 정부의 각종 지원을 등에 업고 여객 기준으로는 세계 4위, 화물 기준으로는 세계 2위의 항공사이기도 하다. 마크 알렌 보잉인터내셔널 사장은 “터키가 중동 항공사들의 대항마로 급성장하고 있다”며 “앞으로 글로벌 항공 산업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 경쟁 공항 대비 국제선 노선 턱없이 모자라

인천국제공항이 아시아 대표 허브 공항으로 발전하지 못한 채 ‘국내용’으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은 대한항공(003490), 아시아나항공(020560)등 국적 항공사들의 부진과 맞닿아 있다. 이들 국적 항공사들이 적극적으로 노선을 개척하고, 다른 나라 여행객과 화물을 끌어오지 못하면서 자연스럽게 인천공항의 허브 기능이 약해진 것이다.

지난해 말 미국 항공정보 제공회사 OAG(Official Airline Guide)가 발표한 ‘OAG 메가 허브 2016’ 보고서는 인천공항의 노선 부족 문제를 잘 보여준다. OAG는 이 보고서에서 주요 국제공항들이 다른 공항들과 이어진 노선이 얼마나 많은지 분석한 ‘연결성’ 지표를 공개했다. 여기서 인천공항은 조사 대상인 글로벌 100대 국제공항 가운데 49위에 머물렀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수카르노하타공항이 7위에 올랐다. 이 밖에 일본 도쿄 하네다공항(11위), 인도 델리공항(22위), 싱가포르 창이공항(27위), 인도 뭄바이공항(28위), 홍콩 첵랍콕공항(33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공항(36위), 중국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40위), 태국 방콕 수완나폼공항(43위), 중국 상하이 푸동공항(44위), 중국 광저우 바이윈공항(45위) 등이 뒤를 이었다. 한 마디로 웬만한 아시아 지역의 주요 국제공항들은 인천 공항보다 노선수가 더 많다는 얘기다.

대한항공이 현재 운영 중인 국제선 여객 노선은 90개(특정 기간 운항 제외)에 불과하다. 아시아나도 82개 노선만 운행 중이다. 그나마 중국, 일본 등의 중단거리 노선을 제외하면 장거리 노선 숫자는 확 쪼그라든다는 게 항공업계의 설명이다. 국제공항이 없는 중국 2선급 도시나 동남아 주요 도시들과 유럽, 미국 도시를 연결해주면서 환승 고객을 확보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 환승률은 2005년 11.9%에서 2013년 18.7%까지 올랐지만, 이후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통상 허브 공항이라 불리려면 환승률이 20%는 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여객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고 지적한다. 화물 운송에서는 경쟁력을 잃으면서 적자 누적과 사업 축소가 이어지고 있다. 대한항공은 B747-400F 등 화물전용기 8대 매각에 나섰다. 적자에 시달리던 화물 사업을 축소키로 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화물 수송실적(FTK·각각의 화물 운송량에다 운송거리를 곱한 값을 모두 더한 것)에서 2004~20010년 글로벌 1위를 차지하는 등 화물 운송을 주력 사업으로 삼고 있었다. 하지만 2011년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4년 이후에는 계속 적자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도 화물 분야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홍성태 상명대 교수(국제통상·항공경영학회장)는 “유럽이나 미주 노선에서 물동량이 크게 줄어든 데다 중국, 싱가포르, 중동 국적 항공사들이 공격적으로 관련 사업에 뛰어든 것이 원인”이라며 “항공물류 인프라 확충과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 외국 항공사 아시아 거점 유치 民·官·港 적극 나서라

네덜란드 스키폴공항은 영국 저가 항공사 이지젯을 비롯해 여러 나라 항공사의 유럽 거점이 되면서 운항 노선 수를 늘렸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국내 항공사가 외국 항공사와 제휴해 해당 외국 항공사의 아시아 거점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항공사와 제휴해 이들 항공사 고객들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이동하는 중간 기착지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인천공항의 환승 수요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신광섭 인천대 교수(동북아물류대학원)는 “중국 주요 국제공항에서 웬만한 해외 도시는 모두 직항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 수요를 대체할 환승 수요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미국, 유럽 항공사들과 공동운항(코드쉐어) 등의 형태로 제휴하면 자연스럽게 인천을 해당 항공사의 아시아 환승 거점 처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델타항공의 경우 결국 흐지부지됐지만 2014년 대한항공과 항공권을 함께 판매하고 이익을 나눠 갖는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국내 회사와 제휴에 적극적이다. 한 항공사 관계자는 “대한항공이 델타항공과 다시 합작사를 설립하거나 공동운항을 늘릴 경우 인천공항 탑승객이 급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는 미국, 유럽 등 외국 항공사들의 아시아 거점을 인천공항에 유치하는 것이다. 공항 이용료를 저렴하게 책정하고, 항공 화물에서 물류 서비스를 패키지 형태로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적극적인 유치에 나서자는 것이다. 터키의 경우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을 운영하는 TAV은 저비용 항공사(LCC) 들이 저렴한 이용료로 공항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데이비드 타락 부사장은 “허브 공항은 교통량이 늘어날수록 ‘규모의 경제’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단 많은 항공사와 노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용료를 낮게 책정하더라도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모델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락 부사장은 “특히 한 항공사(터키항공)에만 의존할 경우 너무 위험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저렴한 이용료로 공항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공항은 KLM(2004년 에어프랑스가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의 모항이다. 하지만 델타항공이 유럽 내 단거리 항공이용객을 스키폴공항으로 모은 뒤 미국으로 데려가는 유럽 지역 허브로 사용하고 있다. 또 저가항공의 경우에도 독일 TUI그룹 자회사인 TUI항공, 스페인 부엘링, 영국 이지젯 등이 주요 거점 공항으로 사용한다. 벨기에 리에주 공항의 경우 아예 항공화물 허브 공항으로 특화시켜 네덜란드 택배 회사 TNT를 비롯해 카타르항공 등 외국 항공사의 화물 거점 공항 역할을 하고 있다.

윤문길 항공대 교수는 “수익성에 얽매인 항공사, 인천공항이 노선수 증가에 소극적이라면 정부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의 공항 발전 정책의 우선 방향을 노선 확대와 외국 항공사 유치로 잡아야만 한다”고 윤교수는 말했다. “노선과 교통량이 늘어나면 항공사가 나서지 않더라도 여행객들이 스스로 나서서 인천공항에서 환승하게 될 것”이라며 “유럽에서는 ‘셀프 허빙(self-hubbing)’이라고 해서 이미 보편화된 개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