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병 모아 두면 아이 과자값은 나올 것 같네요."
"소주병 재테크 해야겠어요."

정부의 빈병보증금 인상 소식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이다. “빈 병을 모아 보증금을 환불받겠다”고 마음먹은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환경부는 빈 병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올해부터 소주병 빈병보증금을 40원에서 100원, 맥주병은 50원에서 130원으로 각각 올렸다.

하지만 기자가 체험해 본 ‘병테크(빈 병+재테크)’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상된 보증금을 적용받는 병을 찾기가 어려웠다. 빈병보증금(공병가)은 병 라벨에 쓰여있는데, 올해 출고된 술병이 아니면 이전 보증금의 라벨이 붙어있다. 병 라벨이 벗겨져 있으면 출고 시점을 확인할 수 없어 기존 빈병보증금을 받는다.

게다가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비치된 빈 병 무인 회수기는 먹통이었다. 30병 이상 환불하려면 구매 영수증이 필요했다. 동네 슈퍼는 “귀찮다”는 이유로 환급을 거절했다.

빈병보증금을 받기 위해 모은 소주병과 맥주병.

◆ 100·130원 보증금 올해 출고 술병 찾기 어려워주점·식당주 "도매상에 전량 반납"

올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지난 14일과 15일 용산구 삼각지역, 남영역, 효창공원앞역, 용산역 일대 편의점과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근처 아파트 재활용 분리수거장을 샅샅이 뒤져봐도 올해 출고된 술병을 찾을 수 없었다. 기업형 슈퍼마켓 판매원은 “주류도 유통기한이 있기 때문에 재고를 먼저 소진하게 된다”며 “빈병보증금이 올랐다고 듣긴 했는데, 아직 매장에선 해당 술병을 못 봤다”고 했다.

주점·음식점 등 주류 회전율이 높은 곳에서는 간혹 올해 출고된 병(업소용)이 눈에 띄었지만, 구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신흥 상권으로 떠오른 용산구 원효로 한 주점의 직원은 “소주와 맥주 빈 병은 전량 도매상에 반납한다”며 “간혹 폐지 줍는 어르신들이 달라고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세금계산서 문제도 있어 못 드린다”고 했다.

이날 대형마트에 빈병보증금을 받으러 왔다는 김도영(가명·52)씨는 “소주병 하나에 100원 쳐주는 줄 알고 왔는데, 40원씩 밖에 못 받았다”고 했다. 그는 “TV 광고에서 올해부터 빈 병 값이 올랐다고 하길래 올해 산 것만 가져왔는데, 작년 제품인 줄 몰랐다”고 했다.

소주병과 맥주병 라벨에는 빈병보증금이 표시돼 있다. 올해 구입했더라도 작년에 출고된 제품이면 인상 전 가격(50원·붉은색 박스)이 적용된다.

◆ 무인 회수기 먹통동네 슈퍼는 환불 거부

어렵게 구한 빈 병 30개(작년 제조품)를 들고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홈플러스 영등포점. 이곳에 마련된 무인 회수기를 체험해 보기 위해서였다. 서울에는 작년 12월 9일 기준으로 총 7개 지역(기기 13대)에 무인 회수기가 설치돼 있다. 홈플러스의 경우 영등포점이 유일한 무인 회수기 설치 점포다.

‘기계가 병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까’, ‘돈은 제대로 나올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지하 1층 고객서비스센터 코너를 방문했는데, 당황스럽게도 무인 빈병 회수기에는 ‘시스템 장애로 현재 사용이 불가합니다’란 안내문이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기기 아래쪽에 붙어 있는 안내도를 따라 1층에 마련된 대량 빈 병 회수 장소에 가봤지만, 안내를 맡은 직원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고객서비스센터로 내려와 번호표를 뽑고 상담 직원에게 얘기하고 나서야 빈 병을 환불할 수 있었다.

홈플러스 영등포점에 비치돼 있는 빈 병 무인 회수기. 시스템 문제로 사용이 불가하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두 번째로 찾아간 롯데슈퍼 공덕점의 상황도 같았다. 정상 작동하는 듯 보였지만, 막상 빈 맥주병을 넣으니 인식하지 못했다. 병을 뒤집어서 넣어보고 소주병을 넣어봐도 ‘수용 불가(not accepted)’란 메시지만 떴다. 결국 롯데슈퍼 공덕점에서도 직원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객 서비스 센터 직원은 빈 병 개수와 병값을 일일이 확인한 후 보증금을 내줬다.

보증금을 제대로 받아보겠다며 대량으로 빈 병을 모은 경우라면 더 곤란하다.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편의점 등 대부분의 매장에서 ‘동일고객 1일 30병 초과’ 반환시 해당 매장에서 주류를 구입했다는 영수증을 제시하도록 요구했다. 실제로 부부가 빈 병 60병을 반환하려고 했다가 동일 고객으로 취급돼 30병만 환불한 사례도 있다.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마켓, 대기업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선 그나마 빈병보증금 환불이 가능했지만, 동네 슈퍼에선 불가능했다. “도매상에 넘기기 귀찮다”, “빈 병 부피가 커 보관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롯데슈퍼 공덕점에 비치돼 있는 빈 병 무인 회수기. 빈 병을 넣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 30병 팔아 손에 쥔돈 1260원회수 활성화 미지수

소주병 23개, 청하병 1개, 맥주병 6개. 빈 병 30개를 환불해 손에 쥔 돈은 1260원에 불과했다. 올해 만들어진 제품 기준으로 하면 3180원까지 올라가지만 이런저런 제약과 수고를 감수할 정도는 아니었다.

빈 병 환불을 시도해봤다는 한 30대 주부는 “술 팔 때는 제한 없이 팔더니 공병 교환할 때는 ‘주말에 안 받는다’, ‘담당자가 7시까지만 받고 퇴근한다’, ‘수요일에만 받는다’고 하더라. 동네 슈퍼 몇 곳을 돌았는데 실제로 모아서 팔아보니 팔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20대 주부 역시 “안 받아주는 곳도 많고, 병을 들고 이동하기도 불편해 그냥 분리수거할 때 내놓는다. 빈 병 값 올랐다고 해서 팔아볼까 했다가 포기했다”고 했다.

용산구 일대 대형마트, 기업형 슈퍼, 편의점을 돌아봤지만 올해 출고된 제품은 없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빈병보증금 환불 대상이 아닌 수입 병맥주, 와인 소비가 늘고 있어 빈병보증금이 올랐다고 해도 회수율이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1인 가구를 비롯해 집에서 병맥주보다 가볍게 캔맥주를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2014년 기준 오비맥주의 캔맥주 판매 비중은 22.8%, 하이트진로의 캔맥주 판매 비중은 18.8%에 달했다.

한편 무인 빈 병 회수기는 홈플러스 영등포점을 비롯해 이마트 성수점 묵동점 하월곡점, 롯데마트 구로점 도봉점, 롯데슈퍼 공덕점 등에 비치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