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19일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위원회가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를 공표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을 위한 의결권 행사 지침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를 채택한 기관투자가는 한 곳도 없다. 가장 큰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만들었지만 이를 채택해 도입한 곳이 없어 실효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에 참여한 박경서 고려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스튜어드십 코드는 영국에서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지배구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도입하는 추세다. 박 교수는 국민연금이 정치적인 외압 때문에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긍정적인 효과가 훨씬 많았다며,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효성 문제에 대한 걱정은 기우라고 반박했다.

박경서 교수(사진)를 만나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해 전반적인 얘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에 개정된 스튜어드십 코드가 느슨하다는 지적이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만든 사람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이번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과시키기 위해 반대 측의 의견을 수용해야 했다. 1년 전에 만들었을 때는 각 원칙에 따라 세세하게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지난해 1차 공청회에서 금융투자협회나 상장협회에서 너무 자세하면 법 규제와 다름없다며 기관투자가를 옥죈다고 반발했다. 그래서 원칙 중심의 코드로 수정하며 내용을 대폭 뺐고, 큰 원칙과 테두리 내에서 제정했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보완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번에 원칙 위주로 통과된 스튜어드십 코드는 도입 이후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추가적으로 채워넣어야 한다. 강제성을 가지는 것과 다르다. 기관들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따를 때 나타날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시키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기관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일일이 알려주지 않으면 끊임없이 규제기관에게 문의를 하고 수동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이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세부적인 내용들이 더 보완돼야 한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을 채택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를 뭐라고 보는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금융위원회와 보건복지부 사이에 걸쳐있는 상황이다. 한쪽에서 금융위원회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조심스럽게 지지하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보건복지부가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하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지금껏 이명박 정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기업 외부에서 기업 경영에 개입하고 간섭하는 걸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이 두 기관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연금이 참여하지 않은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머뭇거리는 건 코미디다. 국민연금은 한편으로는 복지 프로그램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자산운용사다.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영국, 일본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태국, 말레이시아 등 전세계적으로 스튜어드십을 도입하는 추세다. 한 나라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좌고우면해서는 안된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이 수없이 많은데 어떻게 일일이 의결권을 행사하며 간섭하냐는 지적이 있다.

“경영을 잘하는 기업은 관여할 필요가 없다. 선별적으로 뽑아서 개입하면 된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기금인 캘퍼스는 매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서 관리한다. 오너 일가가 횡령을 하거나 그룹 내부에서 일감을 몰아주고, 이사회에 친인척을 앉히는 등 문제들이 뻔히 보이는 기업들이 있다. 해당 기업을 골라서 집중적으로 감시한다. 그리고 사외이사를 추천하거나 구조조정을 하라고 권고하고 최고경영자(CEO)를 사퇴시키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기업에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것은 수익률 개선으로도 이어진다. 영국 최대 연기금인 브리티시텔레콤 연금(BTPS)의 자회사 헤르메스자산운용은 EOS(Equity Ownership Services)라는 조직을 운영한다. EOS는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해 연기금들에게 자문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실제로 헤르메스를 비롯해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운용사들의 펀드 수익률이 훨씬 좋다. 또, 중소 기관투자가들은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EOS 같은 조직이 우리나라에도 확대될 필요가 있다. ”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효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법이 아니기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이 따르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지 않은가.

“소송으로까지 문제가 불거졌을 때 판사들이 판단을 내리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륙법을 따르는 국가이기 때문에 법이 규정하지 않으면 제재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법 규정에 없어도 판사들이 판례나 사회적 분위기 등을 따져 판결을 내리는 영미법 성격이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일성신약(합병 이전 삼성물산 2.05% 보유 주주)이 지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며 제기한 합병무효소송에서 2심때 승소를 했다.”

-법원이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그 때 고등법원(2심)에서는 계열사끼리 합병할 때 오너 일가가 지분을 많이 소유한 회사는 주가가 오르고 소액주주의 지분이 많은 회사는 주가가 내려가기 때문에 불합리하다고 판결했다. 보통 이사회가 합병을 승인할 때 두 회사의 주가비율을 계산하는데, 우리나라 법은 주식 가격만 놓고 따지게 돼있다. 미국에서는 주가가 조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순자산 가치도 참고해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경영자들이 이미 오너 일가에 유리하도록 주식교환 비율과 날짜를 정했고 이 때문에 고등법원 판사도 주가 조작의 의심이 있다고 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시기적으로 재건축이 활황일 때인데 삼성물산은 건축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등 실적 개선에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도 않았다. 호주에서 새롭게 큰 공사를 맡게 된 사실도 공시를 뒤늦게 했다. 이런 정황적인 근거는 우리나라 법원에서 사용하길 꺼려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2심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고 앞으로도 사법관행이 영미법 방향으로 바뀌어 나갈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때 당시 스튜어드십 코드가 있었다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은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이번 사태처럼 외부 기관의 자문을 모두 무시한 채 결정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국민연금도 그렇고 전 세계 모든 펀드들은 의결권을 행사할 때 자문을 받고 행사한다. ISS(의결권 자문회사)나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모두 합병에 반대하라고 했음에도 국민연금이 찬성을 했는데,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르면 왜 찬성했는지 이유를 설명해줘야 한다. 그리고 의결권 자문사와 정 반대의 선택을 했을 때 국민연금은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선 펀드 운용사들이 자문사 의견을 따르지 않아서 나중에 문제가 발생하면 펀드 가입자로부터 소송을 당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합병에 반대하라는 자문을 받았음에도 찬성해서 주가가 떨어지면 해당 펀드매니저나 운용사는 소송을 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ISS 보고서를 무시해도 아무도 모르고 그 내용도 크게 이슈가 되지 않는 이상 알려지지 않는다. 어쨌거나 스튜어드십 코드가 있었다면 국민연금은 훨씬 큰 압박을 받았을 것이다.”

-또 다른 기관투자가인 운용사들이 은행이나 증권사 자회사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구조적인 문제인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많은 자산운용사들이 계열사와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삼성자산운용은 주주로 있는 삼성계열사에 뭐라고 하지를 못한다. 또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미래에셋증권이 현대차와 거래를 해야 하는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현대차 주주총회 가서 반대를 하면 사업관계가 틀어지게 된다.

하지만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이제 내부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기 어렵게 된다. 스튜어드십 코드에서 2번째 원칙이 이해상충 방지 조항이다. 기관투자가는 소유지배관계, 거래나 계약관계 등 투자대상회사와의 이해관계에서 발생하는 이해상충 방지 정책을 마련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자산운용은 삼성 계열사 주식을 갖지 않도록 하거나, 계열사 주식을 가질 경우 의결권 행사를 안 하는 등의 대안을 내놔야 한다.

더불어 언론과의 시너지가 맞아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언론이 문제제기를 해서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들에게 부담을 주고 압박을 해야 한다. 그들의 이름이 계속해서 언론에 오르내리면 자신들에게 돈을 맡긴 고객들로부터,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지탄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의사를 결정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좋은 제도를 여러가지 도입했다. 하지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기존에 도입된 것 중에서 어떤 점부터 개선해야 될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된 이사회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외이사를 두도록 했지만 회사 경영진이 뽑는다. 결국 오너일가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뽑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외이사가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경영진이나 오너가 아닌 외부자를 통해 뽑는 길이 열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의 경우 오너일가의 지분은 평균적으로 4%가 채 안 된다. 보통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은 지분이 20~30% 내외 수준이고 외국인까지 합하면 60% 가까이 된다. 하지만 외부주주는 단 한 명도 추천하지 못하고 있다. 상법상 지분 0.5%만 가지고 있어도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데 기관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두 번째는 전문성 문제다. 우리나라 사외이사의 25%가 교수다. 솔직히 나도 교수지만 백면선생이 앉아 있는 거나 다름없다. 기업은 중요한 순간순간에 빠르게 결정하고 현장감각이 요구되는 곳이다. 해외 애플이나 IBM, 구글을 모두 살펴봐도 사외이사는 전문성을 가진 현지 CEO들이 맡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교수 뿐만 아니라 전직 관료, 국세청 직원, 검사, 판사 출신들이 앉아 있다. 기업 경영진들이 법과 세금에만 골몰하는 건 부끄러운 것이다.”

-바람직한 기업지배구조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회사의 가치, 주주의 가치가 극대화 되는 지배구조다. 반대로 말하면 특정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악용되지 않는 경영시스템이다. 지배구조란 투자자의 투자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경영자의 의사결정과정을 감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지배구조를 위해서는 투명성과 책임성이 보장돼야 한다. 감시를 잘 하려면 회사가 투명해야 하는 것이고 감시가 잘 이루어지는 시스템은 책임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주주를 위해 의사결정을 하고 그렇지 못하면 책임을 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 가지 모두 부족하다. 내부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구조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면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불투명하고 무책임한 한국 고질병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30%라고 한다. 1조원 기업의 가치가 7000억원이 되는 것이다. 이는 자금조달 비용을 늘린다. 합리적이지 못한 관행을 고쳐야 선진국이 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 기업가치가 높아지면 주가가 오르고 자금조달 비용도 줄어 모두가 윈윈 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