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KTX 경부선과 호남선 분기역인 충청북도 청주시 KTX 오송역. 역 주변은 황량하지만 북서쪽으로 1㎞ 떨어진 만수교차로부터 서쪽으로 곧게 뻗은 왕복 6차로 도로 약 2㎞ 구간은 대도시 못지않다. 왼쪽에는 20층이 넘는 롯데캐슬·호반베르디움 등 유명 브랜드 아파트와 프랜차이즈 식당, 베이커리가 자리 잡고 있다. 한편에는 호텔도 건설 중이다.

도로 오른쪽에는 충북산학융합본부가, 여기서 두 블록 북쪽으로 올라가면 한국보건산업진흥원·국립보건연구원·질병관리본부·식품의약품안전처 같은 공공 기관과 CJ헬스케어 공장, 고려대 의생명공학연구원 등이 마치 병풍처럼 오송읍을 감싸고 있다. HP&C·기린화장품·화니핀코리아·파이온텍과 같은 화장품 제조업체 공장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 29일 국내 화장품 산업 메카로 떠오르고 있는 충북 청주시 오송 단지에 드론을 띄워 전경을 촬영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테니스장 왼쪽)를 중심으로 오송생명과학단지지원센터, 국립인체자원중앙은행, 국립의과학지식센터,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질병관리본부, 각종 바이오·제약업체 연구소, 화장품 제조 공장 등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주변 나대지도 조만간 새로운 산업단지로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오송이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 중심지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산학연(産學硏) 클러스터가 형성된 오송을 중심으로 세종·진천·오창 등 반경 20㎞에는 한국콜마·LG생활건강·SK바이오랜드 같은 대·중소기업 공장 100여 개가 자리 잡았다. 오송 주변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클러스터가 형성됐다고 해 'K뷰티벨트'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인구 2만2000명에 불과한 시골 마을 오송이 한류(韓流)로 수출 길이 열린 국내 화장품 산업의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논에서 화장품 메카로

지난 26일 오송에 있는 화장품 전문기업 에이치피앤씨(HP&C)에서 직원이 생산중인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

이날 오후 기자가 찾아간 7층짜리 충북산학융합본부 건물엔 한 군데의 공실도 없이 45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이 입주해 있었다. 이 중 화장품 기업이 14개다. 이 건물 5층에 있는 기초 화장품 제조 스타트업 코스메틱솔루션케어 연구원들은 새 화장품을 개발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흰 가운에 마스크, 장갑을 착용한 이들은 스포이트를 이용해 소수점 이하 4자리까지 화장품 원료 무게를 정밀하게 계산하고 있었다. 화장품에 들어가는 각종 원료를 놓고 최적의 조합을 만드는 것이다.

같은 시각 다른 스타트업 연구원들도 점심시간을 아껴가며 성분 분석기, 원료 추출기 등 화장품 개발 장비와 씨름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코스메틱솔루션케어 김형길 대표는 "2014년 2월 이곳에 입주했다"면서 "주변에 연구기관과 화장품 제조업체들이 밀집해 있어 화장품 개발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오송에 들어선 화장품 제조공장 9개도 수출 물량을 대기 위해 연일 제조 라인을 쉴 틈 없이 가동하고 있다. 현재 조성 중인 제2생명과학단지에도 20여 개 화장품 업체가 들어올 예정이다.

오송 인근 지역도 비슷한 분위기다. 한국콜마는 2014년 6월 오송에서 차로 20분 떨어진 세종시에 아시아 최대 규모인 1만7419㎡의 제조공장을 세웠다. 청주 송정동과 오창읍에는 LG생활건강·사임당화장품, 진천에는 크리오란코리아·나이벡, 음성에는 한국화장품제조·코스메카코리아, 증평에는 풀무원건강생활 등이 공장을 마련했다.

지난 26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충북산학융합본부에 있는 바이오센터 연구원이 각종 원료를 섞어 화장품을 개발하고 있다. 오송 바이오 단지와 결합한 화장품이 새로운 신성장 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사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오송은 농부들이 논에서 벼농사를 짓던 한적한 농촌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다 2010년대 들어 전 세계를 휩쓴 기능성 화장품 유행이 오송까지 불어닥치며 변화가 시작됐다. 3년 전 오송 주변으로 본사를 이전한 한 화장품 회사 대표는 "2010년 조성된 오송 첨단의료복합단지에 터를 잡은 바이오·제약 업체들이 돈이 되는 화장품 개발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40분이면 수도권에서 오갈 수 있는 교통 여건, 식약처 등 각종 인허가 기관, 대학·기업 연구센터 등 우수한 인프라가 화장품 업체들과 스타트업들을 오송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오송 지역 화장품 제조업체 HP&C의 심홍보 상무는 "식약처 등 각종 인프라가 조성되는 것을 보고 2014년 이곳에 공장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화장품 산업에 가속도

이 지역에는 인근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버금가는 산학연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다. 충북대·청주대 등 지역 대학과 LG생명과학과 같은 대기업,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 국책기관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수시로 기술을 교류하고 연구하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충북대 약학대학원에 화장품산업학과(석사 과정)도 개설된다. 학부생이나 대학원생들을 위한 강좌가 아니라 대·중소기업 화장품 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한 5학기 과정이다. 국내에서 이 같은 화장품 관련 학과가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월에는 예산 176억원이 들어간 화장품임상연구지원센터도 문을 연다. 이미 94% 공사를 마쳤고 1월부터 임상시험 장비 등이 들어올 예정이다. 화장품 업체들은 이곳에서 기존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임상센터에 비해 30~50% 저렴한 비용으로 임상시험을 할 수 있다. 2013년부터 오송에서 열리는 화장품뷰티세계박람회도 중소 화장품 업체들이 판로를 개척하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2015년 청주시 상당구에서 오송으로 옮겨온 화장품 제조 스타트업 또르르의 윤길영 대표는 "지난해 박람회에서 몽골에 18만달러(약 2억1000만원) 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 있는 화장품 업체들도 오송에 공장 설립이나 사무실 이전 문제 등을 저울질하고 있다. 지난 22일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의 자회사인 화장품 업체 셀트리온 스킨큐어가 오송에 1500억원 규모 신규 공장을 짓기로 확정했다. 국내 화장품 안전성 인증업계 1위인 엘리드도 2015년 오송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우람 엘리드 연구원은 "오송은 머지않아 화장품 시장 트렌드를 좌우하는 '코스메틱 밸리'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