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가 완료된 우리은행에서 최근 '관치(官治)보다 무서운 민치(民治)'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민영화로 30% 지분을 갖게 된 과점(寡占) 주주 측이 신임 이광구 행장에 대해 6개월마다 경영 평가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은행 내부에선, 과거 정부가 1년마다 하는 경영 평가를 빌미로 은행장 인사와 은행 영업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바람에 경쟁력과 수익성이 떨어졌던 문제가 민영화 이후에도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3일 우리은행 관계자는 "관치보다 무서운 민치가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반면 과점 주주 측은 "재무 건전성, 수익성, 인사(人事) 공정성 등을 높여 관치의 부작용을 걷어내자는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6개월마다 경영 평가… 관치보다 무서운 민치"

민영화 이전 우리은행은 정부가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를 통해 지분 51.06%를 가지고 있었다. 민영화로 예보 지분은 21.37%로 떨어졌다. 예보 몫이 줄어든 자리엔 민간 주주 7곳(지분 29.7%)이 들어왔다. IMM(6%), 동양생명(4%), 키움증권(4%), 한국투자증권(4%), 한화생명(4%) 등 5곳이 과점(寡占) 주주로 경영에 참여한다. 유진자산운용(4%), 미래에셋자산운용(3.7%) 등 2곳은 투자 수익만 챙긴다.

과점 주주 5곳을 대표하는 사외이사 5명은 이광구 행장을 선임하며 "6개월 단위로 경영 평가를 하겠다. 이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자"고 요구했다. 경영 평가에는 판매·관리비 등 지출, 임원 인사의 공정성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 행장은 "경영 평가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우리은행 내부에선 "관치보다 민치가 더 무섭다" "파출소 피했더니 경찰서 만난 격" 등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영화 전 우리은행은 정부 요구에 따라 금융 지원에 동원되는 일이 잦았다. 다른 시중은행에 비해 경쟁력과 수익성이 떨어지는 요인이 됐다. 정부는 예보를 통해 1년 단위로 경영 평가를 하며 우리은행 경영에 시시콜콜 간섭했다. 인사에도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

우리은행 임원 출신 A씨는 "민영화 전에는 신상품을 내면서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내걸고 적극적으로 영업하려고 했다가 정부의 제지를 당한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며 "정부가 은행장 인사권을 틀어쥐고 있으니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민영화가 됐는데도 과점 주주가 사사건건 간섭한다면 은행의 자율 경영이 위축될 우려가 크다"고 했다.

과점 주주 측이 요구하는 경영 평가에 정치적 고려가 있다는 의혹도 있다. 우리은행 간부 B씨는 "대통령 탄핵에 이어 차기 대선으로 새 정부가 출범 할 경우 관치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고 했다. "경영 평가에 인사의 공정성이라는 계량화하기 힘든 요소가 있는데, 관치가 개입해 행장을 바꾸고 정부가 원하는 인사를 '낙하산'으로 보내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과점 주주 측 "관치 부작용 걷어내자는 것… 다른 뜻 없어"

과점 주주 측은 우리은행의 '관치보다 무서운 민치' '신(新)관치의 통로' 등 우려에 "근거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과점 주주 측 사외이사 C씨는 이날 본지 통화에서 "재무 건전성, 수익성과 인사 공정성 등 경영 평가 항목은 관치 시절 우리은행의 최대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은행은 관치 시절 인사를 앞두고 청와대, 국회, 금융 당국 등에 앞다퉈 줄을 대고 내부 파벌이 복잡했다"며 "이광구 행장을 포함한 차기 행장 후보 3명도 이 문제를 인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영 평가로 행장을 자주 교체하겠다는 뜻은 전혀 없고 경영을 잘하도록 촘촘하게 관리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