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소재 기업 효성은 2015년부터 2년 연속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지금 같으면 올해도 이 추세를 이어갈 것이 확실시된다. 전 세계 경기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의외의 결과다.

사실 이 회사는 2011∼2012년 중공업 분야의 덤핑 수주와 건설 경기 악화로 수천억원대 손실을 보았다. 이후 회사의 강점인 타이어코드·스판덱스 공장 증설 등 부품·소재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으로 경영 전략을 바꿨다. 효성은 타이어 내구성을 높여주는 소재인 타이어코드와 섬유소재인 스판덱스, 에어백·안전띠 기초 소재 등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소재 품목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수년 새 산업재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것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주형환(앞줄 왼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경기도 이천에 있는 SK하이닉스 M14 공장을 방문해 박성욱(앞줄 오른쪽) SK하이닉스 부회장으로부터 반도체 생산 공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내수 부진, 세계경기 침체 등으로 성장 동력을 잃었던 한국 경제는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SK하이닉스 등 부품·소재 기업들을 중심으로 다시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다.

효성과 같은 부품·소재 분야의 반등은 한·중·일 분업 구조의 지각변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한국 기업들은 자동차·TV·휴대폰 같은 완제품 시장에서 고도성장을 일궈왔다. 하지만 이후 중국에서 화웨이·샤오미·하이센스·하이얼·상하이 자동차 같은 스마트폰·TV·가전·자동차 완제품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이 중국 기업들의 한국산 부품·소재 수요가 늘어났다. 예전 일본이 담당하던 부품·소재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국 기업이 상당 부분 차지한 것이다.

완제품 부진 상쇄하는 디스플레이·반도체·타이어코드

부품·소재 중 극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는 분야는 디스플레이다. 작년 상반기까지 중국 업체들이 주도했던 LCD(액정 표시 장치) 패널 공급 과잉 현상이 사라지면서 디스플레이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위츠뷰에 따르면 작년 6월 124달러(약 14만3700원)까지 떨어졌던 LCD 패널 가격(50인치 풀HD 기준)은 하반기부터 반등해 올 1월에는 38% 오른 171달러(약 19만8200원)를 기록했다. TV 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고공 행진하는 상황에서도 50인치 이상 대화면 TV용 패널은 웃돈을 줘도 사기 힘들 정도로 물량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시장점유율 95% 이상을 기록하면서 독점하고 있는 스마트폰용 OLED(유기 발광 다이오드) 패널은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중국 화웨이, 비보, 오포와 애플에도 공급되면서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전통적 '달러 박스'인 반도체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새로운 수요처가 급증하면서 실적이 급격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불황기에도 공장 확대 및 기술 개발에 대거 투자했고, 그 결실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에만 작년에 23조원 시설 투자를 단행했다. 전체 시설 투자 비용(25조5000억원)의 90%에 이르는 금액이다.

장비·소재 관련 협력업체들의 실적도 덩달아 좋아지며 성장세를 이끌고 있다. 반도체 장비 업체인 원익IPS, OLED용 디스플레이 장비 업체인 비아트론, AP시스템 등은 작년 역대 최대치 수준의 실적을 기록했고, 올해도 고공 행진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소재가 수출 반등 이끄나

부품·소재 업계의 반등은 한국의 수출 경쟁력도 끌어올리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1월 1∼20일 수출액은 276억달러(약 32조1400억원)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5% 늘었다. 6년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월별 증가율이다. 이 기간 반도체는 52.5%, 철강은 19.9% 증가했다. 반면 스마트폰·선박 등 완제품 분야는 평균 10% 이상 수출액이 줄었다. 완제품 산업의 부진을 부품·소재로 만회하는 형국이다.

부품·소재 수출은 작년 4분기부터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작년 4분기 부품·소재 관련 수출은 663억달러(약 77조2000억원)를 기록해 7분기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 최근 2∼3년간 지속된 엔(円)화 약세에도 부품·소재 분야에서 대일 의존도가 꾸준히 감소한 것 역시 도움이 되고 있다. 대일본 부품·소재 분야의 적자 규모는 2010년 243억달러(약 28조3000억원)에서 작년 146억달러(약 17조원)로 크게 줄었다.

서울대 이종호 교수(전기공학부)는 "부품·소재 산업은 시장 특성상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이 수익도 독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반도체, 디스플레이, 타이어코드같이 세계시장 1위를 하는 분야에는 집중적으로 투자해 압도적 기술 경쟁력을 갖춰야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