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바가 기업 회생을 위해 낸드플래시 사업을 분사해 지분 투자 유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SK하이닉스(000660), 칭화유니그룹 등 한중 반도체 대기업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도시바는 최근 미국 원전 사업의 막대한 부실로 또 한번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도시바는 조만간 기업 회생을 위한 특단의 조치를 발표할 전망이다. 일본 현지에서는 도시바가 사실상 유일한 성장 사업인 전자장치 부문을 분사해 상장한 뒤 30~40% 수준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도시바 일본 요카이치 낸드플래시 공장 전경.

도시바 전자장치 부문은 한때 세계 최강을 자랑했던 낸드 사업을 관장하고 있다. 도시바의 세계 낸드 시장 점유율은 작년 3분기 기준 20%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36.6%이다. 무엇보다 도시바는 차세대 낸드인 3차원(3D) 낸드 분야에서도 삼성에 이어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또 벼랑 끝으로 내몰린 도시바..."더이상 팔 것도 없다"

잇단 회계 부정 문제로 위기를 맞았던 도시바를 다시 한 번 궁지에 몰아놓은 건 에너지 사업의 부실 문제다. 경영 재건을 위해 인수했던 미국 원전 서비스 사업에서 수조 원대의 손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회계 부정을 불러온 폐쇄적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껍데기 구조조정에만 몰두하다 또다시 재앙을 초래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주가 폭락은 도시바의 미국 원전 사업에서 수천억 엔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다. 원전 사업 손실 소식이 전해진 지난달 29일 도쿄 증시에서 도시바 주가는 장중 한때 26%나 폭락한 232.50엔까지 급락했다. 무디스, S&P 등 국제신용평가사들은 잇달아 도시바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바가 천문학적인 투자 및 유지 비용이 들어가는 낸드 사업을 유지할 능력이 있는 지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본을 확충하는 ‘증자’가 여의치 않다. 도시바는 회계 조작 문제로 도쿄 증권거래소로부터 '특설주의시장종목'으로 지정돼 있어 법적으로 공모증자가 불가능하다. 지난해 회계 부정이 발각된 이후 도시바는 메디컬, 백색 가전 부문을 잇따라 매각해 더 이상 팔만한 우량 자산도 많지 않은 상황이다.

산케이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현재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사업을 담당하는 전자장치 부문을 분사해 상장한 뒤 최소 30% 수준에서 최대 40%의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경우 외부 기업이 경영에 관여하는 위험 부담이 있지만, 도시바한테는 원전 사업에서의 손실액을 메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카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도시바가 요카이치 공장 등 신규 라인 투자에 수조원의 금액을 쏟아부었는데, 현재 상황이라면 투자가 예정대로 진행될 가능성은 요원하다"며 "3D 낸드 증설 경쟁이 한창인 메모리 시장에서 외부 투자 유치 없이는 증설도 어렵고 경쟁력 확보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칭화유니그룹, 도시바 지분 인수 나설까

도시바가 낸드 사업을 분사해 지분 매각에 나설 경우 가장 흥미를 보일 기업으로는 한국의 SK하이닉스와 중국의 칭화유니그룹 등이 꼽힌다. 경쟁자인 삼성전자의 경우, 낸드 기술력 측면에서 도시바를 이미 따라잡은 지 오래고 이미 평택, 중국 시안 등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놓은 상황이어서 도시바에 지분 확보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낸드 시장 후발주자이자 세계 시장 10% 수준의 점유율로 4위에 머물러 있는 SK하이닉스 입장에서 도시바의 위기는 기회나 다름 없다. 과거 도시바의 낸드 라인 인수도 검토한 적 있었던 SK하이닉스는 D램에 비해 기술력, 점유율 측면에서 약세인 낸드 사업을 강화를 위해 수년간 노력해 왔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지분 인수를 통해 기술 제휴, 공동 개발 파트너십에 나설 경우 최대 경쟁자인 삼성을 함께 견제할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칭화유니그룹을 비롯한 중국계 기업이 도시바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디스플레이 업계 강자 샤프가 지난해 대만 훙하이그룹에 넘어간 이후 비판 여론이 커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또 한번 일본 기업을 중국에 넘기는 결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전자업계 관계자는 "도시바가 메모리 사업과 관련한 자산을 매각하든, 또 다른 방안을 찾아내든, 현재 상황에서는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요인이 많다"며 "한국 메모리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 설비 투자에 제동이 걸린 도시바의 낸드 경쟁력 약화는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호재이고, 도시바의 일부 지분을 매각은 지분인수를 통한 도시바와 파트너십 또는 기술 제휴를 맺을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