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택시장 호황으로 중견 건설사의 외형이 커지면서 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대형 건설사 못지않게 높아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형 건설사가 대부분 전문 경영인 체제라면 중견 건설사는 오너 경영 체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이제 30~40년 이상 된 중견 건설사들은 2세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폐쇄적 경영 구도를 갖고 있거나 비상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경영권 승계 과정을 투명하게 파악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조선비즈가 국내 대표 중견 건설사들의 2세 경영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봤다. [편집자주]

중흥건설은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건설사다. 1983년 금남주택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해 현재 49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 건설사로 성장했다. 창업주 정창선(73) 회장의 장남 정원주(47) 중흥건설 사장과 차남 정원철(46) 시티건설 사장이 가업을 승계하고 있다.

‘중흥 S-클래스’ 브랜드를 쓰는 중흥건설은 자산 7조원이 넘는 재계 서열 40위 기업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급성장했지만 그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나 비자금 조성, 하도급 대금 미지급 등으로 기업 이미지가 추락했다.

중흥건설을 포함해 49개 계열사가 모두 비상장사인데, 정원주 사장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중흥토건을 중심으로 그룹이 재편되고 있다. 장남 중심의 경영 승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차남 정원철 사장은 시티건설(옛 중흥종합건설)로 독자 경영의 길을 걸으며 계열분리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계열사끼리 복잡하게 얽힌 지분 구조는 계열분리를 위해 풀어야 할 장기 과제다.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 3년만에 매출 3배 증가…추락한 이미지 풀어야 할 숙제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은 1983년 금남주택을 시작으로 1989년 중흥건설을 설립했으며 1993~1994년 중흥종합건설과 세흥건설을 세우면서 건설업 위주로 사업을 확장했다. 사업 다각화를 위해 1996년 중흥파이낸스를 세웠고, 1997년엔 중흥정보통신을 설립하고 2000년 나주관광개발을 계열사로 편입했다.

중흥건설은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 계열사를 포함한 중흥건설의 전체 매출액은 2012년 1조4680억원에서 2013년 2조2070억원, 2014년 3조3490억원으로 늘었다. 2015년에는 4조5610억원으로 3년 만에 매출액이 3배 넘게 증가했다.

중흥건설이 도약할 수 있었던 결정적 사업은 세종시 주택공급사업이었다. 세종시에서만 ‘중흥 S-클래스’로 1만여세대의 브랜드 타운을 조성하는 등 2012~2013년 2년 연속 전국 아파트 공급실적 3위를 기록할 정도로 활발히 주택사업을 했다.

하지만 중흥건설의 초고속 성장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초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중흥종합건설에 시정명령을 내리고 7억9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가 대금 미지급 행위로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 중 최고 금액이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승계 의심도 받아왔다. 정원주 사장이 지분 100%를 소유한 중흥토건의 매출액 상당 부분이 정창선 회장이 대주주인 중흥주택 등 관계사에서 나왔다. 또 공공택지 추첨으로 낙찰받으면 낙찰 공급가격 이하로 다른 업체에 전매할 수 있는 특례조항의 빈틈을 활용해 그룹 계열사가 오너 일가의 지분이 많은 회사에 일감을 지원했다는 의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원주 사장은 2015년 ‘1000억원대 비자금 스캔들’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당시 검찰 조사에서 횡령액 일부가 오너 일가의 생활비와 적금 붓기 등에 사용된 사실이 드러났다. 정원주 사장은 200억원대 비자금 조성혐의를 받아 2015년 9월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 장남 정원주 중심 가업승계…차남 정원철 시티건설로 독자 경영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중흥건설은 정창선 회장의 지휘 아래 정원주 사장이 2013년부터 대표를 맡고 있다. 정창선 회장은 중흥건설 대주주로 지분 76.74%를 보유하고 있다. 정원주 사장과 정원철 사장은 중흥건설 주식을 각각 10.94%, 4.69% 갖고 있다.

2세 승계에서 주목해야 할 회사는 중흥토건과 시티건설이다. 중흥토건은 정원주 사장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시티건설은 지난해 사명이 중흥종합건설에서 시티건설로 바뀌었다. 정원철 사장이 지분 100%를 갖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도 기존 ‘중흥S클래스 프라디움’에서 ‘시티 프라디움’으로 바꿨다.

중흥건설은 중흥토건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장남인 정원주 사장이 중흥토건을 통해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반면 차남인 정원철 사장은 시티건설을 통해 중흥건설과 선을 긋고 독자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계열분리를 통해 경영권 분쟁을 사전에 막겠다는 조치다.

중흥토건은 중흥에스클래스의 지분 90%를 확보한 것을 비롯해 중봉건설, 다원개발, 새솔건설, 에코세종, 중흥엔지니어링, 청원개발, 청원산업개발 등의 지분을 75~100% 보유하고 있다. 정원주 사장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중흥토건을 통해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중흥건설 계열사는 모두 21개사에 달한다.

중흥토건의 매출이 2009년 103억원에서 2015년 6168억원으로 6년 만에 60배 가까이 늘고 중흥건설의 매출액(5172억원)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것은 계열사의 지원 덕이다. 중봉건설, 새솔건설, 다원개발, 에코세종 등의 계열사로부터 공공택지 주택사업 일감을 대거 확보하면서 매출이 크게 늘었다.

중흥토건은 중흥건설의 시공 보조 역할을 해오다 2011년부터 직접 택지매입 자금을 조달하고 주택사업에 주도적으로 뛰어들었다. 중흥건설이 택지 매입 과정에서 지급보증에 나서주면서 자금조달 부담을 덜었고, 계열사로부터 안정적으로 택지가 공급되면서 매출이 급증했고 그룹의 주력사로 떠올랐다. 장남인 정원주 사장 중심의 가업승계가 본격화된 것이다.

반면 차남인 정원철 사장은 시티건설을 통해 독립 경영의 길을 걷고 있다. 정원철 사장은 시티건설과 시티글로벌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시티글로벌은 시티주택건설, 시티개발, 아이시티건설 지분 100%를, 시티종합건설 지분 51.18%를 갖고 있다. 시티건설은 금속토건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 시티글로벌이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하면서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시티건설은 지난 2005년 중흥건설의 본거지인 광주를 떠나 서울 강남으로 이전했다. 주택사업 중심인 모기업 중흥건설과 달리 토목과 해외건설 분야에도 진출했다. 2015년 매출액은 2722억원으로 전년보다 55.6% 늘었고, 영업이익은 226억원으로 72.5% 증가했다.

◆ 얽히고설킨 지분구조가 계열분리 발목 잡아

중흥건설은 계열사끼리 지분구조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원주 사장의 중흥토건과 정원철 사장의 시티글로벌 중심으로 지분구조가 정리됐지만 계열분리를 위해선 좀 더 명확한 지분정리가 필요하다.

공정거래법에서는 기업집단의 동일인(총수)과 동일인의 특수관계인(배우자, 6촌 이내 혈족 등)의 지분율 합이 발행 주식 총수의 30% 이상이면 같은 계열사로 보는데, 중흥건설은 계열사끼리 지분이 여전히 거미줄처럼 얽혔다.

정창선 회장이 지분 76.74%를 보유하고 있는 중흥건설은 계열사 중흥개발을 통해 정원주 사장의 중흥토건 계열사인 중봉산업개발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다. 정원주 사장의 중흥토건은 또다시 중흥건설의 계열사인 세흥산업개발 지분 12.5%, 세흥건설 지분 13.84%, 최강병영 지분 4.49%를 보유하고 있다. 중흥건설은 또 정원철 사장의 시티종합건설 계열사인 참교육배움터와 미래병영의 주식을 각각 8.34%, 3.33% 보유하고 있다.

중흥건설은 이런 복잡한 지분구조를 정리해야 계열분리 절차를 공식적으로 밟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중흥건설이 한때 대기업 집단에 포함돼 계열사 간 상호출자나 신규순환출자, 채무보증 등이 금지되면서 계열분리 속도를 높였지만, 계열사 간 지분관계가 복잡해 짧은 시간 안에 마무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자산 7조원 넘어도 상장사 ‘제로(0)’

중흥건설은 한때 대기업 집단에 지정될 만큼 덩치가 커졌지만 경영 투명성은 취약하다. 2015년 4월 기준 중흥건설의 자산총액은 5조6000억원으로 상호출자제한·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대기업 집단) 기준인 5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4월에는 자산이 7조6000억원으로 1년 사이 2조원이 늘었다. 지난해 9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이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변경되며 대기업 집단에서 빠지긴 했지만, 재계 서열은 2015년 48위(공기업 제외)에서 지난해 40위로 8계단이나 뛰었다.

재계 서열 40위의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계열사도 49개로 늘었다. 하지만 이 중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그만큼 경영 투명성에 문제점을 갖고 있다. 개인이나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폐쇄적인 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하면 일반에 주식을 공개하고, 재무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기업의 경영투명성은 높아지지만 오너 입장에서는 회사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고 ‘꼼수’를 부리기도 힘들어진다.

김형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알짜 기업이 상장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며 “첫 째는, 창업주가 지분 대부분을 소유한 경우 대주주의 지분 거래가 낱낱이 공개돼 상속과 승계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상속 승계가 해결되기 전까지 상장을 꺼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다른 이유는, 상장하게 되면 공시 의무가 까다로워지고 높은 회계 투명성이 요구돼, 자금조달의 필요성이 없다면 굳이 상장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