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공공성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에서 벽지노선 손실보전 예산을 깎았다는 이유로 승객이 적은 열차의 운행을 대폭 축소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동안 독점체제에서 편안하게 영업했던 코레일이 수서발고속철도(SRT) 도입으로 경쟁이 치열해지자 경영 성과를 올리기 위해 공공성은 외면한 채 수익성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남 창원시 창원역 플랫폼으로 경전선 무궁화호 열차가 진입하고 있다. 경전선은 정부가 코레일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노선 중 하나인데, 가장 많은 영업적자를 내고 있다.

◆ 코레일 "벽지노선 감축하겠다"…공공성 흔들

코레일은 올해 정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해 12월 "경전선·동해남부선·영동선·태백선·대구선·경북선·정선선 등 7개 벽지노선의 운행 열차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최근 국토교통부에 변경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가 퇴짜를 맞은 상황이다. 주무 부처와 산하기관이 팽팽하게 맞서는 형국이다.

정부는 그동안 철도 사업의 공공성을 감안해 승객이 적은 벽지노선에서 발생하는 손실액을 일부 보전해줬다. 올해 보전 예산은 1461억원으로 전년 대비 650억원 줄었다. 정부가 예산을 3분의 1 가량 줄이자 코레일은 벽지노선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부가 올해 예산을 크게 삭감한 이유는 코레일이 보다 강력하게 경영 효율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에선 코레일이 그동안 경영 효율화 노력에 소홀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별다른 노력 없이 KTX에서 발생하는 수입을 통해 일반열차의 적자를 메우는 기존 행태를 반복하지 말고 조직과 인력 축소, 자산 매각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레일은 손쉬운 적자노선 감축을 택했다.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코레일의 벽지노선 감축 결정에 부정적인 입장인데도 강행할 태세다.

코레일이 철도 운행을 10% 이상 단축하려면 국토교통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적자노선 축소는 승차율 등 이용수요와 다른 교통수단 확보 여부 등을 충분히 검토해 결정할 문제"라면서 "코레일의 공공성을 감안하면 적자노선을 대폭 축소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피해는 벽지노선을 이용하던 시민들이 보게 됐다. 벽지노선이 운행되는 지역엔 버스와 같은 대체 교통편이 충분치 않다. 해당 지방자치단체에선 “그렇잖아도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마을이 공동화 하고 있는데, 철도 여건까지 악화되면 분위기가 더욱 침체될 것”이라며 아우성이지만 코레일은 “어쩔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9일 개통한 SRT는 KTX 대비 평균 운임이 10% 저렴하다.

◆ SRT 도입에 코레일 영업이익 직격탄

코레일은 최근 수익성이 악화할 위기다. 지난 2014년, 2015년 2년 연속으로 영업이익 흑자를 냈지만, 올해는 흑자 여부가 불투명하다. 지난달 9일 개통한 SRT 때문이다.

SRT는 지난 1일 기준으로 누적 이용객이 100만명을 넘었다. 하루 평균 4만3468명이 이용한 것이다. SRT 개통 전에 예측했던 주중 기준 일간 이용객 수 4만5662명에 근접하며 안착하고 있다.

서울 수서역에서 경기 동탄, 평택 지제역을 잇는 SRT는 강남권 이용자의 접근성이 KTX보다 뛰어나고, 운임이 평균 10% 정도 저렴해 입소문을 타며 이용객 수가 급증하고 있다.

코레일에 따르면 SRT가 개통한 이후 KTX의 전체 이용자 수는 예년 대비 6% 정도 감소했다. 운행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강남권 거주자들의 고속열차 수요가 일부 SRT로 이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강남권 거주자들은 버스를 타거나 서울역이나 용산역까지 가서 KTX를 이용해야 했는데, SRT 개통으로 수서역에서 고속철도를 탈 수 있게 됐다.

여기에 코레일이 SRT와의 경쟁을 위해 기존 KTX의 할인과 마일리지 혜택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수익성의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코레일은 "SRT와 경쟁하려고 KTX 주중 운임을 10% 낮추면 2017년 영업적자가 1013억원 발생하고, 주말 운임까지 인하하면 적자가 1704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부적으로 추정했다.

코레일은 SRT 개통 한 달 전부터 공격적으로 할인에 나섰다. 예상 승차율이 낮은 티켓에 대해 운임 할인을 해주는 '인터넷 특가'는 현재 할인율이 5~20%인데 10~30%로 확대됐다. 만 24~33세를 대상으로 한 '힘내라 청춘'은 최대 할인율이 30%에서 40%로 올랐다.

지난 2013년 폐지했던 마일리지도 3년 만에 재도입했다. 결제금액의 최대 11%까지 적립해 현금처럼 쓸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SRT 개통으로 수요는 분산되고 주중, 주말 가리지 않고 할인을 대폭 확대하면서 영업적자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출퇴근을 위해 5년 넘게 KTX를 탄 정혜경씨는 "열심히 쌓았던 마일리지를 폐지한다고 해서 화가 났는데SRT 때문에 갑자기 부활시킨다니 황당하다"면서 "지금 당장 할인을 많이 해줘서 좋지만, 언제까지 해줄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