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진형(27)씨는 지난달 설 연휴에 도쿄 ‘밤 도깨비 여행’을 다녀왔다. 숙박비용을 아끼기 위해 심야에 출발해 심야에 돌아오는 알뜰 여행이다. 김 씨는 금요일에 퇴근하자마자 인천공항으로 달려가 저녁 10시45분 비행기를 타고 도쿄 하네다 공항에 새벽 12시55분에 도착했다. 토요일, 일요일에 현지에서 쇼핑과 관광을 하고 월요일 새벽 1시55분에 하네다에서 출발해 인천에 2시간30분 뒤 도착했다.

김 씨가 이용한 항공편은 저비용 항공사(LCC)인 피치항공이 작년 2월 신설한 인천~하네다 노선이다. 여행족(族) 사이에서 "밤 도깨비 여행에 최적화 된 노선"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도쿄 도심과 가까운 하네다 공항으로 가는 유일한 LCC여서 티켓을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서울과 도쿄에 새벽에 도착해 현지에서 더 오래 관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숙박비용을 아끼기 위해 심야 비행기로 출발해 새벽에 귀국하는 ‘도깨비 여행족’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인천에서 나리타 공항으로 가는 항공편의 시간대가 더 다양하지만, 여행객 입장에서는 인천~하네다 노선이 더 경제적이다. 시간과 비용 모두 아낄 수 있다. 나리타 공항은 도쿄 도심까지 가장 빠른 철도로 1시간이 걸리는데 왕복요금이 4000엔(4만5000원·외국인 할인가)이다. 반면 하네다 공항은 도심까지 모노레일로 14분이면 갈 수 있고 요금은 490엔(5000원·편도)이다.

저렴한 도쿄 도깨비 여행이 가능해진 것은 지난 2010년 일본 정부가 32년 만에 하네다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재지정하고 노선 확대에 적극 나선 덕분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은 큰 어려움 없이 매년 수백만명의 환승객을 유치해왔지만, 2000년대부터 한국과 중국이 허브 공항 경쟁에 뛰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인천국제공항의 위상이 중국과 싱가포르 등 주변국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만큼 한국도 일본과 같은 공항 정책의 대전환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인천공항 쇼크'에 공항 정책 전면 수정한 일본

일본 정부는 1978년 나리타 공항 개항 이후 '국제선은 나리타, 국내선은 하네다'라는 이원체제를 유지했다. 나리타 공항을 허브공항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나리타 공항이 도쿄 도심에서 70㎞ 이상 떨어져 있는데다 2000년 초반까지 철도도 건설되지 않아 공항에서 도심까지 3시간이 넘게 걸리자 일본 국민들조차 나리타 공항을 외면했다. 2001년 인천공항이 개항하면서 나리타의 승객 수가 급감하기 시작하자 일본 정부는 기존의 공항 정책을 폐기하고, 하네다도 국제공항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일본은 나리타 허브 정책을 고수하다 한국과 중국 공항으로 이용객이 빠져나가자 지난 2010년부터 도심에서 가까운 하네다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2010년 하네다 공항에 4번째 활주로와 연간 7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선 터미널을 개장했다. 민간 항공사가 자유롭게 노선을 신설하는 '오픈스카이' 정책을 도입하고 심야 시간 이·착륙은 확대해 운항 횟수도 대폭 늘렸다.

그 결과 국제선 운항 횟수는 2010년 48편에서 2015년 100편 이상으로 배 이상 늘었다. 국제선 이용객은 2009년 270만명에서 2014년 1000만명으로 껑충 뛰었고 계속 증가 추세다. 아직까지 국내선 이용객이 훨씬 많지만 새로운 활주로를 건설하고 주변 교통시설을 확충하면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일본 정부는 보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이 개최되는 2020년까지는 하네다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모노레일을 도쿄역까지 연장하고, 장기적으로는 활주로 추가 건설도 검토하기로 했다. 하네다와 나리타 간 이동시간을 90분대에서 50분대로 줄이는 새로운 전용 철도도 만들 예정이다.

하네다 공항의 국제선이 확대되며 나리타의 승객 수가 급감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2014~2016년 3년 연속 이용객 수가 증가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5년 나리타 공항에 저가 항공기 전용 제3 터미널을 새로 만들었다. 하네다로 국제선 승객이 대거 이탈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저가 항공사를 적극 유치해 승객 수 감소에 대응한다는 전략이었다. 경쟁이 두 공항을 모두 키우는 효과를 낸 셈이다.

나리타 공항에 새로운 터미널이 건설된 것은 22년 만에 처음이다. 2000억원을 투자해 만든 저가 항공기 전용 터미널은 연간 75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제3터미널은 항공사 이용료가 제1ㆍ2터미널의 절반 정도이며 이용객에게 받는 국제선 시설사용료와 안보서비스요금도 제1ㆍ2터미널보다 저렴하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나리타 공항에 3500m 길이의 세번째 활주로를 건설해 항공기 출·도착 횟수를 연 30만회에서 50만회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공항 운영시간을 오전 6시~오후 11시에서 오전 5시~다음날 오전 1시로 3시간 늘리기로 했다.

◆ 인천-김포 가까워 일본보다 유리한 한국, “시너지 노려야”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김포공항은 공항철도를 타면 서울 주요 관광지와 대부분 20분 이내로 연결된다. 김포~하네다 노선은 도심과 가까워 VIP와 비즈니스맨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 중규모 공항 평가 부문(연간 이용객 1500만명~2500만명)에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 연속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서비스도 훌륭하다는 평가다.

김포국제공항은 국내선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 국제선 노선 수가 적다.

하지만 국제선 노선이 도쿄, 오사카, 베이징, 상하이, 타이베이 단 5개 뿐이다. 정부가 인천공항이 문을 연 이후 '인천공항=국제선, 김포공항=국내선'이라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이전 일본과 같은 상황이다.

김포공항은 지난 1958년 문을 연 이후 2000년까지는 우리나라의 대표 국제공항이었다. 동아시아와 북아메리카, 유럽, 오세아니아 등 28개국 17개 도시로 가는 노선을 운영했지만, 인천공항이 개항한 이후 국내선 중심으로 운영됐다. 인천공항의 허브 경쟁력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국제선 기능이 유지됐다.

김포공항 인근 주민들의 반대도 김포공항이 국제선 운항을 적극적으로 늘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다. 김포공항은 지난 1993년 6월부터 오후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 비행기 이·착륙을 제한하고 있다. 주변 거주지역의 항공기 소음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인천공항은 24시간 운항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인천공항의 수용 능력이 포화 상태에 이른 만큼 또 다른 국제공항인 김포공항을 일본 하네다 공항처럼 키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늘어나는 여객 수요를 감안해 인천공항에 추가로 터미널을 건설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다 수도권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 김포공항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나리타-하네다가 90분 정도 걸리지만 김포-인천은 공항철도로 불과 30분 정도여서 접근성이 좋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두 공항이 대체가 아닌 보완 관계가 될 수 있는 인프라도 이미 잘 갖춰져 있어 적극적인 협력이 가능하다면 나리타-하네다보다 훨씬 큰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올해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이 문을 열지만, 현재 여객 증가율 증가 추세를 본다면 금방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면서 "김포공항은 국제선 수용 능력이 충분한데도 국내선 전용으로 활용되고 있어 비효율적이다"라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지난 2001년 이후 바꾸지 않았던 인천공항 단일 허브화 정책을 재검토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하되 김포공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두 당사자가 직접 추진하기 어려운 환경인 만큼 국토교통부가 나서 국내 공항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