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해 취업하면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내 집 마련을 꿈꾸고 이뤘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며 경제는 성장했고 살림살이는 더 풍족해졌다. 하지만 경기침체와와 실업난에 쫓긴 지금의 2030세대는 이제 스스로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있다. 2030세대가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하려면 12년 넘게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조건을 달아야 하는 게 현실. 스스로 ‘주포(주택 마련을 포기)세대’임을 선언한 이들도 많다. 조선비즈가 내 집 마련의 꿈을 접은 2030세대의 실상과 원인을 파악해 진단한다. [편집자주]

올해로 결혼 8년차인 최호용(38) 씨는 2년 넘게 내 집 마련을 고민하다 최근 마음을 접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교육 여건이 좋은 동네를 찾아 집을 장만하려고 했지만, 집값이 너무 올라 도저히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씨는 “예전에는 빚이라도 내서 집을 사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며 “살림살이가 팍팍한 데다, 월급도 제자리라 대출 이자까지 감당하면서는 집을 살 여력이 도저히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집을 안 사는 것이 아니라 못 사는 것”이라고 했다.

내 집 마련의 꿈이 2030세대에는 사치일까. 집 사기를 아예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2015년 발표한 ‘2014년도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내 집 마련을 포기하겠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34세 이하 응답자의 비율은 29.1%로, 5년 전이었던 2010년(19.9%)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2030세대의 팍팍한 현실은 신조어에서도 드러난다. 하우스 푸어, 오포세대, 신캥거루족 등 최근 자주 접하는 신조어에는 ‘집’이라는 공통 분모를 품고 있다.

그래픽=조선일보DB

‘하우스 푸어’는 집은 있지만 무리한 대출로 인한 이자 부담 때문에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오포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를 포기한 사포세대에,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2030세대를 말한다. 캥거루족은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취업을 못 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 집에 살면서 의존하는 20~30대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수욱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집값이 너무 많이 오른 것에 비해 임금 인상률과 일자리의 안정성은 너무 낮아졌다”며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빚을 지면서까지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주택 소유자 가운데 2030세대 16%에 불과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는 청년층의 상황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이 2015년 주택 소유 통계를 조사한 결과, 1911만1000가구 중 주택소유 가구는 1069만9000가구(56%)로 집계됐다. 이 중 20대 이하는 1.8%, 30대 이하는 14.8%에 불과했다. 반면 무주택가구 841만2000가구 가운데 중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율은 36.2%나 된다.

청년층의 아파트 구입 건수도 줄고 있다.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29세 이하, 30~34세의 아파트 구입 건수는 2011년에 비해 각각 16.5%, 17%씩 줄었다. 주택가격 상승폭에 비해 젊은 층의 소득 수준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 영향이 크다고 한국감정원은 분석했다.

신혼부부도 예외는 아니다. 신혼부부 10쌍 중 6쌍은 결혼 5년이 지난 후에도 자기 소유의 주택을 장만하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기준 신혼부부 통계’(2015년 10월 말 기준)에 따르면 초혼 신혼부부(혼인신고 5년 이내) 117만9000쌍 가운데 무주택 신혼부부는 67만6000쌍(57.4%)으로 조사됐다. 집값이 비싼 서울 지역 무주택 비율은 평균보다 높은 64.3%를 기록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무주택자의 3분의 1 이상이 청년층이다. 주택을 소유한 가구 중 20~30대 청년층의 비율은 14.8%였다.

앞으로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도 작다. 서울에 있는 주택의 절반 이상은 청년층에게 사실상 ‘그림의 떡’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토연구원이 발간한 ‘저성장시대 청년층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2020년 경제성장률을 3.6%로 가정했을 때 2014년 35~39세인 청년은 10년 후 서울에 있는 주택 가운데 56.4%만 살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수도권에 사는 35~39세의 소득을 월 342만9000원, 순자산을 1억453만원으로 놓고 소득과 자산, 주택담보대출 등을 고려했을 때 부담할 수 있는 주택가격이 3억8421만원이라고 추정한 결과다.

만약 추정보다 경제성장률이 5%가량 둔화해 청년층의 소득증가율이 더 낮아지면 서울의 주택 가운데 35~39세가 살 수 있는 주택의 비율은 47.8%로 낮아진다.

◆ 실질 소득 줄었는데 집값은 고공행진

내 집 마련의 꿈이 요원해진 것은 청년층의 소득이 줄어든 탓이다.

2015년 39세 이하 가구의 한 달 소득은 통계청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한 달 평균 431만 5552원으로, 2014년 433만 9612원보다 0.6%(2만 4060원) 줄었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 소득의 감소폭은 이보다 더 크다.

실질소득은 줄었는데 부담해야 할 지출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특히 주거비는 2030세대의 가장 큰 부담이다.

한국감정원의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의 집값은 지난 3년간(2014~2016년) 4억9052만원에서 5억6209만원으로 14.6%가량 올랐다. 특히나 2015년에는 10.4%나 오르는 등 상승폭이 컸다. 전국적으로 보면 집값은 지난 3년간 약 7.8% 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집 마련은 꿈도 꾸기 힘들다. 통계청에 따르면 20~30대가 월급을 단 한 푼도 안 쓰고 12년 6개월을 꼬박 모아야 서울의 평균 아파트(5억5480만원, 한국감정원 시세 기준)를 살 수 있다고 한다. 2013년 약 11년 6개월이던 내 집 마련 기간이 2년 사이에 1년이나 늘어났다.

그나마 이것도 39세 이하 가구주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371만원)을 하나도 쓰지 않는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에서 나온 통계다. 생활비와 교육비 등으로 나가는 돈을 감안하면 실제 내 집 마련에 걸리는 시간은 이보다 더 길어진다. 부모가 재산을 물려주지 않은 보통 월급쟁이가 돈을 모아 내 집을 마련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셈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으면 집을 살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아 집을 구입한 20~30대 가구가 늘어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얼마전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현황을 보면 지난해 3월 말 30대의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101조원으로 2015년 말보다 10조4000억원(11.5%) 늘었다. 20대의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2015년 말 6조5000억원에서 3개월 만에 9조4000억원으로 2조9000억원(44.6%) 증가했다.

송인호 KDI 국토·인프라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국 주택가격 상승 속도가 소득 상승 속도보다 더 빠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청년층만 보면 오히려 소득이 줄어들고 있어 이들의 주택 구입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확인하면 소득이 주는 것을 파악할 수 있고, 국토부 실거래가 자료를 보면 주거비가 급등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앞으로는 빚을 내도 집을 살 수 없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