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시간의 어둑어둑한 차도를 달리며 스스로 차선을 변경하고 신호를 감지하는 자율주행차. 운전자 특성에 따라 주행환경을 알아서 조정하는 고도로 지능화한 자동차. 탑승자의 기분을 알아내 주행에 반영하고 대화까지 나누는 사람 같은 차…’

지난 3일(현지시간) 시승행사에서 현대차의 아이오닉 자율주행차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심을 달리는 모습

5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2017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를 하루 앞두고 주요 자동차 기업들과 전장(電裝, 자동차에 들어가는 모든 전자기기)업체들이 공개한 신기술과 콘셉트카의 모습들이다. 특히 올해 CES에서는 자율주행과 커넥티드카 관련 기술 경쟁이 뜨겁다.

현대자동차와 BMW, 도요타 등이 앞다퉈 자율주행차와 콘셉트카를 공개했고 보쉬, 콘티넨탈 등 전장부품업체들은 저마다 자신들이 커넥티비티(연결성) 시대의 한 축을 담당할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최근 몇 년간 CES를 뜨겁게 달궜던 전기차 등 친환경차 분야의 열기가 사그라든 모습이었다. 새롭게 시장에 뛰어든 일부 후발주자가 전기차 신모델을 공개했지만, 주요 글로벌 자동차 업체 가운데 새로운 전기차나 친환경 기술을 공개한 곳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 車가 비서가 되는 미래…사람 감정 꿰뚫는 AI 탑재 자율주행 콘셉트카도 공개

보쉬는 운전자의 얼굴을 인식해 주행환경을 조절하고 비서역할까지 할 수 있는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독일의 전장업체 보쉬는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진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사물인터넷(IoT)과 커넥티비티 기술을 활용해 제작된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이 차는 사람이 운전석에 앉는 순간 얼굴을 인식해 시트와 내부온도, 사이드미러 등 주행환경을 스스로 조절하고 라디오 채널 주파수까지 맞춰준다. 또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와 인터넷 연결을 통해 차 안에서 화상회의도 할 수 있고 최신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등도 다운로드할 수 있다. 차량을 통해 일정을 확인하고 업무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가 거의 개인비서와 다름없는 역할을 한다.

보쉬는 2022년까지 커넥티드카 시장이 매년 25%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행사에서 연사로 나선 베르너 스트루트 보쉬 부회장은 “자동차는 몇 년 안에 사물인터넷이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는 분야가 될 것”이라며 “차량 커넥티비티 기술 개발과 보안 솔루션 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AI 기능이 적용돼 운전자와 실시간으로 교감하는 도요타의 자율주행 콘셉트카 ‘愛i’

도요타는 더 나아가 자동차가 탑승자와 실시간으로 교감하는 자율주행 콘셉트카 ‘愛i(‘유이’로 지칭)’를 공개했다. 愛i는 자율주행차에 인공지능(AI)을 탑재해 탑승자의 감정이나 신체 상황 등을 읽어내 주행에 반영한다. 애플의 ‘시리’와 같은 대화 기능을 적용해 자율주행 모드로 갈 지, 수동으로 주행할 지 여부도 파악한다.

많은 글로벌 기업이 앞다퉈 사람의 손이 필요하지 않는 완벽한 자율주행차의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점과 달리, 도요타는 전통적인 기술과 첨단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하고 인간과 소통하는 새로운 형태의 미래형 콘셉트카를 선보인 것이다.

도요타는 차량 윗면에 넓게 자리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유리창을 활용해 탑승자의 메시지나 감정을 전하는 콘셉트카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자율주행차 상용화 계획 밝힌 현대차·BMW…시장 선점 위한 전략은 ‘동맹’

현대차도 이번 CES에서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 기술 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현대차는 미디어 컨퍼런스가 열리기 하루 전인 3일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주·야간으로 아이오닉 자율주행차 시승회를 열었다.

미래 모빌리티 전략을 발표하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4일 열린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최소한의 센서를 탑재해 돌발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며 “자율주행 기술은 양산과 보급 확대에 초점을 맞춰 개발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전 아이오닉 자율주행차를 직접 운행하기도 했다.

CES 본 행사에서도 현대차는 아이오닉 자율주행차와 자율주행 VR 시뮬레이터, 투싼 커넥티드카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BMW는 아예 완벽한 형태의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는 시점을 2021년이라고 못 박았다. 이를 위해 올 하반기부터 미국, 유럽 등에서 7시리즈 세단을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차 40대를 시범 운행하기로 했다.

BMW가 인텔, 모빌아이와 손잡고 개발한 콘셉트카 ‘i 인사이드 퓨처’

현대차와 BMW는 완전 자율주행차와 커넥티드카 개발을 위해 글로벌 IT 기업과의 협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BMW는 이날 인텔, 모빌아이와 손잡고 개발한 자율주행 콘셉트카인 ‘i 인사이드 퓨처’를 공개했다.

◆ 친환경차 열풍은 시들…개막 전 행사, 패러데이퓨처만 신차 공개

글로벌 자동차 업체와 전장회사들이 앞다퉈 자율주행과 커넥티드카 관련 신기술과 다양한 콘셉트카를 공개하며 열띤 모습을 보인 반면 그 동안 CES의 ‘단골손님’이었던 전기차·친환경차에 대한 열기는 눈에 띄게 줄어든 분위기였다.

지난해 열린 CES에서는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와 함께 친환경차도 자동차 부문의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한 바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메리 바라 회장이 직접 CES에서 100% 순수 전기차인 ‘볼트’를 소개했고 BMW도 고성능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i8 스파이더’ 콘셉트카를 선보였다. 연비조작 파문으로 홍역을 치른 폴크스바겐도 골프R의 전기차 버전을 공개했다.

패러데이퓨처가 공개한 양산형 전기차 ‘FF91’

그러나 이번 CES를 앞두고 열린 미디어 사전행사에서 새로운 전기차 모델을 공개한 곳은 신생 전기차 제조사인 패러데이퓨처가 유일했다. 패러데이퓨처는 3일 열린 신차 설명회에서 경쟁사인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에 대응할 양산형 전기차인 ‘FF91’의 외관과 제원, 성능 등을 공개했다.

CES 본 행사에서도 새로운 전기차 모델을 공개하는 업체는 양산형 전기차 미니밴을 선보이는 FCA(피아트크라이슬러) 등을 제외하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를 포함한 친환경차는 이미 양산 비중이 눈에 띄게 늘어난 데다, 기술력도 상당부분 올라와 더 이상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신기술 전쟁터’인 CES에서 주목을 끌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의 경우 아직 양산이 거의 진행되지 않은 반면 향후 높은 성장성이 잠재돼 있다”며 “이 때문에 완성차는 물론 전장, IT 업체들까지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