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롯데마트 서울역점의 채소 코너는 한산했다. 설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장 보러 나온 주부들이 뜸해 명절 분위기를 느끼기 어려웠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불경기에 물가가 오른 탓인지 작년 설보다 손님이 확실히 적다"고 했다. 채소값을 확인해보던 주부 김금실(68)씨는 "최근까지도 한 개에 1500원 하던 애호박이 지금 2180원이나 한다"며 "채소는 워낙 비싸 전통시장에서 사야 할 것 같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설 명절을 앞두고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장바구니 물가가 좀처럼 꺾일 기미가 없다. AI(조류인플루엔자) 여파로 출하가 줄어든 계란 가격이 폭등했고, 축산물과 농산물도 무섭게 가격이 오르고 있다.

무·마늘 수입가격 70% 넘게 올라

생활 물가를 끌어올리는 주범은 채소류다. 1월 중순 채소류의 도매가격은 예년(최근 5년간 평균) 가격보다 68.9% 높아졌다. 작년 태풍 차바와 잦은 호우의 영향으로 작황이 나빠 출하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1월 중순 전체 농축산물 도매가격은 예년보다 17.9% 높다. 여기에 수입 농축수산물 가격마저 크게 올라 체감 물가를 더 끌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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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관세청이 작년과 올해 설 연휴 직전 수입 농축수산물 가격을 비교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63개 품목 중 41개 품목의 가격이 올랐다. 수입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른 품목은 무(77%), 마늘(76.8%)이다. 대개 중국에서 수입되는데, 서리·집중호우 등으로 중국에서 작황이 나빴기 때문이다.

삼겹살(33.4%), 소갈비(10.1%) 등 육류도 수입 가격이 올라 고스란히 유통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중국에서 돼지 출하가격 하락에 불만을 품은 농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중국 정부가 사육 두수(頭數)를 갑자기 줄이면서 돼지고기 값이 세계적으로 급등하고 있다.

수산물은 수온 변화 등의 영향으로 어획량이 감소하면서 꽁치(33.9%), 낙지(29.9%) 등의 수입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다. 김영란법 영향으로 값비싼 굴비 수요가 줄어들고, 대신 모양이 비슷하고 저렴한 중국산 부세 조기가 인기를 끌며 값이 오르는 것도 특징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 세계적인 기상 이변으로 농축수산물 생산이 줄어든 데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수입 가격이 대폭 올랐다"고 했다.

설 차례상 비용, 작년보다 10% 올라

국내 도매가격과 수입 가격이 동시에 오르면서 주부들이 실제 장을 볼 때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4인 가족용 차례용품을 대형마트에서 살 때 가격은 작년 설 연휴 직전보다 평균 9.9% 올랐다. 무의 가격 상승률은 126.1%로 작년보다 배 이상으로 비싸졌다. 단감(35.6%), 숙주(35.9%), 소고기(17.8%·산적용), 대파(17.9%) 등의 가격도 껑충 뛰었다.

이날 체감 물가를 점검하기 위해 충남 공주 산성시장을 방문한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서민 생활과 밀접한 품목의 물가를 철저히 관리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서민물품 가격을 낮추기 위해 정부 비축 물량을 대거 시장에 풀고 있다. 지난 4일부터 조기 등 수산물만 정부 비축량을 7200t 방출하고 있다.

차례용품은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7만원 저렴

명절을 쇠기 위한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대형마트보다는 전통시장을 이용하는 게 낫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37곳씩 조사해보니 4인 가족 기준으로 차례상을 마련하기 위한 비용이 대형마트가 29만3001원이고, 전통시장은 22만3383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은 물품을 사더라도 전통시장에서 사면 24% 더 저렴하다는 것이다. 특히 채소류를 살 때 전통시장이 35.2% 더 쌌다. 계란과 쇠고기도 각각 30% 이상씩 전통시장 쪽이 더 저렴했다.

알뜰한 장보기를 하려면 가격이 내린 품목도 있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AI 여파로 수요가 줄어든 닭고기 값은 예년보다 19.8% 내렸다. AI 바이러스는 75도 이상에서 5분간 가열할 경우 사멸(死滅)하기 때문에 인체에 무해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과일 중에서는 최근 소비가 줄어든 사과와 배가 싼 편이다. 후지 사과와 신고 배의 1월 중순 도매가격은 예년보다 29.5%, 31.7%씩 낮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번 주말 한파가 몰려오고 눈이 내린다는 기상 예보가 나왔다"며 "설 직전 나쁜 기상 여건이 농축수산물 가격을 추가로 끌어올리지 않도록 수급 상황을 집중 관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