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에 스타트업 A사 직원이 올린 글이 화제다. 이 직원은 두세달치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최근 O2O(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계 서비스) 스타트업 A사의 임금 체불설이 화제다. 한 직원이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에 “2~3달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이다. A사는 그간 800억원 이상을 투자 받으며 기업 가치를 수천억원으로 불렸지만, 아직 수익 모델이 제대로 없어 적자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추가 투자 유치에 난항을 겪자 결국 직원들의 임금 체불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3년 창업한 스타트업 B사는 현재까지 약 1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다. 서비스 출시 2년만에 100만명의 가입자를 모으며 단숨에 ‘스타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벤처 투자 업계에서는 B사의 수익화 성공 여부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B사는 현재 일부 부가 기능의 유료화와 광고 확대 등 수익 모델의 본격적인 도입을 준비 중이나, 투자 업계 관계자들은 좀 더 두고봐야 한다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불과 2~3년 전만 해도 차세대 인터넷 서비스로 주목받았던 O2O 서비스 스타트업들이 생사의 기로에 있다고 할 정도의 극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O2O 업계에 대한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가운데, 유망 기업으로 평가 받아온 스타트업도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며 구조조정은 물론 경영권 매각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O2O의 위기가 올해 더욱 심해질 것이며 폐업하는 회사도 잇달아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다운로드 수만 보고 투자하던 건 옛말...VC도 수익성 본다

O2O 스타트업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벤처 투자 업계의 투자 기준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3~5년 전만 해도 벤처캐피털이 O2O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실제로 돈을 벌 수 있는지 여부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O2O가 IT 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며 벤처캐피털 사이에서도 O2O 스타트업 투자가 일종의 유행이 됐기 때문이다. 투자사는 O2O 스타트업의 트래픽이나 다운로드 횟수, 회원수에 가중치를 둬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O2O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캐피털의 투자 심리가 악화되며, 대다수 스타트업의 돈줄이 마르고 있다.

숙박 O2O 업체 야놀자의 김종윤 부대표는 “다운로드 횟수에 10만원을 곱해 밸류에이션을 산정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며 “투자 받은 스타트업은 회원 수를 늘려 이를 근거로 투자를 받아 또 다시 그 돈으로 회원 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몸값을 높이며 생존해왔다”고 설명했다.

김 부대표에 따르면, 이후 O2O 스타트업의 밸류에이션 산정 기준은 매출,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등 수익과 관련된 구체적인 수치로 바뀌었으며 최근에는 다시 현재나 가까운 미래의 수익성으로 바뀌었다.

그는 “매출액과 MAU는 다운로드 횟수나 회원 수보다는 믿을만한 수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속임수’가 가능한 숫자”라고 말했다. 회계적으로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밸류에이션이 낮은 기업을 위주로 투자를 고민했는데, 이제는 밸류에이션에 관계 없이 수익성을 가장 먼저 본다”고 말했다. 그에게 최근 들어 추가 투자 유치 등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타트업이 몇개나 있냐고 묻자, “어렵지 않은 회사를 찾는 편이 더 빠를 정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부 기관을 펀드의 유한책임출자자(LP)로 둔 벤처캐피털 입장에서는 특히 투자 결정에 앞서 수익성을 많이 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태펀드 운용사인 한국벤처투자는 최근 3년 간 국내 벤처 펀드에 약 1조6000억원을 투자했다. 정부 주도로 벤처 투자 시장에 수조원을 풀어놓은 만큼,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투자는 펀드 운용사인 벤처캐피털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 작은 시장 규모, 韓 O2O 스타트업 고질적 한계

국내 O2O 스타트업의 경영난에는 좀 더 고질적인 이유도 있다. 내수 시장 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에 사업 규모를 키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 O2O 업체가 벌어들이는 수수료 수익은 전체 거래액의 10% 정도다. 이 중 비용을 제외한 순 매출은 5~6%에 그친다. 즉, 광고 수익이 없다면 O2O 스타트업은 거래액의 5~6%에 해당하는 수수료 수익으로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

거래액의 5~6%만 갖고 기업을 경영하려면 전체 거래 규모를 키우면 되지만, 우리나라 시장 크기를 놓고 볼 때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O2O 시장 규모는 약 2조1000억원이다. 중국(83조원)의 2.4% 수준이다.

사업 확장이 근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벤처캐피털의 돈줄마저 끊기자, O2O 스타트업 시장에는 재정난에 허덕이는 업체들이 대거 매물로 나오고 있다. 옐로모바일 그룹 산하 옐로트래블은 지난해 일찌감치 리조트포유·옐로트래블티켓·티켓매니아·DSH·프라이데이눈즈·와이알엠 등 6개 자회사를 매각해 ‘몸집 축소’ 및 효율화에 나서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O2O 스타트업들이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비용 효율화와 연계 사업 확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 O2O 업체 임원은 “제한된 비용으로 최대한 큰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비용 구조를 효율화하는 한편, 이익이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연관 사업을 추가해 캐시카우로 삼는다면 경쟁사들과의 차별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