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각) 저녁 8시 30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도심 도로. 왕복 6차선 도로 위를 달리던 아이오닉 일렉트릭 자율주행차를 운전하던 유병용 현대차 연구원이 스티어링휠(운전대)에서 손을 뗐다. 탑승자 5명 가운데 스티어링휠에 손을 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아이오닉은 운전할 때와 마찬가지로 안정적으로 제 차선과 속도를 유지한 채 주행을 지속했다.

직진하던 아이오닉은 두번째 교차로에 들어서자 스스로 우측 방향등을 켠 뒤 차선을 변경했다. 보행자가 지나가길 끈기있게 기다린 후 사람이 사라지자 우회전을 해 터널로 진입했다. 주위가 어두워진 상황에서도 막힘 없이 제 갈 길을 찾아갔다.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자율주행차의 성능을, 그것도 낮보다 더 높은 주의가 요구되는 야간 주행상황에서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다.

3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심을 주행하는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 자율주행차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신기술은 자율주행차다. 심심찮게 들리는 사고 소식은 자율주행차의 안전성과 성능에 대해 여전히 의구심을 갖게 하지만, 자율주행차가 머잖은 미래에 글로벌 자동차 시장 전체를 획기적으로 바꿀 대변혁의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데 이견(異見)을 다는 전문가는 찾기 힘들다.

오는 5일(현지시각)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2017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를 앞두고 현대자동차가 현지에서 아이오닉 일렉트릭 자율주행차의 시승회를 열었다. 특히 이번 시승회는 야간 주행상황에서도 아이오닉 일렉트릭 자율주행차의 센서가 사물과 주위 차량, 신호 등을 얼마나 완벽하게 인지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저녁 8시가 넘어 시작됐다. 주행 코스는 라스베이거스 숙소 옆 주차장을 출발해 도심을 달린 뒤 복귀하는 4km 구간이었다.

◆ 차량 스스로 우측 비상등 켜고 우회전…운전자는 모니터로 실시간 주행상황 확인

아이오닉 자율주행차의 운전석에는 유병용 현대차 지능형안전연구팀 책임연구원이 앉았다. 유 책임연구원은 숙소 밖에서 도심 진입 전까지 손으로 운전한 뒤 도심에 들어서자 크루즈 버튼을 눌러 자율주행 모드로 바꿨다. 차량의 속도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아이오닉 자율주행차는 첫번째 신호등이 파란불임을 확인한 후 직진 상태를 유지한 채 주행을 계속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 자율주행차

한동안 직진으로 주행하던 아이오닉 자율주행차는 이윽고 우측 방향등을 켠 채 오른쪽 차선으로 진입했다. 사전에 입력해 둔 코스대로 주행하기 위해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우회전 진입 전 보행자가 들어서자 자동으로 주행을 멈춘 뒤 사람이 지나간 후 우측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이오닉 자율주행차는 도심에서 시속 40km 안팎의 속도를 유지했다. 자율주행차는 도로 규정 제한속도에 맞춰서 스스로 속도를 제어하고 주위 차량 상황과 차선, 코스 변경 필요성 등에 따라 속도를 높이거나 줄일 수 있다.

주행 중 전방에 비상등을 켠 채 정차해 있는 차량이 나타났을 때는 잠시 주행을 멈췄고 유 연구원이 좌측 방향등을 켠 뒤에야 차량이 방향을 바꿔 주행을 재개했다. 유 연구원은 “전방의 물체를 인지해 주행을 멈추는 기능은 있지만, 스스로 어떤 상황인지를 인지해 차선을 바꿔 주행하는 기능은 개발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차선이 그려져 있지 않은 채 임시 차선 표시만 해 둔 코스에서도 아이오닉은 별다른 막힘 없이 제 갈 길을 유지하며 주행했다. 어두운 상황에서도 주위의 연석이나 블록, 담벽, 가로등 등을 전방 센서가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오닉 자율주행차에 장착돼 전방 신호와 속도, 이동상황 등을 보여주는 모니터

아이오닉 자율주행차에는 센터페시아에 1개, 운전석과 조수석 뒤 2개 등 총 3개의 모니터가 장착돼 지도 위 주행상황과 이동속도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숙소 인근까지 들어선 뒤 유 연구원이 다시 스티어링휠을 잡자 아이오닉 자율주행차는 자동으로 다시 수동 운행모드로 전환했다. 총 4km의 도심 야간주행 시간은 12분이었다.

◆ 기존 카메라·레이더에 라이다 장착…전방 상황 완벽하게 인지해 자율주행 기술력 높여

이번 시승회에 사용된 아이오닉 자율주행차에는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카메라와 레이더 외에 라이다(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라는 장치가 새롭게 탑재됐다. 라이다는 레이저보다 전방의 물체와 상황 등을 훨씬 정밀하게 인지하는 장치로 레이더에 비해 가격대도 훨씬 높다.

그러나 레이더가 전방과 측면까지 인지하는 반면 라이다는 직진에서의 전방 상황만을 파악하기 때문에 현재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는 레이더와 라이다를 혼용해 탑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오닉 자율주행차에는 레이더와 라이다가 각각 3개, 카메라 모듈이 2개가 장착됐다.

조수석 뒤에 장착된 라이다 센서의 주행상황 인지 화면. 개발용 차량에만 장착되고 양산형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아이오닉 자율주행차의 전면에 설치된 라이다 센서와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레이더 센서는 주변에 있는 차량이나 물체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도록 하며, 전면 유리 상단에 설치된 3개의 카메라는 보행자의 접근도, 차선, 교통 신호 등을 감지한다.

또 차량 지붕에 달린 GPS 안테나는 각 이동물체간 위치의 정확도를 높여주고, 고해상도 맵핑 데이터를 통해 도로의 경사와 곡률, 차선 폭, 방향 등의 정보를 받는다. 이 밖에 후측방 레이더를 통해 다양한 도로환경에서도 차선을 안전하게 변경할 수 있다.

◆ 현대차, 2020년 고도자율주행·2030년 완전자율주행 상용화한다

이번 시승회에 사용된 아이오닉 자율주행 차량은 지난해 LA 모터쇼에서 공개됐던 모델로 미국자동차공학회(SAE – Society of Automotive Engineers)가 분류한 레벨 1에서 5까지 5단계의 자율주행 기준 레벨에서 기술적으로 완전 자율 주행 수준을 의미하는 레벨 4를 충족시켰다.

현대차는 지난해 12월 미국 네바다주로부터 고속도로에서 투싼 수소전기차의 자율주행 시험을 할 수 있는 운행 면허를 취득했고 올해 초 국내 도로에서의 자율주행도 허가받았다. 또 지난 10월에는 미국 네바다주로부터 아이오닉 일렉트릭과 하이브리드에 대해 모든 형태의 도로와 환경조건에서 운행 가능한 자율주행 시험면허를 취득하기도 했다.

아이오닉 일렉트릭 자율주행차의 측면부

현대차 관계자는 “아이오닉 자율주행차 모델은 초기단계부터 자율 주행을 목표로 설계돼 외관상 양산형 모델과 큰 차이가 없지만, 차량 곳곳에 적용된 최첨단 센서와 기술을 통해 복잡한 도심이나 야간 주행환경 속에서도 자율주행이 가능한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율주행차를 포함한 스마트카 분야에 2018년까지 약 2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라며 “2020년까지 고도자율주행 단계에 들어가고 2030년에는 완전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