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3월 전시회 상황은 어떤가요?"(책상에 기댄 20대)

"300단체에 메일을 보냈고 미팅 약속이 많이 잡혔어요. 누구부터 만날지 같이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메일 확인하던 60대)

지난 3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의 한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 사무실에 들어서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60대와 티셔츠 차림 20대가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점자 스마트 시계를 만드는 스타트업 '닷(dot)'의 대표 김주윤(27)씨와 부사장 조창환(61)씨였다.

시각장애인 가수 스티비 원더도“넘버원” - 신구가 조화를 이룬 닷의 시계는 작년 3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콘퍼런스(CSUN)에서 6만개를 주문받는 등 호평을 받았다. 당시 닷의 부스를 찾은 세계적 맹인 가수 스티비 원더(67)도“넘버원”을 외치며 닷의 시계를 주문했다. 왼쪽부터 김지호(56) 최고운영책임자, 김주윤(27) 대표, 스티비 원더, 안지은(27) 엔지니어, 조창환(61) 부사장.

닷이 만든 시계는 500만원씩 하는 점자 기기를 30g짜리 스마트 시계로 만든 것이다. 지름 4.2㎝ 시계판 위에 지름 1.3㎜짜리 점자 24개가 튀어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시간을 표시한다. 닷은 각종 전시회와 BBC 등 해외 언론에서 호평받았다. 작년 3월 미국에서 열린 전시회에선 세계적 팝스타 스티비 원더의 주문도 받았다.

닷은 오는 16일 영국에 시계 1000개를 처음 수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주문받은 물량만 13개국 14만개다.

2014년 대학가 원룸에서 시작한 닷은 3년 만에 성공 궤도에 진입했다. 김 대표는 고성장의 비결로 '세대 간 협업'을 꼽았다. 이 회사는 스타트업이지만 임직원 25명 중 11명이 40대 이상이다. 김 대표의 지분이 가장 많지만, 임직원 25명이 모두 회사 지분을 갖고 있는 협업 체제다. 젊은 세대가 경영 전반을 맡고, 연륜 있는 세대가 오랜 경험을 전수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판매·계약을 책임진 조 부사장은 이 회사 최고령자다. 20대 젊은이들에게 현장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그는 현대중공업, 쌍용자동차에서 수출 업무를 오래 맡았다. 그는 "여기서 제2 인생을 열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젊은 친구들과 함께 뛰겠다"고 했다.

이날 또 다른 자리에선 김 대표와 함께 이 회사를 세운 공동 창업자 성기광(27)씨가 60대 고문에게 부품 위탁 업체를 관리하는 방법 등을 배우고 있었다. 성씨에게 정전기 방지 노하우, 회로 설계 기술 등을 전수하는 이는 일본 아이와(AIWA) 전기 한국 사무소에서 설계·개발을 담당했던 이흥준(61) 고문이다. 성씨는 "대학에서 정보통신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지만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며 "스승님한테 30년 현장에서 쌓은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시행착오를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는 서로 나이 차이가 크다 보니 내부 소통에 힘을 쏟는다. 25명은 서로를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조 부사장은 아들뻘인 김 대표를 '대표님' 대신 에릭이라고 부른다.

닷의 고비는 제품화였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각종 창업 경진 대회에서 족족 상을 탔지만 경쟁력 있는 시계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돌파구는 시니어들이 열었다. 기술과 재무를 책임진 최고운영책임자(COO) 김지호(56)씨 덕이 컸다. 그는 김 대표의 아버지로, 과거 유명세를 떨쳤던 오디오 브랜드 태광에로이카의 스피커 엔지니어 출신이다. 스피커 안에 들어가는 자석 전문가인데 닷의 시계는 이 자석 원리를 이용해 점자를 움직인다. 김씨는 "투자자들은 청년만으로 이뤄진 회사보다 경험 많은 시니어가 뒤를 받쳐주는 회사를 더 신뢰한다"고 말했다. 닷은 지금까지 투자금 66억원을 유치했다. 김씨는 2002년 처음 창업했지만 여러 번 실패했다. 온 가족이 원룸에서 살 정도로 어려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실패 경험은 닷이 고속 성장하는 데 영양분이 되고 있다. 김씨는 "요즘은 온종일 일만 생각하는데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