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14일, 야당 의원 107명은 '청년세(稅)' 법안을 발의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내·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법인세 과세표준금액에서 1억원을 뺀 금액의 1%'를 추가로 걷어 청년을 위해 쓰겠다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19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상임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지만 광화문 촛불시위 인파가 100만명(주최 측 추산)을 기록한 지 이틀 만에 다시 발의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아무리 취지가 좋다지만 선심은 야당이 쓰고, 돈은 기업이 내라는 법안"이라며 "정경유착에 대한 사회적 비판 분위기를 기회로 삼은 것 같다"고 했다.

정치권에서 '경제 개혁'이라는 명목으로 기업 활동을 규제하는 법안이 쏟아지고 있다. 주로 야권(野圈)이 발의했지만, 개혁보수신당(가칭) 일부도 동조할 것으로 보여 어느 때보다 국회 통과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 총수들이 최순실 게이트 등과 관련해 줄줄이 검찰 및 특검 수사를 받고 있어 재계는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하고 있다.

100여개까지 쏟아진 경제 개혁 법안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지난 3일 국회에서 "촛불 민심을 반영한 5대 개혁법안 처리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주주대표소송제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 ▲상가·주택임대차보호법상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등이 포함돼 있다. 재계에서는 "이 같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는 내용의 법안이 의원 간 중복 발의를 포함하면 그 숫자가 100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재계가 가장 우려하는 법안은 김종인·채이배 의원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이다. '재벌 경영권 견제' 차원에서 소액 주주의 의결권을 강화시켜 소액주주들이 원하는 사외이사, 감사위원 등을 선임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소액 주주만 권한이 강화되는 게 아니라 외국 투기자본의 목소리도 커지면서 결국 투기 세력의 '먹튀' 논란만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규정한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논란이다. 담합·독과점 문제는 그동안 공정위만 고발할 수 있게 돼 있었지만 앞으로 국민 누구나 고발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럴 경우 기업들은 "음해적인 고발에 시달려 정상적인 경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이 최근 발의한 독점규제법 개정안은 기업이 인적분할을 하면 자사주(株)의 의결권 부활을 막는 내용을 담았다. 재계 관계자는 "독점규제법 개정안은 사실상 삼성전자라는 특정 기업의 지주회사 전환을 막으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 "규제 입법이지 개혁 입법 아니다"

이 밖에 포퓰리즘적 성격의 법안, 위헌 소지의 법안도 잇따르고 있다. 특정 업종을 '소상공인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소상공인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특별법안(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도 발의돼있다. 이 법을 통해 예컨대 '떡볶이 판매는 소상공인 업종'이라고 지정하면, 풀무원·CJ 등 대기업은 포장 떡볶이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

최운열 의원 등 12명은 미성년자에게 5억원 이상을 증여하면 세금을 20% 더 내는 상속세·증여세법 개정안을 내놨다. 최 의원 등은 이 법안의 제안 이유서에 '미성년자 상속은 국민적 위화감을 조성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재경(在京) 지법의 한 판사는 "어리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내라는 것은 헌법상 평등의 원칙을 위배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 고 했다.

김영용 전남대 교수는 "트럼프의 미국, 시진핑의 중국, 아베의 일본 등 경쟁국들은 국익 우선주의 경제 정책을 앞다퉈 펴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개혁을 내세우면서 실제로 우리 기업과 경제를 규제해 위축시키는 입법을 하려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