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에도 정부가 유해물질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소비자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번엔 피앤지(P&G) 기저귀 유해물질 논란이 벌어졌는데도 정부는 해당 유해물질(살충제와 다이옥신)에 대해 안전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대응책 마련에 애를 먹고 있다. 제품 안전성 조사를 전담하는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6일 "국내에 살충제와 다이옥신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다 보니 관련 내용에 대해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 문의했다"고 밝혔다. 국가기술표준원이 P&G 기저귀에 대해 유해물질 조사에 들어가긴 했으나 기준이 없어 성분이 어느 정도 검출이 된다 해도 이게 인체에 유해한 수준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해당 제품을 만든 기업에 대한 처벌 방안도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프랑스 정부 대응을 참고하면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하는 처지다.

정부, 유해물질 정보 제공 부실

비슷한 제품도 관리·감독 부처나 안전기준이 제각각이어서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유아용 기저귀와 여성용 생리대는 제품 특성은 비슷하지만 관리 수준이 다르다. 여성용 생리대는 '의약외품'으로 분류, 엄격하게 관리된다. 의약외품은 의약품을 제외하고 사람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품을 가리킨다. 생리대는 제조·수입업자가 낸 서류와 제품에 대해 정밀 심사를 진행, 문제가 될 만한 물질을 사전에 걸러낸다. 반면 유아용 기저귀는 '어린이 제품 안전 특별법'상 '안전확인 대상 어린이 제품'으로 분류하고 있어, 제조·수입업체에선 수소이온지수(pH), 형광증백제, 포름알데히드 등 화학물질 함유에 대한 일정 기준을 충족한 다음, 산자부가 전문성이 있다고 인증한 단체에서 안전 확인 시험을 거치면 판매할 수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만약 생리대를 만들어 팔겠다는 업체가 제출한 샘플에서 다이옥신·살충제 등 위해 물질이 검출됐다면 이를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춰야만 허가를 내주는 방식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품 검사뿐 아니라 제품 유해 정보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생활 속 화학제품 성분에 대한 정보 제공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자세한 정보는 아직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부에서 세정제·표백제 등 일반 생활화학 제품 정보를 담은 '생활환경 안전정보 시스템'과 '위해 우려제품 안전정보 포털', 식약처가 화장품·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담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화장품 전자민원창구'와 '온라인 의약도서관'을 운영하고 있지만, 해당 사이트에 가보면 각 제품에 포함된 성분과 정의 등만 간략하게 나와 있을 뿐 유해성 정보는 없었다. 최근 메탄올 성분이 나와 논란이 일었던 유한킴벌리의 하기스 물티슈는 유아용 기저귀와 달리 식약처 화장품으로 분류돼 유아용품에 관한 유해 성분 정보를 얻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기저귀 유해물질 검사, 모든 브랜드로 확대해야"

유해물질 정보 공개가 미흡하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모인 인터넷 동호회 등을 중심으로 기저귀 등 유아용품에 대한 유해물질 기준을 세우고, 이번에 논란이 된 P&G 제품뿐 아니라 다른 브랜드 기저귀들도 유해물질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한 마트에서 시민이 기저귀를 고르고 있다. 최근 한 프랑스 잡지가 팸퍼스 베이비 드라이를 포함한 기저귀 10종에서 독성물질이 발견됐다고 보도하자 국내에서도 기저귀 안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국내 최대 육아 커뮤니티 '맘스홀릭'(회원 수 255만명) 한 회원은 "프랑스 소비 전문지에서 검사하지 않은 하기스 등 다른 브랜드 제품은 과연 안전할지 걱정"이라며 "믿고 쓸 수 있는 기저귀 제품이 뭔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다른 맘카페인 '대구맘365'(회원수 10만명) 한 회원은 "아기들이 쓰는 제품이나 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작은 문제라도 철저히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논란을 두고 P&G는 팸퍼스 베이비 드라이 기저귀 내 독성 물질 함유량에 대해 살충제는 0.003ppm, 다이옥신은 0.000533피코(10의 -12제곱)그램 발견됐다고 밝혔다. P&G 관계자는 "살충제의 경우 일반인이 하루 음식을 통해 섭취할 때 안전 기준의 3.3분의 1에 불과하고, 다이옥신은 원유(살균이 되지 않은 상태의 우유) 안전 기준에 한참 못 미쳐 안전하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